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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선사가 추천하는 화두

진제 선사는 평소 ‘마조일할’ 공안을 자주 이야기한다. 당신이 으뜸가는 선지식이라 평가하는 마조 도일 선사가 남긴 화두다. 진제 선사는 당나라 시대에 위대한 마조 선사 회상(會上)에서 전국의 발심한 납자들이 밤낮으로 용맹정진하여 84인의 도인 제자를 배출했다고 설명한다. 훌륭한 제자는 많았으나 마조에게서 직접 법을 전해 받은 제자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향상일구를 투과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결국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전법제자는 5~6인의 소수에 불과하다. 백장 회해(百丈懷海, 749-814) 선사가 그 가운데 한 명이다.
2009년 백고좌대법회 법문
어느 날 마조 선사가 법상에 앉아 있는데 백장 선사가 들어왔다. 마조가 대뜸 법상 모서리에 걸쳐 놓았던 불자(拂子)를 들어보였다. 백장이 물었다. “이를 바로 씁니까, 여의고 씁니까?” 그러자 마조는 불자를 원래 있던 자리에 도로 두었다. 백장이 한동안 말이 없자 마조가 물었다. “그대는 장차 양 입술을 열어 대중을 위해서 어떻게 가려는가?” 그러자 이번에는 백장이 걸려 있던 불자를 들어 보였다. 마조가 다시 물었다. “이를 바로 씀인가, 이를 여의고 씀인가?” 백장은 아무 말 없이 마조가 그랬던 것처럼 불자를 제자리에 두었다. 마조가, “억!” 하고 벽력같이 고함을 쳤다. 이 ‘할(喝)’에 백장은 혼비백산하여 사흘 동안이나 귀가 먹었다. 귀가 다시 열리고 난 후 마조가 고함을 친 의미를 깨달았다. ‘일할(一喝)’이란 말 그대로 외마디 고성이다. 한 번 큰 소리로 꾸짖는다는 ‘일갈’이란 보통명사가 여기서 유래했다. 고함 한 번에 도를 깨달았다? 상식적인 관점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맥락도 없고 실마리도 없다. 하지만 분명 여기에는 지극한 대도가 숨어 있다. 수행자라면 이를 ‘알 수 없음’을 화두로 삼고 철저하게 참구해야 한다. 이 화두에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굳건히 믿고 세차게 자신을 밀어붙여야 한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확신과 부처가 되기 위한 열정. 이 두 가지가 간화선을 받치는 기반이고 끌어가는 원동력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임제 의현 선사의 임제종을 계승하는 선종이며, 임제 의현은 마조 도일의 계보를 잇는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종단의 스님이라면 반드시 마조일할을 뚫어야 한다. 진제 선사는 조계종 종정으로서 2020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마조일할 화두를 제시하며 선승들의 각오와 분발을 당부했다. “마조 선사의 이 ‘일할(一喝)’이 얼마나 위대하길래, 두 분 선사께서 그 아래에서 몰록 깨치셨을까?”라고 물으면서, 이 ‘일할’ 가운데 비춤[照]도 있고, 씀[用]도 있고, 줌[與]도 있고, 뺏음[奪]도 있고, 죽임[殺]도 있고, 삶[活]도 있다고 설했다. 세상만사와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가, 본질과 작용이, 단말마 외침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일할(一喝)의 낙처(落處)에 영원한 행복이 빛난다. 진제 선사는 그해 결제 법문에서 ‘운문삼전어’도 말했다. 운문종(雲門宗)을 개창한 운문 문언(雲門文偃, 884-949) 선사의 운문삼전어(雲門三轉語) 역시 진제 대선사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화두다. 운문 선사가 열반에 이르러 대중에게 세 가지 법문을 내렸다.
첫 번째, 어떤 것이 진리의 도인가? 두 번째, 어떤 것이 제바종(提婆宗)인가? 세 번째, 어떤 것이 진리의 보검인가?
제바종이란, 부처님 심인법의 제14조 법손인 가나제바(迦那提婆) 존자가 창시한 종파를 가리킨다. 가나제바는 대승불교의 이론적 기반을 닦은 용수보살의 제자로서 당시 인도에서 유행하던 96종 외도(外道)를 전부 논파한 인물이다. 결국 운문삼전어는 궁극적인 절대불변의 진리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운문 선사가 삼전어를 내리자 무리에 있던 파릉 호감(巴陵顥鑑) 선사가 답을 내놓았다.
첫 번째, 어떤 것이 진리의 도인가? “눈 밝은 이가 깊은 우물에 떨어졌습니다.” 두 번째, 어떤 것이 제바종인가? “은쟁반에 흰 눈이 소복했습니다.” 세 번째, 어떤 것이 진리의 보검인가? “산호나무 가지가지에 달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이에 운문 선사는 파릉의 답변을 크게 칭찬하면서 “내가 열반에 든 후, 기일(忌日)에 갖가지 음식을 차리지 말고 항상 이 세 마디 법문을 들려만 다오.”라고 유언했다. 운문삼전어 역시 마조일할과 마찬가지로 문맥이 통하지 않는다. 으레 생각하는 진리나 도에 대한 개념과 전혀 다른 뚱딴지같은 대답이다. 그럼에도 진제 선사는 파릉 스님이 멋진 답을 했다며, 이 세 마디 법문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49년간 설하신 팔만대장경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마조 선사의 일할과 운문 선사의 삼전어를 알아야만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아는 것이라고 짚었다. 진리를 천추만대에 전하는 저력을 갖추어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고, 인간세계와 천상세계에서 진리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럴싸한 진리, 글로 아는 진리, 입으로 떠드는 진리는 절대 진리가 아니다. 눈이나 귀의 감각이 아닌 이른바 온몸으로 달려들어야만 투과할 수 있다.
· 집필자 : 장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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