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하안거 결제 법어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識得拄杖子 이 주장자의 진리를 알 것 같으면
官不容針 관에는 바늘도 용납하지 않음이요,
私通巨馬 사사로이는 거마가 통함이로다.
금일은 무술년 하안거 결제일(結制日)입니다.
결제에 임하는 사부대중은 이번 안거에 반드시 자기의 본분사를 해결하여 생사에 자재(自在)하고 진리의 낙(樂)을 수용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가장 높은 진리인 심인법(心印法)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크게 흥하다가 한국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한 줄기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간과 선원에서도 화두참선이 아닌 다른 수행법에 관심을 보이는 이가 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먼저 화두에 대한 철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화두참선은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에 이르는 경절문(徑截門)입니다. 그러기에 조사선의 가풍은 명안종사(明眼宗師)인 선지식이 제자를 지도할 때에 부드러운 봄바람이 아니라, 벽력같은 할과 온몸이 부서지는 방(棒)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알면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에 곧 바로 들어가는 것이고, 부처님과 조사 스님을 알고 팔만 사천 법문을 모두 아는 것이어서, 모든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천하를 종횡하는 것입니다.
대중들은 이 번 결제 기간 내에 반드시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겠다는 대장부의 용맹심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남들이 하니까 흉내 내어 따라 한다거나, 참선이 좋다고 하니까 한 번 해본다거나 하는 생각으로는 일대사를 결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가 밀리고 밀려도 포기하지 않고 노를 저어 상류에 도달하듯이, 백절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조금도 빈틈없이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 합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참구하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합니다. 이 화두를 일상 생활하는 가운데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할 때에도 챙기고 의심하여, 화두일념이 지속되게끔 하루에도 천 번 만 번 챙기고 의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참의심이 시동 걸리게 됩니다.
이때는 몇 시간이 지나가고, 며칠, 몇 달이 지나가는 줄을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진리의 문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6년의 용맹정진 끝에 새벽 별을 보고 대오견성(大悟見性)하신 심인법이 이심전심으로 가섭존자, 아난 존자로 좇아, 28대 보리 달마 조사에 이르렀습니다.
달마조사는 인도에서의 인연이 다함을 아시고 중국으로 건너와 선법(禪法)을 전하니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가 되었습니다. 그 선법이 홑[單]으로 전해지다가 육조 혜능 선사에 이르러 그 문하에서 크게 흥성하여 많은 도인 제자들이 배출되어 천하를 덮었습니다.
그 가운데 으뜸가는 진리의 기봉(機鋒)을 갖춘 분이 남악 회양(南嶽懷讓) 선사와 청원 행사(靑原行思) 선사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와 중국과 일본에서 종풍(宗風)을 떨치고 있는 선법은, 육조 혜능 선사의 이 두 상수(上首) 제자의 법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청원 행사 스님이 육조 선사를 처음 참예(參詣)하여 예 삼배를 올리고 여쭙기를,
"어떻게 해야 계급에 떨어지지 않습니까?"하니, 육조 선사께서 도리어 물으셨다.
“그대는 무엇을 닦아 익혀왔는고?”
“성인의 법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떠한 계급에 떨어졌던고?”
“성인의 법도 오히려 행하지 않았거늘, 어찌 계급이 있겠습니까?”
진리의 눈이 열리면 이렇게 쉽습니다. 묻고 답하는 데 두미(頭尾)가 이렇게 척척 맞게 되어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육조 선사께서 매우 흡족히 여기시고 행사 스님을 제자로 봉(封)하셨던 것입니다.
하루는 남악 회양 스님이 육조 선사를 친견하니, 육조께서
"그대는 어디서 오는고?"하고 물으셨다.
“숭산(崇山)에서 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오는고?”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닦아 증득하는 법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닦아서 얻음은 없지 아니하나 더러운 데 물드는 일은 없습니다.”
“더러운 데 물들지 아니함은 모든 부처님의 살림살이이다. 너도 그러하고 나도 또한 그러하니 잘 두호(斗護)하라.”
육조 선사께서 이렇게 인증하셔서, 형과 아우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훌륭한 안목을 갖춘 이 두 제자를 상수제자(上首弟子)로 봉하셨습니다. 청원 행사 선사는 향상일로의 진리의 체성(體性)을 전하셨고, 남악 회양 선사는 향하의 대용(大用)의 법을 전하셨습니다.
이 진리 자체에는 체와 용이 본시 둘이 아니어서, 체가 용이 되기도 하고 용이 체가 되기도 하여 둘이 항상 일체입니다. 그래서 구경법을 깨달아 향상의 진리를 알게 되면 향하의 진리도 알게 되고, 향하의 진리를 알면 향상의 진리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둘이 아니면서 이름이 둘입니다. 이후 청원 행사․남악 회양 두 분 선사의 계파를 좇아서 선종의 오종(五宗)이 벌어졌습니다.
