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심인법(心印法)의 계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 선(禪)의 초조(初祖)이자 부처님 심인법 제28조인 달마 조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다.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面壁)하면서 법기(法器)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2조 혜가에게 법을 부촉했다. ‘부촉(付囑)’이란 불법의 보호와 전파를 다른 이에게 맡겨 부탁하는 일을 가리킨다. 이어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에 이르러서 비로소 조사선이 확립되었다. 법은 면면이 이어졌다. 6조 혜능의 깨달음은 남악 회양(南嶽懷讓), 마조 도일(馬祖道一), 백장 회해(百丈懷海), 황벽 단제(黃檗斷際)를 거쳐, 임제 의현(臨濟義玄)에 이르러 최고조로 흥성했다. 임제 선사를 중심으로 한 임제종이 중국 천하를 뒤덮은 것이다.
국토가 인접한 중국과 한국은 예로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 조사들의 심인법이 한국 조사들에게 옮겨온 때는 14세기 중반이다. 원나라 때에 56조인 석옥 청공(石屋淸珙) 선사의 법을 1346년 고려의 태고 보우(太古普愚) 선사가 이어받으면서다. 한반도의 심인법은 고려 말 환암 혼수(幻庵混修)를 지나 조선 시대에 63조인 서산 휴정(西山休靜)의 법을 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 선사 등등이 계승하면서 억불 시대에도 명맥을 꿋꿋이 이어갔다. 조선 말기가 되어서 오래 움츠려있던 선의 기백은 다시 빛을 발했다. 75조 경허 선사가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했고, 76조 혜월 선사, 77조 운봉 선사, 78조 향곡 선사가 그 뒤를 받쳤다. 바야흐로 진제 선사가 79조가 되어 현재 오로지 우리나라에만 남아있는 정통 심인법을 지키며 펼치고 있다.
특히 진제 선사는 역대 조사들 가운데서도 마조 도일 선사를 매우 높이 평가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로 가장 위대한 도인이다.”라는 발언에서 지순한 존경심을 느낄 수 있다. 마조 도일 선사는 벽돌을 간다고 해서 거울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한 남악 회양 선사의 충고에 크게 각성했다. 이후 선법(禪法)을 깨쳐 홍주종(洪州宗)을 개창하고 80여 명의 도인을 제자로 거느리며 조사선의 흥성을 이끌었다. 법호인 ‘마조(馬祖)’는 ‘마씨(氏)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소탈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이름이다. 마조의 조사선은 유난히 단출하고 담백하다. 무념위종(無念爲宗), 무념을 근본으로 삼는다. 생각하되 그 생각이 실체가 아니라 마음이 만든 헛것임을 자각하고, 그 생각에 억압당하지 않으면 거기가 바로 깨달음의 경지라는 것이다.
평소의 이 마음이 바로 도(道)이다. 짐짓 꾸미지 않고, 이러니 저러니 따지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만 좇지 않고, 무엇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얽매이지 않고, 평범하다느니 성스럽다느니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마조어록』)
마조 선사의 심오하고 숭고한 사상은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한 마디로 귀결된다. 평상심이란 지금 이 순간 흘러가는 마음이며 동시에 흘러가는 마음을 붙잡지 않는 마음이다. 평상심이란 그 어떤 분별도 없이 세상에도 나에게도 집착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소탈하게 차별 없이 두루 존중하고 포용하는 마음이다. 마음에 빗금이라도 긋는 순간, 세상의 절반은 폐허가 된다.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선 안 된다.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지니,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이건 출세간이건 부처도 없고 법도 없다.(『임제록』)
진제 선사는 임제선의 계승자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이어받고 있는 전통인 임제선은 대단히 남성적인 풍모를 갖고 있다. 임제 의현 선사의 법문은 거칠고 패기가 넘치며 말보다는 고함[臨濟喝]으로 가르치기로 유명하다. 물론 그 고함의 기원에는 마조의 선이 깃들어 있으며 평상심의 청각적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임제 선사가 제시한 ‘무위진인(無位眞人)’은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리 없는 참사람’이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 ‘신분과 처지에 굴하지 않는 사람’으로 의역될 수 있다. 결국 세상만사와 삼라만상이 마음놀음임을 확고히 깨달아 만물을 평등하게 바라보고 자비로 대한다면 그가 바로 무위진인이다. “붉은 몸뚱이에 한 사람의 무위진인이 있다. 항상 그대들의 얼굴을 통해 출입한다. 무위진인은 그대 자신이다.”(『임제록』)
조주 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 역시 선종사(禪宗史)에서 탁월했던 도인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조주의 선은 ‘구순피선(口脣皮禪)’이라고 불리는데, 그만큼 입으로 선의 도리를 잘 구사했기 때문이다. 정곡을 찌르는 언변으로 향상구의 이치를 능수능란하게 보여주었다. 일례로 『벽암록(碧巖錄)』은 대표적인 선어록인데, 중국 역대 조사들의 대표적인 화두 100개를 골라 엮었다. 이 가운데 조주 선사를 주인공으로 한 것이 12개로 가장 많다. 특히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조주구자(趙州狗子) 화두는 한국의 선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두로 손꼽힌다.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者]’ ‘차나 마시게[喫茶去]’ 등도 유명하다. 남전참묘(南泉斬猫)라는 초고난도의 화두를 해결한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그 입지를 헤아릴 수 있다. 고양이를 죽인 남전 선사의 살생에 대한 답으로, 묵묵히 짚신을 머리에 이고 방을 나가버렸다는 일화는 선(禪)이 지닌 미묘법의 절정을 보여준다.
해제일이 됐다고 화두를 놓아 버리고 정신없이 산천을 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화두를 챙기고 의심해야 할 것이라…(중략)…요즘 선지식들이 당기(當機)에 다다라 주저하게 되는 것은 견처(見處)도, 살림살이도 다 고인(古人)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변대도의 불법진리를 바로 알려면 고인들의 법문 하나하나를 다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진제 선사 2022년 신축년 동안거 해제 법문」)
2013년 계사년 동화사 하안거 결제 법어 당시
부처님의 심인법은 형상이나 지식이 아닌 오직 ‘마음’으로만 전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내밀하고 심오한 관계 속에서만 주고받을 수 있는 귀한 가르침이다. 책을 읽는다고 알 수 없고 정치적으로 거래할 수도 없다. 관념이나 지식 심지어 지혜의 영역마저도 한참 넘어서 있다. 그리고 화두에 그 미묘법의 진수가 응축돼 있다. 진제 선사가 마조·임제·조주 등 역대 조사들을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궁극적으로 화두라는 유산을 남겼기 때문이다. 화두만이 살 길이고 화두를 깨야만 진짜 삶이 열린다.
· 집필자 : 장영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