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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국민은 모두 한 뿌리

불심 도문 법사는 아버지 임철호와 은사인 동헌 완규(東軒完圭, 1896-1984) 조사로부터 『장림산임씨원류족보』의 내용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황제 헌원 공손 희씨의 자손 희설공(姬契公)이 임씨의 원조이다. 천자(天子)의 후손인 희설공은 상국(商國)의 제후가 되어 자씨(子氏)로 사성(賜姓) 받으니 자씨의 시조가 되었다. 자설공의 후손인 천을 성탕 천자(天乙成湯天子)가 중원을 통일하였다. 천자의 후손인 반경대왕이 나라 이름을 상나라에서 은(殷)나라로 바꾸었다. 은나라가 멸망하고 자비간공(子比干公)이 순국하자 자비간공의 부인인 진씨(陳氏)가 장림산(長林山)에 피난 가서 장림산 석실에서 유복자를 낳았다. 그 유복자의 이름을 자천(子泉)이라고 지었다. 자천이 3살이 되었을 때 주(周) 무왕(武王)이 찾아왔다. 주 무왕은 자천에게 새로운 성과 이름을 내려주었다. 성은 장림산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임씨(林氏)로, 이름은 견고하라는 의미에서 견(堅)으로 내려주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천하 임씨(天下林氏)의 태시조는 자비간공이고, 천하 임씨의 시조는 임견공인 것이다. 평택임씨(平澤林氏)의 시조인 팔급충절공(八及忠節公)은 황제 헌원 공손 희씨의 제117대 손이고, 임씨 시조인 견공의 81세손이다. 임팔급 공은 18세에 당나라 한림학사로 시작해 병무상서를 지내고 있는데 간신배들이 모함해 하는 수 없이 신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임팔급 공의 후손 중에는 고려 충신 두문동 72현의 일원인 휴암(休庵) 임선미(林先味) 공이 있었다.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 마지막 충신 임선미 태학사를 비롯한 두문동 72현이 순국하였다. 조선왕조 제14대 선조(宣祖) 시기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정유재란 당시 일본 왜구가 남원에 노략질을 일삼으니 남원, 순창, 담양, 곡성, 옥과, 임실, 운봉 등지에서 우국지사들이 분연히 일어서 왜구와 혈전을 벌여야 했다. 당시 임선미 태학사의 5대 손자 임백(林栢) 공은 아들 임대량(林大良)과 형제, 친척 등 순창군민을 모아 의병을 일으켜 왜군의 우두머리 수백 명을 참살하고 아들과 함께 순절했다. 임백 공의 손자인 임득림 공은 불교에 귀의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희생된 영가를 천도하는 데 일생을 바쳤고, 임득림 공의 고손자인 임윤현 공은 단군조선 이래 희생된 일체 영가를 천도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이러한 사실을 전라감사의 보고를 통해 알게 된 영조(英祖)는 두문동 72현(賢)의 고귀한 넋을 기리는 두문동비를 세웠다. 이어서 정조(正祖)는 두문동 72현을 기리는 사당 표절사(表節祠)를 세우고 제사를 모셨다. 하루는 정조 임금이 이서구(李書九)를 부른 뒤, 전라감사로 부임하는 즉시 순창에 가서 고려 마지막 충신 두문동 72현의 대표인 휴암(休庵) 임선미(林先味) 태학사의 13세 손인 임상복 가선대부를 만나 조부이신 영조대왕의 유지를 잘 받들라고 말했다. 영조의 유지란 다름 아닌 임상복 가선대부의 후손이 조선의 8대 명당 중 하나인 순창 동계면에 있는 풍악산 발우봉 명당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 발우봉의 명당자리는 주인이 있었다. 3대의 공덕이 있어야 명당자리의 주인이 될 수 있고, 그러고도 다시 3대의 공덕이 이어진 뒤에야 장안산 아래 죽림촌에서 온 겨레를 이끌 도인이 탄생할 수 있다고 했다. 영조의 유지대로 임상복 가선대부부터 3대가 빈민구제 등 적선에 혼혈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임상학 공은 순창 발우봉 명당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이는 장차 백두대간 중심지 장안산 아래 죽림촌에서 도인이 탄생하는 기반을 닦는 일이었다. 용성 조사가 상좌인 동헌 조사나 제자인 임철호에게 『장림산임씨원류족보』의 내용을 역설한 이유는 반목의 역사를 이어온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 3국인의 씨족원류가 한 뿌리임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 3국이 한 겨레 한 민족임을 깨닫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동족애를 지닌 채 서로 교류하길 바랐던 것이다. 용성 조사는 일찍이 조선왕조 말기에 사은 임동수 거사와 함께 2년 동안 중국에 가서 사찰순례를 하면서 중국 고승들과 법거량을 하는 한편 비간묘, 공자묘 등을 순례하고 중국 씨족에 밝은이들과 교류하였다. 용성 조사는 중국 하남성 신정시 시조산(始祖山)에 올라 인문초조 황제 헌원 중천각(中天閣)에 예배하면서 동양 3국이 동족애를 지니고 교류하길 발원하였던 것이다. 예부터 불가(佛家)에서는 ‘세계가 한 송이의 꽃[世界一花]’임을 강조하였다. 세계는 한 송이 꽃이니 나와 네가 둘이 아닐 것이고, 산천초목이 둘이 아닐 것이고,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둘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미욱한 중생들은 세상이 한 송이 꽃인 줄 모르고 나와 너를 구분하고 내 것과 네 것을 분별하고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눠서 다투는 것이다. 지혜의 눈으로 보면 흙이 있어야 흙에서 자라는 초목이 있고, 초목이 있어야 초목을 먹고 사는 동물도 있는 것이다. 이는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네가 있음을 역설한 부처님의 연기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집필자 : 유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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