남악 회양 선사 문하에서는 임제종과 위앙종이 내려왔고, 청원 행사 선사의 문하에서는 조동종과 법안종, 운문종이 벌어져 중국 천하를 풍미했던 것입니다.
남악 회양 선사 밑으로 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임제(臨濟) 선사로 이어져 내려왔고, 청원 행사 선사 밑으로 석두(石頭)-도오(道悟)-용담(龍潭)-덕산(德山) 선사로 쭉 이어져 내려왔으니, 임제의 할(喝)과 덕산의 방(棒)은 육조 문하의 양대 아손(兒孫)의 가풍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고려 말엽, 불법이 쇠퇴일로를 걷고 있을 당시에 태고 보우(太古普愚) 스님이 각고정진 끝에 선지(禪旨)를 깨닫고 중국의 원나라로 건너갔습니다. 중국 천지의 명안(明眼) 선지식들에게 부처님의 정법정안(正法正眼)을 전수받아 와서, 우리나라에도 바른 진리의 법을 펴야겠다는 큰 원[大願]을 세우고, 중국 땅에 들어가서 제방(諸方) 선지식들을 참방(參訪)하셨던 것입니다.
하루는 부처님 심인법 56조 법손인 석옥 청공(石屋淸珙) 선사를 참방하여 예배하고 말씀드렸다. “고려국에서 스님의 높으신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그러자 청공 선사께서 물음을 던지시기를, “우두 법융(牛頭法融) 스님이 사조 도신(四祖道信) 선사를 친견하기 전에는, 어찌하여 천녀(天女)들이 공양을 지어 올리고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왔는고?” 하니, 태고 보우 스님이 “부귀는 만인이 부러워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두 스님이 사조 선사를 친견한 후로는, 어찌하여 천녀들이 공양을 올리지도 않고, 새들도 꽃을 물어오지 아니했는고?” “청빈함은 모든 분들에게 소외되기 쉽습니다.”
그러자 청공 선사께서 두 번째 물음을 던지셨습니다. “공겁(空劫) 전에 태고(太古)가 있었는가?” 우주의 모든 세계가 벌어지기 전이 공겁(空劫)인데, 그 공겁 전에도 그대가 있었는가 하고 물으신 것입니다. “공겁의 세계가 태고로 좇아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청공 선사께서 주장자를 건네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일생토록 이 주장자를 써도 다 쓰지 못한 고로, 이제 그대에게 부치노니 잘 받아 가져서 광도중생(廣度衆生)하기 바라노라.”
이렇게 태고 보우 스님이 부처님의 정법정안을 부촉 받으니 부처님 심인법 57조 법손이 되어서 그 법맥이 우리나라에 전해졌습니다.
그 후, 조선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고, 조선 중기의 부처님 심인법 63조인 청허 휴정(淸虛休靜) 선사로 이어진 후,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풍전등화로 그 법맥이 이어져 왔습니다.
근세 한말(韓末)에 75조 경허(鏡虛) 선사에 이르러 선풍을 중흥하여 혜월(慧月) 스님에게로 법을 전했습니다. 혜월 선사가 남쪽으로 내려와서 법을 펴시니, 운봉(雲峰) 선사에게 전해지고, 향곡(香谷) 선사에게로 등등상속(燈燈相續)하여 부처님 심인법 79세인 산승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역대의 모든 불조(佛祖)께서 끊어지지 않도록 노심초사한 부처님 심인법이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해진 후, 오직 한국에서만 오늘날까지 그 법이 우리의 선불장에서 오롯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 귀하고 귀한 부처님의 심인법을 다시 세계에 널리 선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선법은 임제 선사의 선풍을 이은 임제종입니다. 예전에 향곡 선사께서 산승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덕산 선사의 ‘방(棒)’의 가풍을 소중히 여기느냐, 임제 선사의 벽력같은 ‘할’의 가풍을 소중히 여기느냐?”
그래서 산승은 말하였습니다. “두 가풍을 모두 한 구덩이에 매장하겠습니다.”
또 물으시기를, “필경일구, 작마생?(畢竟一句, 作麽生?: 필경에 일구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산승이 또 답하였습니다. “무운생령상(無雲生嶺上)하고 유월낙파심(唯月落波心)이라. 산봉우리에 구름이 걷히니 산마루가 드러나고, 밝은 달은 물결 위에 떠 있습니다.”
[주장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하시다]
· 집필자 : 진제 법원 대종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