어두운 데 있는 보배는 등불이 아니면 볼 수가 없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남을 위해 설하지 않으면 슬기 있는 사람이라도 알 수 없다.
-『화엄경』에서
넓고 커서 끝닿는 데가 없는 온 우주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찬란하게 빛나는 이유는 삶과 죽음을 초월한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지 못한 중생은 어리석게도 어두운 밤의 미로를 헤매고 있다.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을 바른길로 안내하는 것이 바로 포교이다.
하나의 절이 창건되는 것은 그 절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을 전미개오(轉迷開悟) 즉, 어지러운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이다. 불상을 모시고 설법을 하는 곳을 일컬어 법전(法殿) 내지는 법당(法堂)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곳에 가장 올바른 법이 있기 때문이다. 사찰을 건립하고 중창하고 중수하는 일은 곧 수렁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 사실조차 모르는 미욱한 중생들을 자비의 환한 빛으로 건져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찰에서 스님들이 설하는 감로 법문 또한 드넓은 갖가지 업보의 바다에서 난파된 배를 타고 떠도는 중생에게 복전(福田)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불심 도문(佛心道文) 법사가 그간 살아온 길은 포교의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성 진종(龍城震鍾, 1864-1940) 조사의 3대 교화지침은 불교의 생활화,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지성화이고, 이러한 지침을 도문 법사는 평생 실천해 왔던 것이다. 불교의 생활화는 생활이 곧 부처님의 법이요, 부처님의 법이 곧 생활이라는 의미이다. 불교의 대중화는 불사수행을 통해 온 겨레 전 인류가 다함께 성불인연을 지으라는 의미이다. 불교의 지성화는 참선수행, 염불수행, 간경수행, 주력수행에 정진하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용성 조사의 3대 교화지침은 부처님의 전도선언(傳道宣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처님께서는 제자가 60명이 됐을 때 아래와 같이 역설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또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세상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둘이 함께 같은 길을 가지 마라.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한, 바른 뜻과 문장을 갖춘 가르침을 설하여라. 완전하고도 청정한 수행의 삶을 보여주어라. 세상에는 더러움에 덜 물든 사람들도 있다. 다만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멀어졌지만, 만일 그들이 가르침을 듣는다면 그것을 곧 알아들을 것이다.”
불심 도문 법사
도문 법사는 삼척 태백산 흥복사, 강릉 오대산 관음사, 평창 오대산 극락사, 경주 명활산 분황사, 영주 소백산 부석사, 공주 태화산 마곡사, 의성 등운산 고운사, 장성 백암산 백양사, 정읍 내장산 내장사, 서울 삼각산 대각사 등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본·말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이르는 지역마다 전법교화에 노력했다. 또한, 강원도 양양 재단법인 낙산보육원 원장, 강원도 19개 시·군 순회 포교법사, 금천유치원 원장, 연화유치원 설립 초대원장, 영남불교 중·고등학생회를 설립하고 초대 지도법사, 서울대학교 총불교학생회 설립 초대 지도법사 등을 역임하면서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포교의 기반을 닦았음은 물론이고 한국공무원불자연합회를 창립하는 데 막후 기둥이 되어 초대 지도법사를 역임하면서 공무원 불자들의 포교에도 진력하였다. 나아가 대한불교조계종 감찰원 초대 감찰국장,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등을 역임하면서 조계종 행정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일익을 담당했으며, 재단법인 대각회 초대 사무국장, 대각회 이사, 대각회 상무이사, 대각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근세 한국불교의 중흥조이자 기미년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중 불교계 대표인 대중불교 운동을 전개하였던 용성 조사의 유업을 계승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러한 포교업적은 이 시대의 부루나 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크다고 할 것이다.
한국공무원불자연합회 법회-경주 천룡사지에서
부처님은 사리불과 목건련 존자가 입적한 뒤 아래와 같이 설했다.
“지혜와 신통을 모두 지닌 제자들이 열반에 들었지만, 나는 아무 근심도 없다. 과거에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여래에게도 지혜와 신통이 있는 제자들이 있었고, 미래의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할 때에도 지혜와 신통이 있는 제자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아, 오늘 사리불과 목건련 비구의 사리에 공양하여라.”
아난존자가, 사리불과 목건련의 사리에 어떻게 공양해야 하느냐고 묻자 부처님은,
“마땅히 네거리에다 네 개의 절과 탑을 세워라. 전륜성왕(轉輪聖王)의 탑을 세워야 하고, 번뇌가 다 없어진 아라한의 탑을 세워야 하며, 벽지불(辟支佛)의 탑을 세워야 하고, 여래의 탑을 세워야 한다.”
고 일러주었다.
도문 법사의 포교 업적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전륜성왕의 탑과 아라한의 탑과 벽지불의 탑과 여래의 탑을 세운 것과 다르지 않다. 도문 법사가 이르는 곳마다 전법교화에 진력한 까닭은 대중이 전륜성왕처럼 열 가지 공덕을 짓게 하고, 아라한과 벽지불처럼 모든 번뇌를 멸하게 하고, 부처님처럼 모든 사람을 열반에 들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 집필자 : 유응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