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조사선’으로 발전한 부처님 심인법

선(禪)이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무아적정(無我寂靜)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법이다. 부처님이 생전에 사용했던 빨리어 ‘jhana(즈하나)’의 음역(音譯)으로, 부처님 당시부터 행해진 선나(禪那)의 줄임말이다. 흔히 일컬어지는 선(禪)은 6세기 중국의 남북조시대 보리달마가 창시한 선종(禪宗)이 기원이다. 선종의 제6조인 혜능 선사에 의해 사상적 체계가 완성돼 조사선(祖師禪)이란 이름으로 성립됐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역대 조사들이 행하던 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사선의 기초를 닦은 이는 초조였던 보리달마이지만 최고의 경지로 발돋움시킨 주역은 육조 혜능(六祖慧能, 638-713)이다. 가난 속에서 나무를 하며 어머니를 봉양하고 지내던 어느 날, 절에서 『금강경(金剛經)』 읽는 소리를 듣고 홀연히 출가했다. 교육을 받지 못해 일자무식이었으나, 본질을 꿰뚫는 지혜가 대단했다. 혜능은 유명한 게송으로 5조 홍인(弘忍)의 법을 이었다.
菩提本無樹 깨달음에는 본래 나무가 없으며 明鏡亦非臺 밝은 마음의 거울도 역시 받침대가 아니다 本來無一物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는 것인데 何處惹塵埃 도대체 어디에 티끌이 낀다는 말인가.
이 게송은 홍인의 후계자로 유력했던 대통 신수(大通神秀, 606-706)의 게송에 대한 반박 성격으로 읊은 시다. 신수는 박학다식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스님이었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이니, 틈틈이 털고 부지런히 닦아서 때가 끼지 않도록 하자.”는 내용의 게송을 스승인 홍인에게 지어 바쳤다. 이를 전해들은 혜능은 ‘신수가 깨달음의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앞서 말한 게송을 읊었다. 그것도 글자를 몰라 남을 시켜서 쓰게 했다. 홍인은 혜능의 손을 들어주었고, 법통은 혜능에게 전해졌다. 비록 문맹이었고 천한 신분이었으나, 부처님의 심인법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수의 게송은 얼핏 그럴듯하다. 몸은 깨달음이 깃드는 기반이고 본래 마음은 거울처럼 밝고 청정하니, 몸을 바르게 처신하고 마음을 열심히 닦아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일체가 공(空)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터무니없이 곡해하고 있는 격이다. 혜능이 보기에 밝은 마음과 어두운 마음이 따로 있을 수가 없었다. 오직 밝다느니 어둡다느니, 한 생각의 분별 때문에 밝음과 어두움이 갈라지는 것이다. 더구나 신수의 게송은 몸이 실체라고 전제함으로써, ‘이 육체가 바로 나’라는 중생의 착각을 더 심화할 위험성이 있었다. 부처님은 몸을 극단적으로 즐겁게 하는 쾌락과 극단적으로 괴롭히는 고행을 동시에 떠남으로써 비로소 중도를 성취했다. 모든 것에 실체는 없으며 단지 이름과 개념으로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라는 통찰을 얻었다. ‘본래무일물’을 이야기한 혜능도 마찬가지다. 본래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그대로 깨달음이다. 혜능의 사상은 육신과 영혼, 지식과 관념을 초월한 참나, 바로 진제 선사가 강조하는 참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법통을 빼앗긴 신수와 추종자들의 위협에 남쪽으로 몸을 피한 육조 혜능은 남종선(南宗禪)을 일으켰다. 『금강경』을 근거로 즉각적이고 실천적인 깨달음 돈오(頓悟)를 주장했다. 육조 혜능이 완성한 조사선은 ‘지금의 이 마음이 바로 부처의 마음이다.’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의 논리로 대중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누구나 깨달을 수 있고 깨달음은 스님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굳이 법당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수행하면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육조 혜능의 사상은 그의 언설과 행장을 모은 『육조단경(六祖壇經)』에 잘 나타나 있다. 부처님의 친설이 아님에도 ‘경’이라는 존칭이 붙었다는 점에서 그의 드높은 역사적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혜능 선사는 『육조단경』에서 “세상 사람들의 성품은 본래 깨끗하다.”라며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선언했다.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짜 부처다.(我心自有佛 自佛是眞佛)” 이러한 자심진불(自心眞佛)은 혜능의 법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진제 선사의 법문과 같이, 내면의 참나를 깨우치면 내가 그 자리에서 바로 부처라는 것이다.
참나에 이르는 길
모든 중생은 본디 부처님처럼 절대적으로 청정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것이 조사선의 기본 입장이다. 다만 자신이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망상에 휘둘리면 중생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곧 그 잘못된 ‘한 생각’만 접으면 그만이다. 육조 혜능은 “무념이란 생각하되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無念者 於念而不念)”라면서 사유하되 집착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가 있는 그대로 부처인데, 그 사실을 잊고 돈을 부처로 섬기고 헛것을 부처로 섬기면서 평생 노예로 살다가 참담하게 생을 마무리한다는 일침이다. 이에 무명(無明)으로 추락하지 않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대상세계에 대한 이렇다 저렇다 좋다 나쁘다 등 상념을 타파하는 무념(無念), 대상세계가 원래 실체가 없이 공(空)함을 깨우치는 무상(無相), 그럼으로써 집착을 버리고 자유롭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무주(無住)의 정신이 조사선의 근본이다. 잘 사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육조 혜능을 비롯한 선사들의 말씀은 일관된다. 지금 처한 그 자리에서 환경과 조건에 개의치 않고 즐겁고 견실하게 살아간다면, 그보다 높은 삶은 없다는 것이다.
· 집필자 : 장영섭

관련자료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