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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본·말사 주지 역임하며 포교에 진력

1962년 3월 1일 대통령 윤보선은 용성 조사에게 자주독립에 이바지한 공로를 높이 평가해 건국공로훈장증을 수여했다. 같은 해 불심 도문 법사는 서울 종로 삼각산 대각사 대각선원에서 전강 영신(田岡永信, 1898-1975)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版齒生毛)’, 화두를 받고 정진하여 인증 받았다. 인증 당시 대각선원 조실 동헌 조사와 입승(入繩)인 덕산 스님, 전강 스님의 친동생인 원명 스님이 입회하였다. 이후 도문 법사는 전국의 주요 본·말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불사와 전법교화(傳法敎化)를 함께 수행함으로써 이르는 사찰마다 대중을 안심입명(安心立命)에 이르게 하였다. 그 첫걸음은 강원도 지역의 포교였다. 1962년 도문 법사는 동헌 조사를 모시고 재단법인 양양 낙산보육원장을 맡아 불사를 하는 동시에 어촌 교화에 진력하였다. 당시 도문 법사는 낙산사 홍련암에서 동헌 조사, 동암 성수(東庵聖洙, 1904-1969) 스님, 신암 도원 스님을 모시고 용성진종조사유훈실현을 위한 제1차 기원법회를 봉행했다. 또한, 강원도의 양양군, 속초시, 고성군, 인제군 등지의 중·고등학교 불자 학생과 청신사, 청신녀에게 삼귀의 오계 수계를 봉행하였다. 이 무렵 만화 희찬(萬化喜贊, 1922-1983) 스님은 낙산보육원을 찾아와 한암 스님의 유훈을 전했다. 그 유훈인즉슨 도문 수좌에게 오대산 월정사 법당을 짓는 불사를 맡기라는 것이었다. 희찬 스님의 말을 듣고서 월정사 교무를 맡아 월정사 대법당을 중건하는 데 힘을 쏟았다. 월정사 대법당을 중건하는 것은 순조롭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대법당을 짓기 위해서는 재목이 상당히 많이 필요한데 강원도 평창군에서 허가해주는 벌목 면적은 100㎡에 불과했다. 월정사 대법당을 중건하려면 3,000㎡의 삼림이 필요했다. 하여 박경원 강원도지사를 찾아갔다. 당시 낙산보육원 이사장은 강원도지사의 아내였다. 게다가 박경원 강원도지사는 고성 건봉사 승려 출신으로서 해방직후 입대해 장군이 된 뒤 도지사에 오른 인물이어서 그 누구보다도 불심이 깊었다. 도문 법사는 준비해간 『육조법보단경』을 박경원 강원도지사와 강원도청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강원도지사가 도문 법사를 반기면서 말했다. “스님의 법안(法顏)이 제가 건봉사에서 모셨던 은사 스님과 매우 닮았습니다. 앞으로 은사스님처럼 생각하겠습니다.” 이후 강원도에 소재한 19개 시, 군을 찾아다니며 법회를 열었다. 박경원 강원도지사를 월정사 방장굴로 초대해 환담을 나누다 보니 박경원 강원도지사가 먼저 도와드릴 일이 없냐고 물었다. 도문 법사는 사정을 설명한 뒤 “3,000㎡를 벌목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고 했다. 박경원 강원도지사는 흔쾌히 이 청을 들어줬다. 도문 법사는 1963년 동헌 조사를 조실로 모시고 삼척 태백산 흥복사 주지를 맡아 광산지역 광부 교화에 진력하였다. 이듬해(1964년)에는 동헌 조사를 조실로 모시고 강릉 오대산 관음사 주지로 임명돼 사찰 소속 신도회, 청년회, 중·고등학생연합회를 활성화하는 한편 강릉 금천유치원 원장을 겸직하며 천진불인 아이들의 마음에 불성(佛性)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당시 도문 법사는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에서 동헌 조사, 월정사 조실 겸 주지 탄허 스님, 총무 희찬 스님, 상원사 암주 희섭 스님 등을 모시고 용성 조사 유훈 성취를 위한 제2차 기원법회를 봉행하였다. 또한 강원도의 강릉시, 명주군, 인제군, 홍천군 중·고등학교 불자학생과 청신사, 청신녀 등에게 삼귀의 오계 수계법회를 봉행하였다.
한국공무원불자연합회 법회-경주 천룡사지에서
31세인 1965년 5월에는 평창 연화유치원을 설립하였다. 당시 초대이사장은 월정사 조실 겸 주지인 탄허 스님이 맡아주었다. 연화유치원 초대원장으로 부임한 도문 법사는 평창의 극락사 내 중·고등불교학생회를 조직하여 청소년 포교에 진력하는 한편 농촌 교화에도 이바지하였다. 당시 강원도 평창군, 정선군, 영월군, 충청북도 제천군 중·고등학교 불자학생 청신사, 청신녀에게 삼귀의 오계 수계법회를 봉행하였다. 그리고 강원도 포교의 정상화에 노력한 뒤 주석처를 영남으로 옮겨서 경상도 지역을 불국토로 건설하는 데 혼혈의 노력을 기울였다. 33세부터 37세까지(1967-1971)는 경북 경주 구황동 명활산 분황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용성 조사가 제창하신 대각교(大覺敎) 부흥을 발원하는 한편, 경상남·북도를 통합한 영남불교 중·고등학생연합회 초대 지도 법사를 맡아 청소년 포교에 진력하였다. 그리고 분황사 주지로 재임할 당시 서울대학교 총불교학생회 초대 지도 법사를 맡았다. 이런 법연으로 말미암아 서울대학교 등 대학생 불교연합회 소속 불자 대학생들과 부산, 대구, 울산, 포항, 마산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일원의 초·중·고·대학생 불자와 청신사, 청신녀에게 삼귀의 오계 수계법회를 지속적으로 봉행함으로써 정례화하였다.
