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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망구, 진정한 수행의 자세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이 화두를 앉으나 서나, 가나 오나, 자나 깨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하루에도 천 번 만 번하여 흐르는 시냇물처럼 이어지게 하여야 할 것이라.
진제 선사의 신축년(2021년) 동안거 해제 법어의 일부이다. 3개월 간의 정진을 마치고 산문을 떠나는 납자들을 향한 당부이다. 화두를 향한 간절하고 순일한 의심이 수행의 근간임을 가르치는 대목이다. 진제 선사가 언제 어떤 법어에서든 강조하는 내용이다. 대오견성하려면 자신의 삶에서 오직 화두 하나만 남겨야 한다고 채근한다. 그리고 화두와 하나가 되려면 나를 버려야 한다. 부모에게 나기 이전의 참나를 깨우치려면, 육체로서의 자기 자신이 헛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세속의 명리에 대한 애착을 떨칠 줄 알아야 하며 사사로움과 결별해야 한다. 진제 선사는 역대 조사들에 필적하는 마음의 살림살이를 보여준 이 시대의 스승이다. 곧 당신의 삶만큼이나 선사들의 고사(古事)는 수행하는 이들에게 큰 귀감이자 나침반이 된다. 깨닫고야 말겠다는 발심을 북돋우고 수행의 바른 길을 제시한다. 진제 선사는 공안의 소재가 되는 중국 당송 시대 선승들의 이야기를 항상 법어에 싣는다. ‘마조일할’이나 운문삼전어‘가 대표적이다. 마음의 고향인 참나에 이르는 방법을 함축적으로 시사하며 궁극적으로 화두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르침도 들어 있다. 그럼으로써 동시에 진제 선사의 수행론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운문종(雲門宗)의 개창조(開創祖)인 운문 문언(雲門文偃) 선사는 어려서 출가해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신심과 정진으로 일관했다. 당시는 목주 도명(睦州道明, 780-877) 선사의 명성이 높았던 때다. 그는 조그마한 단칸 토굴을 지어 홀로 수행했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했다. 목주 선사의 도력이 크다는 소식을 들은 운문 선사는 ‘내가 그 스님을 친견하고 탁마(琢磨)받아서 기어코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의 법을 깨치리라.’라고 마음먹고 목주 선사를 찾아갔다. 목주 선사의 토굴 앞에 이르러 사립문을 똑똑 두드리자, 목주 선사가 문을 반쯤 열고 나오더니 대뜸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이르고 일러라!” 운문이 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목주는 서슴없이 한 손으로 운문을 밀어버렸다. 힘에 밀린 운문은 저만큼 가서 나동그라졌고, 목주는 냉정하게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만약 도를 깨쳤다면, ‘이르고 일러라!’ 할 때 답이 척 나오게 되어 있다. 가혹한 문전박대에도 운문은 포기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수차례 목주를 친견하고자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이르라’는 목주의 독촉에 번번이 답을 하지 못하니, 도무지 집 안에 들어가서 진법문(眞法門)을 들을 기회가 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처소로 돌아가 혼자서 용맹정진을 하던 어느 날, ‘이번에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목주 도인 토굴 안에 들어가고야 말리라.’하며 각오를 단단히 세웠다. 분심(憤心)으로 충만해 다시 목주를 찾아가서는 사립문을 두드렸다. 목주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운문의 멱살을 잡고는, “이르고 일러라!”고 윽박질렀다. 운문은 또 우물쭈물하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어떻게 해서든지 토굴 안에 들어가리라 결심했기에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임했다. 또 다시 밖으로 밀어내는 목주의 팔을 부여잡고 전신의 힘을 다해 버티면서 간신히 한 발을 사립문 안에 밀어 넣었다. 목주도 전혀 봐주는 기색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드잡이를 하다가 결국 사립문을 닫아버렸다. 문 안으로 들여놓았던 운문의 다리가 여지없이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아얏!” 골절의 극심한 통증에 운문은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뼈가 부러지는 순간, 운문은 자신이 지른 이 소리에 진리의 눈이 활짝 열렸다. 