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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거 법어에 나타난 진제 선사의 사상

안거(安居)는 불교의 오랜 전통이다. 2,6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있었을 때부터 행해지던 제도다. 고대 인도에서 수행자들은 장맛비가 내리는 우기(雨期) 3개월 동안 일정한 장소에서 바깥출입을 일절 하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했다.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을 강조하는 불교이고, 비 내린 길을 다니다가 행여 진흙길에서 올라오는 벌레들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이 1차적 이유였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부처님이 성취한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이루기 위한 ‘고요 속의 전쟁’이다. 이러한 안거는 세월이 흘러 불교를 대표하는 풍습으로 정착했다. 인도와 달리 계절 변화가 뚜렷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우기 3개월만이 아니라 여름과 겨울 각각 3개월, 곧 1년에 절반은 안거를 시행한다. 임제선을 계승한 한국불교 최대 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은 선(禪) 수행을 으뜸의 가치로 받드는 종단이다. 그러므로 안거의 가풍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으며 납자들은 깨달음을 향한 결기로 가슴이 달아오른다. 진제 선사가 깨달을 수 있었던 터전도 안거였다. 젊은 시절 하안거 동안거 때마다 전국의 선원에서 불철주야 화두를 들었고 선지식과의 법거량을 통해 공부가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 점검받았다. 견성을 하고 선지식의 반열에 오른 뒤에는 스승의 역할을 했다. 안거에 참여한 스님과 재가불자들에게 화두를 제시하고 화두를 드는 방법을 지도하고 격려했다. 2012년 제13대 종정에 취임하고부터는 특정 선원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사부대중이 진제 선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안거가 시작되는 결제(結制)와 끝마치는 해제(解制) 때마다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는 종정(宗正)은 법어를 내려 본격적인 수행에 임하는 선승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다독인다. 13·14대 종정을 연임하며 무려 10년간(2012~2022) 종단과 한국불교의 정신적 지도자로 자리했던 진제 선사 역시 안거 법어를 꾸준히 발표했다. 힘찬 언어 속에 불교의 본질을 담으며 부처님 제자라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열어보였다.
2022년 임인년 동화사 동안거 결제 법어
권위와 정통성을 지닌 진제 선사의 안거 법어는 구조적으로 고유한 특징을 갖는다. 선풍을 드날렸던 역대 조사들의 법어에 전혀 뒤지지 않는 품격을 갖췄다. 먼저 서두에서 안거에 대한 소감과 수행자들이 안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이어 대오견성(大悟見性)의 유일한 길인 화두의 절대적 중요성을 설파하면서 화두의 소재가 되는 중국 역대 조사들의 선문답을 예화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진수를 보여주는 게송으로 당신이 도달한 향상일구의 미묘한 경지를 보여준다. 진제 선사의 게송은 얼핏 난해하고 모호해 보이지만, 삼라만상의 원리와 세속의 이치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걸작이다. 종정으로 재임하면서 보여준 10년간의 법어들은 말 그대로 깨달음의 언어이다. 헤아리기 어려운 깊이를 보유하고 있으며 확철대오(廓徹大悟)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인생이 긴 것 같지만 흐르는 시냇물처럼 밤낮으로 쉼 없이 흘러감에 돌이켜 볼 때 그 빠르기가 쏜 화살처럼 신속함이라. 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오늘 있다가 내일 가는 것이기에 사람의 몸을 받은 금생(今生)에 생사윤회의 고통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 금일 결제에 임하는 대중들은 산문을 폐쇄하고 회광반조(回光返照)하여 마음에서 우러나는 간절한 각오로 화두와 씨름해야 할 것이라.
일례로 2021년 신축년 동안거 결제 법어의 앞부분이다. 결제에 들면서 진제 선사가 가장 먼저 주문하는 것은 철저하고 강력한 정진이다. 이번 생에는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며 안거에 임하는 스님들을 한사코 재우친다. 그 이유는 간명하다. 시간은 짧고 인생은 허무하기 때문이다. 말초적인 감각과 달콤한 소음에 취해 허송세월하다 보면 속절없이 죽음으로 나가떨어져야 한다. 다만 다행히도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종(種)인 인간으로 태어났다. 윤회를 거듭하는 생명이 사람으로 환생할 확률은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고 했다. ‘눈먼 거북이가 망망대해 속을 잠수해 다니다가 문득 수면으로 고개를 쳐들었을 때 널빤지에 머리를 부딪힐 확률’이라는 기막힌 비유다.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이처럼 극히 희박한 확률을 갖는다. 그러므로 인간의 몸을 받은 이번 생이 번뇌와 고통의 윤회에서 해탈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불행할 수 있다. 그리고 실존의 궁극적 문제는 화두만이 해결해줄 수 있다. 진제 선사는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라면서도 필생의 화두인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강조한다.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이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가운데 오매불망(寤寐不忘) 간절히, 화두의심이 뼈골에 사무치게 의심을 밀고 또 밀고 할 것 같으면 석 달 이내에 모두 다 견성(見性)할 수 있음이라.” 부모미생전 화두를 간절한 마음으로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안거 3개월간 파고들면 반드시 도와 통할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을 선사한다. 정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결같은 일심(一心)이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철저한 의심이 뼈골에 사무치지 않은 때문에 혼침, 번뇌, 망상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허송세월만 하게 된다.”라는 경책은 날카롭고 아프지만 그만큼 사람을 살리는 칼이다. ‘삶의 본질적인 허무에 대한 통찰과 치열한 화두정진’ 진제 선사가 법어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그리고 이 금언(金言)은 해마다 계절마다 반복된다. “우리가 세간의 온갖 풍요와 편리를 마다하고 자발적으로 산문을 폐쇄하고 세상과 단절하고 정진하는 것은 오로지 나고 죽는 윤회의 고통에서 영구히 벗어나는 데 있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로다.”(「2020년 동안거 법어」) “구름이 허공중에 두둥실 떠 있다가 바람이 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인생도 이와 같이 이 사바세계에 잠시 머물렀다가 구름처럼 가뭇없이 사라짐이라.”(「2017년 동안거 법어」) 조금씩 다른 낱말과 수사로 변주되기는 하지만, 요지는 일관되다. ‘참나’를 깨우쳐야만 고통이 멈춘다는 것이다. 아울러 ‘참나’는 오직 나만이 이룰 수 있다. “이 일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스스로 닦아서 스스로 증득해야 함이로다.”(「2020년 동안거 법어」) “결제에 임하는 대중은 신심과 용맹심으로 모든 반연(攀緣)을 다 끊고 모든 습기(習氣)에 놀아나지 않고 각자의 화두를 성성(惺惺)하게 챙겨서 팔만사천 모공(毛孔)에 의심이 사무쳐야 합니다.”(「2016년 하안거 법어」) 세속에 대한 관심과 미련을 거두고, 잘못된 습관과 회한을 털어내고 화두를 매개로 해서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만 파고들어야 한다. 털구멍 하나하나에 화두에 대한 의심이 배어 들 때까지 말이다.
· 집필자 : 장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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