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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발발을 예견하다

불심 도문 법사는 세납 15세인 1949년 8월 15일 종조부인 임봉권 화백의 안내로 강원도 평창 오대산 상원사 청량선원 조실 한암 중원(漢巖重遠, 1876-1951) 스님으로부터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화두를 받고 참선 수행했다. 도문 법사가 한암 스님을 뵐 수 있었던 것은 만암 스님의 부탁 때문이었다. 도문 법사가 ‘만법귀일 일귀하처’ 화두를 받자마자 인가를 받은 뒤 만암 스님은 제방의 134 선지식들에게 인편과 우편 서신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점검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제방의 선지식들은 대답이 없었다. 유일하게 한암 스님만이 도문을 점검하겠노라고 응답하였다. 만암 스님은 도문 법사가 사은 임동수 거사의 아들임을 알렸고 평소 친하게 지내는 임봉권 화백이 직접 부탁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가를 받기 위해 도문 법사가 조실방에 들어가자 한암 스님은, “참선하는 너의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내년 여름방학 때 다시 와서 점검을 받으라.” 고 말했다. 조실방에서 나온 도문 법사의 눈에는 미래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 미래의 모습이란 다름 아닌 내년부터 3년 동안 삼천리강산이 불바다가 되는데, 부산에서 대구까지는 화마가 미치지 않는 것이었다. 도문 법사는 종조부에게 자신이 본 미래의 모습을 알려드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년에는 전쟁이 나서 저는 이곳에 올 수 없고, 조실 노장 큰스님이 입적할 것이므로 인가 또한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인가를 받는 게 좋겠습니다.” 종조부는 출가자의 길을 걸으면서 삶과 죽음의 고통을 여의는 크나큰 깨달음을 얻을 사람인데 어찌하여 전쟁이니, 불바다니 운운하는 것이냐며 크게 화를 내면서 꾸중했다. 말소리가 컸던 터라 한암 스님도 임봉권 화백의 말을 들었고, 도문 법사가 미래를 예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암 스님은 화를 내는 임봉권 화백을 말리면서 “식(識)이 맑으면 미래를 볼 수도 있습니다. 내년 여름방학 때 다시 함께 오십시오.”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이듬해에는 도문 법사가 예견한 대로 6·25전쟁이 발발했다. 양산 영취산 통도사 조실 경봉 정석(鏡峰靖錫, 1892-1982) 스님은 한암 스님과 탄허 택성(吞虛宅成, 1913-1983) 스님에게 남쪽으로 피난을 오라고 권하였다. 하지만 한암 스님은 내가 열반할 곳은 오대산 상원사 청량선원이라고 말한 뒤 수법제자 탄허 스님에게 남쪽으로 피난을 가라고 지시했다. 한암 스님은 말 끝에, “작년에 도문 수좌가 전쟁이 날 것을 예견했다. 나 대신 네가 도문 법사를 인가하라. 화마로 월정사가 소실될 것 같으니, 도문 법사를 찾아서 월정사 적광전 복원불사의 화주법사 겸 증명법사로 임명하라.” 고 당부하였다. 이와 별도로 한암 스님은 석호 스님에게, 도문 법사가 27세가 되면 금정산 범어사에서 동헌 조사로부터 정법안장을 이을 것이니 탄허 스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오대산 월정사 적광전 복원불사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마음을 닦는 수행과 별도로 도문 법사는 11세부터 16세까지(1945년-1950년) 6년간 할아버지에게서 『중용』,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주역』, 『춘추』, 『예기』, 『노자』, 『장자』, 『육조법보단경』, 『금강경』, 『대방광원각경』, 『금강삼매경』, 용성 조사께서 저술한 『각해일륜』, 『오도의 진리』, 『수심론』 등을 봉독하면서 유·불·선[儒佛仙]의 이치를 체득해갔다.
인도 나란다대학에서 참선
도문 법사가 이른 나이에 6.25전쟁이 발발할 것을 예견한 것에서 사람마다 업력(業力)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전생부터 높은 수행을 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도문 법사였기에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할 것임을 예견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도문 법사의 심정은 코살라 국왕이 석가족을 침략하는 상황을 목도해야 하는 부처님의 심정과 다르지 않았다. 코살라국의 비두다나왕은 석가족의 카필라성을 침략하려고 출정을 하였다. 부처님은 이 소식을 들으시고 카필라국으로 가는 큰 고목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선정에 들었다. 이 모습을 본 비두다나왕이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잎이 무성한 나무숲을 놓아두고 어찌하여 말라버린 고목나무 밑에 계십니까?” “일가친척의 그늘이 다른 그늘보다 시원하기 때문이오.” 비두다나왕은 석가족을 침략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처님의 뜻을 알아채고 물러났다. 비두다나왕이 침략하려고 올 때마다 부처님은 고목나무 아래에 앉아 계셨다. 그렇게 2차, 3차 침략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두다나왕의 침략을 끝내 막을 수는 없었다. 비두다나왕이 네 번째 침략했을 때 부처님은, “과거세에 맺어진 깊은 원한은 더 이상은 막을 수가 없다.” 며 고목나무로 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비두다나왕은 카필라성을 침입하였던 것이다. 부처님께서 석가족이 침략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슬퍼했듯이 도문 법사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미리 예견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껴야 했다.
· 집필자 : 유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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