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 도문 법사는 전국의 사찰불사와 전법교화에만 매진한 것이 아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국장, 부장을 비롯해 조계종중앙종회 종회의원 등 행정부 및 입법부의 주요 소임을 맡아 종단의 당간을 세우는 데 일조했다.
36세인 1970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감찰원 감찰국에 임명돼 종단 사정기관의 일원으로서 종단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일조를 하였고, 42세인 1976년 7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에 임명되는 한편 대한불교조계종 종회의원 소임도 겸임하였다. 당시 교무부장 소임을 맡은 이유는 종단으로부터 중앙승가대 설립, 불교TV 방송국 설립, 불교 종합병원 건립 등 불교계의 오랜 숙원사업을 실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임 즉시 교무국장, 교무과장, 교육과장, 교무계장 등으로부터 교무부의 전반적인 업무 현황을 보고받고 보니 업무가 대체로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특히, 사부대중, 즉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수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많아 보였다. 하여 부하 직원들에게는 조계종에 속퇴하거나 입적한 승려의 승적부를 정리하라고 지시했고, 상부의 선배스님들에게는 조계종단이 단일계단을 설립해 사미, 사미니계를 주는 제도를 만들자고 건의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서 무진장 스님, 김어수, 선진규 등 상임포교사들이 도문 스님이 교무부장으로 부임해서 다행이라고 찬양했다.
종회의원을 겸직한 뒤 양주 운악산 봉선사를 찾아가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 원장 운허 스님을 친견하고 양주군 진접면에 소재한 봉선사 사립 광동중·고등학교 건물을 승가대학으로 쓰고 광동중·고등학교는 도회지로 이전해 건립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건의했고, 운허 스님도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이러한 청사진은 박정희 대통령이 한강 이북에는 대학설립인가를 허락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백지화되고 말았다.
온 겨레 전 인류의 포교를 위해서는 포교원이 필요하고, 승려 교육의 전문성 제고와 현대화를 위해서는 교육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했던 까닭에 포교원 설립법을 제정해 종회에서 가결할 것을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포교원 설립법의 제정이 종회에서 가결됐다. 비록 교무부장으로 재임할 당시 중앙승가대 설립, 불교TV 방송국 설립, 불교 종합병원 건립 등 불교계 숙원 사업이 실현되지 않았지만, 쌍용이 승가대학 건립기금 1억 2,000만원을 후원할 수 있게 설득하는 등 그 기틀을 마련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도문 법사는 문서포교와 역경포교에도 그 누구보다 귀감이 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어머니 대성자 최사달이 백용성조사유훈실현후원회 초대회장으로서 염불화 박송화 시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용성 조사께서 번역한 불경 20여 종과 저술한 어록 20여 종 60여권을 재단법인 대각회 초대 이사장 동헌 조사에게 증정하였다. 이는 불교계 문서포교의 크나큰 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2년에는 『불일』 제1호부터 제14호까지 다시 발간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연화』 제15호부터 제34호까지 발간하였다. 세납 50세부터 55세까지 문서포교, 역경포교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는데, 『불일』, 『연화』, 『불교』, 『불심』, 『무아』 등 제호의 불서를 지속적으로 발간한 것이 그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것이다. 1991년 음력 5월경 용성 조사의 번역 불경과 저술 서적 등 총 18권을 1질로 하여 500질을 발간해 법보시하였다.
신수대장경 발간
도문 법사는 불교TV 방송국이 서울 방배동에 사옥을 구입하였을 때 흔쾌히 1억 원을 사옥이전 후원금으로 전달함으로써 영상포교에 일조하기도 했다. 동국대학교 의예과를 의과대학으로, 법학과를 법과대학으로, 미술학과를 예술대학으로 승격시키고, 산업정보대학원을 신설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도문 법사이다. 당시 조계종총무원장인 의현 스님과 동국대 총장인 지관 스님이 동국대 발전에 골몰하는 것을 알고서 고모부인 서명원 문교부장관에게 부탁을 했고, 서명원 문교부장관이 팔을 걷고 나서서 해결해준 것이었다.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이 기독교 재단 대학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했던 까닭에 서명원 문교부장관은 사직서를 제출하는 일까지 벌인 끝에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법과대학, 예술대학 승격과 산업정보대학원 신설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2007년 상반기 조계종 원로회의는 제29차 회의를 통해 도문 법사를 원로의원으로 추대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이신 혜광 종산(慧光宗山, 1924-2020) 스님이 원로의원 인준을 주도했다. 이어서 2009년 ‘제21회 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하였다. 스님만큼 전법교화에 매진한 스님도 없는 만큼 당연한 선정 결과라고 할 것이다.
불심 도문 대종사-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원로의원으로 추대
도문 법사는 그 어느 스님보다도 후학 양성에 모범을 보였다.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대학생 포교에 매진한 결과 경주고등학교 재학생 때 출가하여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보광 스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출신으로서 『아함경』을 완역한 학승인 학담 스님, 정토회 지도법사이자 죽림정사 주지인 법륜 스님, 부처님이 탄생하신 네팔 룸비니 국제사원구역 내 한국사원 대성석가사 주지 각현 스님, 문경 한산사 주지이자 용성선원 선원장인 덕상 스님, 합천 가야산 해인사 전 율원장 혜능 스님, 평택 명법사 회주인 화정 스님에게 가르침을 전할 수 있었다.
· 집필자 : 유응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