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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의 총구 앞에서 생사를 초월하다

불심 도문 법사는 16세인 1950년 7월 15일 구산선문 중 하나인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끝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뜻으로 분별하는 알음알이인 지적인 미혹에서 벗어난 경지에 이르렀다. 이를 일컬어 견도(見道)라고 한다. 견도의 경계에 이르러 도문 법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견도송을 읊었다.
心中有生死 마음 가운데 생사가 있으니 無心無生死 마음이 없으면 생사도 없는 것이로다. 一切唯心造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지었음이니 我佛歌祖舞 나는 부처님의 노래 부르고 조사의 춤을 추리라.
도문 법사가 견도의 경계를 체험한 것은 6·25전쟁 중이었다. 한암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으러 월정사에 갔다가 돌아온 뒤 도문 법사는 할아버지 임봉래에게, “머지않아서 이 땅에 전쟁이 날 것이니 부산에 집을 사서 온 가족이 피난을 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당시 부산에는 외삼촌이 살고 있었다. 이 말을 듣고서 할아버지는 길게 난 허연 턱수염을 손바닥으로 쓸면서, 한암 스님이 말씀하시길 ‘식이 맑으면 미래를 볼 수도 있다’고 했다고 말한 뒤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듬해 실제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할아버지는 도문 법사의 어머니를 부른 뒤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내가 나에게 속았다. 나는 윤화를 손자로만 생각하다 보니 전생에 높은 수행을 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도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윤화가 말한 대로 온 가족이 부산으로 미리 피난을 갔어야 했는데…(중략)…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엇 하겠느냐. 너라도 윤화를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거라.”
인도 수자타 마을에서 기도
말을 마친 뒤 할아버지는 며느리에게 거금의 피난자금을 건넸다. 어머니는 도문 법사를 데리고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잠시 쉬어가려고 실상사를 찾았는데, 실상사는 이미 인민군이 주둔해 있었다. 모자가 경내로 들어오자 인민군들이 총을 들고서 막아섰다. 한 인민군이 도문 법사의 이마에 총구를 겨눴다. 도문 법사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서 어머니가 말했다. “떨기는 왜 떠느냐? 마음의 두려움을 내려놓아라. 그러면 무서울 것이 없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도문 법사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절로 입 밖으로 견도송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견도 일화에서 알 수 있듯 도문 법사는 태어날 때부터 남과 다른 업력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인과에 어둡지 않았다. 도문 법사의 견도 일화는 ‘불락인과(不落因果) 불매인과(不昧因果)’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 당나라 백장 선사가 설법할 때마다 이를 경청하는 노인이 있었다. 하루는 설법이 끝났는데도 노인이 가지 않고 있어서 백장 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과거 가섭불(迦葉佛) 때에 이 산에 살았었는데 한 학인(學人)이 묻기를 ‘많이 수행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하여 제가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대답하여 여우의 몸이 되었습니다. 오늘 화상께 청하오니 한마디로 깨닫게 해주십시오.” 백장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내게 물어보시오.” 노인이 물었다. “크게 수행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 백장선사가 대답했다. “인과에 어둡지 않다.” 노인은 말끝에 크게 깨닫고 백장 선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저는 이제 여우의 몸을 면하였습니다. 제가 죽거든 화장하여 주십시오.” 백장 선사는 대중을 이끌고 산 뒤의 바위아래에 도착하여 지팡이를 휘저어 한 마리 죽은 여우를 꺼내고는 화장을 하였다. 불락인과(不落因果)는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불매인과(不昧因果)는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인과가 끊임없이 다른 인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아느냐 모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것은 어떤 생각에도 걸리지 않아서 마음이 공적(空寂)하고 여여(如如)한 무념의 상태에 이른 것이리라. 당나라 황벽 선사는 『전심법요』에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드린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무심도인에게 공양함만 같지 못하다. 무슨 까닭인가? 무심도인은 일체의 마음이 없는 까닭이다.”고 설했다. 도문 법사는 견도 체험을 통해 인과에 어둡지 않으면 인과에 떨어질 일도 없음을 깨달아 마음이 공적하고 여여한 무념의 상태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 집필자 : 유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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