견성한 운문은 일생을 절름발이로 살면서 불법을 선양하였다. 육신을 바치는 대신 법신을 깨달음으로써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임제 의현 선사 역시 위법망구의 표본을 보여준다. 열심히 정진하던 젊은 임제 스님은 어느 날 조실인 황벽 희운 선사에게 찾아가 참문했다. 황벽 선사는 이미 큰 법기(法器)가 하나 와서 진실하게 공부 해나가고 있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황벽 선사를 친견한 임제 선사는 삼배를 올리며 예를 갖춘 후, “스님, 어떠한 것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입니까?” 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황벽은 대답 대신 다짜고짜 갖고 있던 주장자로 임제를 20대나 때렸다. 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임제 스님은 겨우 몸을 이끌고 나와 간병실에 몸을 뉘였다. 절에서 대중을 관리 지도하는 반장 격인 입승을 보던 목주 선사가 문안을 왔다. 고통에 힘겨워하는 임제를 보며 비장하게 말했다. “이 대도의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신명(身命)을 내던져야 하네. 설사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만 쪽이 나더라도 거기에 조금이라도 애착을 두어서는 안 되네. 그러니 그대가 다시 한 번 큰 신심을 내어, 내일 아침에 조실 스님께 가서 종전과 같이 묻게.” 목주 선사의 격려에 마음을 다잡은 임제 선사는 그 다음날도 용기를 내어 조실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똑같았다. 어제와 같이 방망이 20대를 맞고 물러 나와야 했다. 도리가 없었다. 잔뜩 낙담한 채로 절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황벽 선사를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스님, 스님께서는 큰 자비로 저에게 법방망이를 내려 주셨는데, 제가 업이 지중하여 미혹한 까닭에 진리의 눈을 뜨지 못하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황벽 선사는 퉁명하게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바로 고안(高安) 강변으로 가서 대우(大愚) 선사를 찾게. 틀림없이 자네를 잘 지도해 주실 것이네.” 바랑을 짊어진 임제 선사는 황벽 선사가 추천한 고안 대우 선사를 향해 길을 떠났다. 수백 리 길을 걸어가는 동안, 걸음걸음이 의심이었다.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어째서 황벽 선사께서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세 번 다 이십 방(棒)씩 육십 방을 내리셨을까?” 그대로 일념삼매에 빠져서 걷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수백 리 길을 걸어갔다. 팔만 사천 모공에 온통 그 의심뿐이었다. 임제 의현 선사가 선종사(禪宗史)에 대선지식으로 기록된 역사적인 출발이었다. 진제 선사는 안거 법어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참선법은 바로 이와 같은 일념을 지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구하는 한 생각이 간절하게 지속되게 되면, 그 가운데서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지은 업이 빙소와해(氷消瓦解)되어 몰록 진리의 문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되지 않는 이유는 화두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제 선사는 “참학인(參學人)들이 10년, 20년 동안을 참구해도 진리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까닭은,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간절한 한 생각이 지속되지 않는 탓이다.”라며 “누구든지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경계를 다 잊어버리고 몰록 일념삼매에 들어 부동일념(不動一念)이 되면, 일기일경상(一機一境上)에 홀연히 견성대오(見性大悟)하게 된다.”고 당부했다. ‘진정한 나’는 ‘과거의 나’와 절연해야 만날 수 있다. 육체와 관념으로서의 ‘나’는 유한하며 헛것이다. 가짜 나를 버려야만 진짜 내가 된다. 역대 조사들이 극단적 고통을 감수하면서 용맹정진한 까닭 역시 가아(假我)의 굴레를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진제 선사가 강조하는 화두일념이 그 열쇠이다.
화두일념
· 집필자 : 장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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