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 도문 법사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7세부터 11세까지(1941년-1945년) 5년간 할아버지인 봉래(鳳來) 임정준(林正準)과 할머니인 염불화(念佛華) 박송화(朴松華)로부터 『조선어문』,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조선역사』, 『중국역사』, 『대학』 등을 배우면서 사찰로 출가할 때를 기다렸다.
당시 할아버지는 도문 법사에게,
“대학의 세 가지 큰 가르침은 명명덕하고 신민하며 지어지선하는 것이니[明明德新民止於至善],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인 마음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로이 하는 데 있고, 지극히 착한 마음에 머무는 데 있다. 이는 이를테면 자녀가 되었으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최고의 선이고,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면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최고의 선이고, 제자가 되었으면 스승을 공경하며, 중생에게 배은하지 하지 않고 보은하는 것이 최고의 선이다. 대학의 8조목은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이다[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모든 존재는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 격물이고, 그 존재 가치를 아는 것이 치지이며, 그러기에 격물치지를 위해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 성의이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정심이고, 몸을 닦는 것이 수신이고, 집안을 다스리는 것이 제가이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치국이고, 이리하여 천하가 태평한 것이 평천하이다.”
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평생 동안 도문 법사가 간직하고 사는 까닭은 출가한 뒤 배우고 익히고 깨달은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용성 조사가 남긴 유훈과 상당히 유사했기 때문이다.
한편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일제강점기여서 한국어를 쓰는 것이 금지돼 있었다. 1945년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때 같은 반 친구와 한국어로 대화했는데, 이를 지켜본 다른 친구가 교사에게 일러바쳤다. 교사가 도문 법사를 부른 뒤 조선말을 했느냐고 다그쳤다. 이에 당당하게,
“그렇습니다. 저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조선어로 말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교사는 조선과 일본은 일체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일본어만 쓰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저는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가족들과 조선어를 쓸 수밖에 없고 동무들과도 조선어를 쓸 수밖에 없다고 맞섰다. 결국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고, 손을 들고 서 있는 체벌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일본어 시간에 솜으로 귀를 막고 일본어를 배우는 것을 거부했다. 훗날 고국으로 돌아간 일본인 교사가 편지를 보냈는데, 민족 언어를 사랑하고 민족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는 임윤화 같은 학생이 있는 한 한국의 미래는 유망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순창 농림중학교 1학년 때에는 영어시간이 되면 솜으로 귀를 막고 영어 배우기를 거부했다. 영어 시험 시간에는 답지에 일원상을 그려서 제출함으로써 교사를 당혹케 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고모 임태순은 내 조카 윤화의 한문 실력만큼은 동북아 3국 중학생 중 으뜸이라고 도문 법사를 치켜올렸다. 이처럼 도문 법사는 어릴 적부터 민족애가 투철하였다.
그런가 하면, 8세부터 16세까지 종조부인 임봉권 화백으로부터 근본불교 수행을 배웠다. 일본에 유학 가서 동양화가가 된 임봉권 화백은 부친[임동수]의 지시에 따라 미얀마 승가원에서 3년간 근본불교를 익힌 독실한 불자였다. 임봉권 화백이 근본불교에 밝았던 터라 도문 법사는 근본불교의 5정심관 관법수행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도문 법사는 다양한 관법을 통해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마음인 삼독심을 제거할 수 있었다. 가령, 부정관을 떠올리면 탐욕이 사라졌고, 자비로운 불보살상을 떠올리면 어리석은 마음이 사라졌으며, 자신이 좌선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 어지러운 마음이 사라졌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아견심(我見心)을 소멸할 수 있게 되었다.
경주 남산에서 수행 정진
도문 법사는 세납 12세에 할아버지 봉래 임정준의 인도에 따라 전남 장성 백암산 백양사로 출가했다. 도문 법사가 출가했을 때 할아버지는 아래와 같이 읊었다.
讀祖父母九雲夢 조부모의 『구운몽』 읽는 소리와
金剛經六祖壇經 『금강경』, 『육조단경』 소리를 듣고
隨宿緣發願出家 선세의 인연을 따라 출가 발원하니
無遮天地有遮誰 천지도 막을 수 없는데 누가 있어 막으리오.
그런가 하면 도문 법사가 읊었던 출가송은 아래와 같다.
祖母膝下九雲夢 할머니 무릎 아래서 들은 『구운몽』의 이야기는
十二少年發出家 열두 살 소년의 출가를 발하게 하였도다.
世上萬事遊夢中 세상만사가 꿈 가운데 놀음놀이임을
始覺親見善知識 비로소 깨닫고 선지식을 친견함이로다.
출가 직후 도문 법사는 만암 종헌(曼庵宗憲, 1876-1956) 스님으로부터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 화두를 받자마자 인가를 받았다. ‘만법귀일 일귀하처’는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는 의미이다. 만암 스님이 이 화두를 내렸을 때 대중 가운데 도문 법사만이 홀로 천연덕스럽게 한 팔을 들어 보이는 것으로써 답을 대신했다. 이러한 모습에서 만암 스님은 도문 법사의 선세의 습(習), 즉 전생에 지은 착한 업을 대번 간파했음은 물론이고 부처님 가르침을 족히 담을 수 있는 법기임을 알아봤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만암 스님은,
“도문 스님은 위대한 선지식이다. 법손으로서 손색이 없는 법기로다. 그렇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는 만법으로 돌아가지.”
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박수를 쳤던 것이다.
· 집필자 : 유응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