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어
오늘은 무명(無明)의 사바세계에 지혜의 광명으로 부처님께서 강탄(降誕)하신 인류정신문화의 날이며 환희가 충만한 날입니다. 고통의 바다에 빠진 중생들을 위해 대자대비 연민으로 참나 선언과 참된 생명 본연을 만유법계에 천명하신 것입니다.(「진제 선사 2017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어」)
세계적인 종교인 불교는 알다시피 석가모니 부처님이 만든 종교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 8일)은 가장 중요한 기념일이자 불교계 최대의 명절이다. 불교계의 각 기관과 단체들은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봉축사를 잇따라 발표한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과 불교의 근본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이를 받들겠다고 하나같이 다짐한다. 그 중심에는 한국불교 최대 종단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의 봉축법어가 있다. 종단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도자이자 한국불교의 가장 웃어른으로서 부처님오신날의 궁극적 의의를 밝힌다. 2012년부터 22년까지 10년간 종정으로 재임한 진제 선사는 총 9번의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어를 발표했다. 해마다 모든 국민과 세계인에게 부처님 탄생의 참된 의미를 설하고 부처님을 따르는 불자로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봉축법어 또한 진제 선사 사상의 핵심인 ‘참나’로 귀결된다. 내가 아닌 우리를 먼저 생각할 때 참나는 실현된다.
진제 선사의 봉축법어를 꿰뚫는 키워드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이다.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라는 뜻이다. 불교의 사상적 근간이자 존재 이유인 동체대비의 가르침은 2020년 법어에서 유독 잘 드러난다.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만물여야일체(萬物與我一體)로다.’ 즉, ‘천지가 나와 더불어서 한 뿌리요, 모든 존재가 나와 더불어서 한 몸이로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첫머리에 인용했다. 참나란 육체적 자아라는 한계와 소견을 초월한 존재이다. 내 마음이 나만의 욕심을 벗어나 모두의 행복을 생각하고 실천할 때, 지속 가능한 평화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2019년 진제 선사는 “모든 불자들은 부처님께서 대자대비로 사바(裟婆)에 나투심에 환희 찬탄하며 기도하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만이 아닌 우리를 위해 동체(同體)의 등을 켜고, 내 가족만이 아닌 어려운 이웃들과 자비의 등을 켜고, 국민 모두가 현재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희망의 등을 켜 나가자.”라고 당부했다.
물론 동체대비는 너무 멀리 있는 이상이다. 그동안 인류는 서로 어울리고 보듬기보다는 학대하고 착취하면서 역사를 이어왔다. 진제 선사는 2012년 종정 취임 후 첫 봉축법어에서 그 원인을 정확하고 통렬하게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불화와 갈등은 탐진치가 그 원인이다.”라는 일침이었다. 진제 선사는 “탐욕으로 인하여 갈등이 일어나고, 성냄으로 인하여 투쟁이 일어나고,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사리를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니, 이로 인해 괴로운 과보는 반복되며 세상은 고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질책했다. 탐진치는 조금씩 모양을 바꿔가며 언제 어디에나 나타나 사람을 아프게 하고 세상을 병들게 한다. 진제 선사는 “계층 지역 빈부 이념 종교 등의 모든 갈등은 시비와 투쟁으로 표출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면에 충돌을 일으켜 행복해야 할 인류가 불안과 공포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고해를 벗어나는 궁극적인 방법은 참나를 깨닫는 일이다. 진제 선사는 2013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어에서, “부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갚고자 할진대, 한편으로는 일체중생들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아끼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일상생활 속에 참나를 찾아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참나는 내 안에 있다.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가 참나 가운데 다 갖추어져 있음이니, 모든 분들이 일상생활 속에 참나를 깨달아 만사람을 진리의 국토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라며 끊임없는 수행과 포교를 독려했다. 그 어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도 완전한 세계평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진제 선사는 참나의 발견과 회복이 ‘부처님의 은혜를 온전히 다 갚는 단 하나의 길’이라고 명시했다.
화두 타파가 참나를 밝히는 유일한 해법이다. 진제 선사는 2016년 법어에서 “고귀한 생명을 경시하고 무상한 물질을 숭배하는 이 깊은 병통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라는 화두를 들고 정진수행으로 일념삼매에 들어, 참나를 깨닫는 것이다”라고 설했다. 그러면서 “우주만유의 본질인 생명의 존엄성과 우주 원리를 자각해 일체중생이 고뇌가 없는 영원한 생명의 실상을 현실세계에서 수용해 대자유 해탈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자.”고 격려했다. 인류 최고의 스승인 부처님의 큰 지혜와 공덕을 누리려면 다른 방도가 없다. 오로지 “일상생활 속에서 오매불망 간절히 ‘부모에게 나기 전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의심하고 의심하는 것이다.”(「2017년 봉축법어」)
진제 선사의 봉축법어는 항상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맞춤형’ 해법이었다. 현실 상황에 맞게 시의적절한 위안을 주었다. 2020년 4월 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할 무렵에는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웠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목과 대립을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 대통합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다독였다. 바이러스가 인류의 오랜 탐욕이 빚어낸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면서 사람들의 연대와 결속을 당부했다. “법계(法界)가 서로 연기되어 있기에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며 “서로를 용서와 화합으로 이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하자.”는 엄숙한 메시지를 던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을 때에는, “극락왕생 발원과 무사귀환의 등을 밝히자.”라고 앞장서서 권선했다. “나의 한 몸과 같은 어린 생명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우리 곁을 떠나갔다.”라며, “다 같이 극락왕생 발원의 등과 무사귀환의 등을 밝혀 영원한 행복과 평화를 기원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한다.”고 진심으로 위로했다. 위대한 수행자를 넘어 우리 사회의 따뜻한 어른으로서의 면모가 부각되는 대목이다.
참나가 구현되면 동체대비가 구현된다. 동체대비가 구현되면 세계평화가 구현된다. 이는 부처님이 실현하려고 했던 궁극적 이상이다. 곧 부처님 제자로서 부처님처럼 살아가는 일이란 내 안의 참나를 밝히는 일이다. “모든 불자들이 연등을 밝혀 부처님을 맞이하는 이 수승한 인연으로 지구상의 모든 이웃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하며, 동체대비의 대승보살도가 국민통합으로 회향하는 공덕이 될 것이다.”라는 진제 선사의 2018년 봉축법어는 이러한 원리를 규명하고 있다. 결국 부처님은 법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지구상의 모든 이웃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하며, 그 고통을 덜어주고 대신 앓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대승보살도를 시현하는 그곳이 부처님 오신 도량입니다.”(「2016년 봉축법어」) 왜 부모미생전 본래진면목 화두 정진에 전념해야 하는지, 중생으로서의 자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일러주는 글귀다. 참나가 바로 부처님이다.
· 집필자 : 장영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