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부처가 나기 전에 누가 우주의 주인공인고? 고요하고 고요해서 그 체성(體性)은 평안한지라. 온 세계가 한 집이요, 정(情)이 있고 정이 없는 모든 만물이 한 몸이로다.
2015년 5월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진 진제 선사의 법문 첫머리다. 우렁찬 첫 마디로 대중을 휘어잡은 선사는 다음과 같이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소리도 웅장했고 내용도 웅장했다. 누가 우주의 주인공인가? 참나를 깨달은 사람이다. 참나는 부처님이 탄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태초부터 존재해왔고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일체중생의 마음자리이다. 얼핏 텅 비어 고요해 보이나 절대적으로 분명하고도 분명한 자리이다. 그 마음자리 안에 영원한 안락과 평화가 숨 쉰다. 근본 마음자리를 통해 무엇이든 볼 수 있고 무엇이든 알 수 있다.
진제 대선사의 사자후
그렇다면 근본자리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매우 간명하다. 온갖 망령된 생각들만 단박에 내려놓으면 그만이다. 중생과 부처도 종이 한 장 차이다. 미혹하면 중생이요 항상 밝아 있으면 부처다. 근본자리에서는 범부와 성인이 따로 없고 그대로 광명이요, 생명이요, 평화요, 대자유다. 누구든지 마음을 깨달아 참나를 찾으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무슨 시련을 만나더라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너그러울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니라 사람이 부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인 내가 무한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내 주변의 사람을 부처로 받들 수 있는 인격을 성취한다. 지역과 국경과 인종을 넘어 각자가 참나를 발견하면 그것이 곧 궁극의 세계평화다. 서로가 존중하고 상생하며 꿈에서나 보던 이상향을 실현한다.
간화선의 참다운 목적은 대자유이다. 진정한 행복은 자유에서 온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명예가 아무리 높아도 자유를 잃으면 산송장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공임을 직시하고 주체적인 판단과 노력으로 도전하고 전진하는 것. 삶에서 이보다 더 큰 자산은 없고 역대 선사들도 이 거룩한 가치를 가르쳐주기 위해 생사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진제 선사는 법문에서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 자리가 모두 진리의 세계이다.”라고 하였다. 참나를 깨달아 세상의 주인이 되면 언제 어디서나 걸림이 없고 두려움이 없다. 삶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생사(生死)에 속박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 주어진 이 몸뚱이가 태어나고 죽음이 삶의 전부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죽음이 겁나고 삶이 아깝다. 주야장천 욕심을 부리고 인색하다. 그러나 진정한 삶은 다른 곳에 있다. ‘참나’를 깨달으면 고통이 없다. 죽음에 갇혀있지 않아 삶이 훤히 뚫려 있다. 해탈 열반이 즉각 이루어진다. 대자유의 환희를 말하는 선사의 설법에 30만 대중은 다들 설레었다.
이날 법문을 통해 일반인들이 화두의 묘미를 맛볼 수 있었다는 점도 또 하나의 중요한 의의다. 진제 선사는 법문에서 역사적 예화들을 소개하며 사람들의 선 수행에 대한 관심을 돋우었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경기도 의정부의 망월사 선원에서 안거를 맞아 스님들이 참선 정진을 하고 있었다. 가장 웃어른인 조실은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이었던 독립운동가이자 경전의 한글화에 크게 공헌한 용성(龍城) 선사였다. 하루는 용성 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하기를,
“나의 참모습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함이요, 대대로 내려오는 모든 도인 스님들도 보지 못함이니, 여기에 모인 모든 대중은 어느 곳에서 나를 보려는고?”
하고, 멋진 질문을 던졌다. 아무도 답이 없는 가운데 77대 조사(祖師)인 운봉(雲峰) 선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답을 했다.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
진제 선사의 선기(禪氣) 역시 이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40여 년 전, 당신의 스승이자 운봉 선사의 법제자인 78대 조사 향곡(香谷) 선사가 물었다.
“만약 진제 네가 당시에 용성 선사였다면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다.’고 답할 때에 무엇이라 대답하고, 법상에서 내려가겠는고?”
이에 진제 선사는 즉각 대답했다.
“사자가 멋진 답을 하셨습니다.”
제자의 말을 들은 향곡 선사는 매우 기뻐했다.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다는 말은 모순이다. 내부가 훤히 보여 몸을 감추지 못한 것과 같다. 곧 운봉 선사의 대답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용성 선사의 진면목이 훤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설명했다고 할 수 있다. 진제 선사의 일구(一句) 또한 신비하다. 사자가 멋진 답을 했다는데, 그것이 과연 존경의 표현인지 조롱의 역설인지 알 수 없다. 결국 의심과 참구는 광화문광장에서 이 화두를 들은 대중의 몫이었다.
중국 당나라 시대 위대한 선지식이었던 방거사의 이야기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느 날 방거사가 당대의 고승이었던 석두 선사를 친견해 물었다.
“만 가지 진리의 법으로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하는 자, 누구입니까?”
라는 고준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석두 선사는 묻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거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순간 방거사는 홀연히 진리의 눈을 떴다. 석두 선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그 길로 또 한 명의 도인인 마조 선사를 뵈었다. 석두 선사에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묻자 마조 선사는,
“그대가 서강(西江)의 강물을 다 마시고 오면 일러주겠다.”
라고 대답했다. 이 수승한 한 마디에 방거사는 모든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과 동일한 진리의 안목이 열렸다.
무엇보다 진제 선사가 재가자였던 방거사를 모범 사례로 제시한 까닭은 일반인들의 구도심을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스님이 아니더라도 화두를 지극한 마음으로 참구하면 반드시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확신을 선사한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진리 그리고 그 진리를 깨칠 수 있는 제1의 길인 간화선, 일상에서 화두 드는 법 등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알린 선사의 광화문광장 설법은 역사에 남을 명법문으로 기록됐다.
· 집필자 : 장영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