경주 남산 대법회
도문 법사는 1971년 동헌 조사를 조실로 모시고 영주 소백산 부석사 주지로 부임해 무량수전을 해체 보수하는 한편, 영주의 봉화중·고등학교 불교학생회 소속 학생들과 청신사, 청신녀에게 삼귀의 오계 수계법회를 봉행했다. 1972년에는 경주시 남산동에 소재한 칠불암을 민간인의 소유 관리에서 인수하였다. 칠불암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0호인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9호인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 있는 유서 깊은 전통사찰이다. 당시 도문 법사는 신라의 진산인 경주시 배반동 낭산에 소재한 중생사에서 동헌 조사를 모시고 신라 제30대 문무대왕 다비지 능지탑(陵旨塔)으로 추정되는 연화탑 복원을 발원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전답으로 전락돼 있는 능지탑지 주변을 1972년부터 1982년까지 11년간에 걸쳐서 총 33필지 8,909평(29,399㎡)을 매입한 뒤 청정도량으로 일신하였던 것이다. 또한, 신라 해동 화엄초조 의상조사의 출가 본산인 낭산 황복사가 폐허가 되어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제37호 신라 3층 석탑만 남아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개인 사유지인 총 3필지 523평(1,725m㎡)을 매입하였다. 도문 법사는 신라 천년고도 경주 남산중 고위산 천룡사 복원불사를 위해 백용성조사유훈실현후원회 증명법사로 동헌 조사를 모시고 1972년부터 1982년까지 11년 동안 천룡사지 주변 부지를 힘닿는 대로 매입하였다. 백용성조사유훈실현후원회 대성자 최사달 초대회장을 비롯하여 뜻있는 회원들의 후원을 받아 민간인의 소유인 농가와 민가, 전답과 임야 등 50필지 총 59,093평(195,006㎡)을 매입한 뒤 호국호법도량 천룡사를 일신해 등기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동국대학교 총장 황수영 박사와 그 수제자 정영호 박사를 비롯한 문화재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복원 불사된 신라 3층 석탑이 1993년 12월 29일자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188호로 지정받았다. 이 역시 도문 법사의 크나큰 공로가 아닐 수 없다. 천년고도 경주를 비롯한 경상도 지역에 불국토를 건설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뒤 도문 법사는 한반도의 서쪽인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으로 주석처를 옮겼다. 1975년 8월 지리산 실상사 주지로 임명되었다. 실상사 주지 재임 시 실상사가 안고 있던 2억 원의 부채를 모두 갚았다. 1977년 3월 공주 태화산 마곡사 주지로 부임하였다. 마곡사 주지로 간 이유는 당시 조계종 종정인 서옹 석호(西翁石虎, 1912-2003) 스님이 마곡사 인근에 승려복지원을 설립할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종단의 여건상 승려복지원을 설립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도문 법사는 같은 해 12월 의성 등운산 고운사 주지에 부임하였다. 고운사 주지 재임 시 용성 조사의 은사인 수월 영민(水月永旻, 1817-1893) 스님의 흔적을 찾았다. 수월 스님의 행장을 찾은 이유는 당시 한 작가가 용성 조사의 은사가 경허(鏡虛, 1849-1912) 스님의 제자인 수월(水月, 1855-1928) 스님인 것처럼 묘사했기 때문이다. 고운사에서 용성 조사의 스승인 수월 스님의 행장을 찾은 일은 뜻깊은 일이었다. 1978년 12월에는 전남 장성의 백암산 백양사 주지로 부임한 뒤 백용성조사유훈실현후원회의 후원을 받아 운문선원에 봉안돼 있던 불상(佛像) 개금불사를 봉행하였다. 개금불사를 마치고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서옹 스님과 조실 동헌 조사를 모시고 전국 5백여 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개금불사 회향법회를 성대히 봉행했다. 이어서 전남 영광 불갑사 불상과 전남 목포 반야사 불상 개금불사도 잇따라 봉행하였다. 당시 불갑사 개금불사는 금오그룹 박인천 회장 내외가 불사금의 절반을 시주하였고, 목포 반야사 개금불사는 목포출신 가수 남진 거사의 어머니가 불사금의 절반을 시주하였다. 1981년 12월에는 전북 정읍 내장산 내장사 주지로 부임하였다. 내장사 주지로 3년 동안 재임하면서 관람료의 40%인 2억 원을 적립하고, 백련선원 복원불사의 터전을 닦아놓았다. 또한 당시 도솔산 선운사 각 전각의 불상 개금불사를 봉행하기도 했다.
· 집필자 : 유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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