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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간화선 무차대회의 의의

한국불교는 2015년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로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전 세계 20여 개국 종교지도자를 비롯해 총 30여만 명의 사부대중이 한데 모여 남북의 화해와 지구촌의 화합을 발원했다. 조계종의 정통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도 온 국민들에게 알렸다. 1,700년간 쌓아온 한국불교의 역량을 마음껏 떨쳤다. 규모도 압도적이었고 행사도 알찼다. 지역 세대 이념을 넘어 불자와 세계인이 한마음으로 화합했다. 주요 행사로는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5월 16일 오후 6시, 광화문광장)를 위시해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 기원 행진(5월 16일 오후 4시, 동국대-광화문), 한국전쟁 희생자를 위한 수륙무차대재(5월 17일 오전 9시, 조계사), 세계종교지도자 현충원 참배(5월 16일 오전 9시), 세계평화를 위한 종교인 회의(5월 16일 오후 1시, 서울 그랜드 힐튼 호텔), 전통문화순례(5월 17일 오후 2시, 서울 소재 전통사찰) 등이 이어졌다. 외형과 내실 모두 대한민국과 한국불교의 힘과 혼(魂)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데 손색이 없었다.
세계 종교지도자 현충원 참배
무차대회는 진제 선사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광도중생(廣度衆生: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을 일관되게 강조해온 선사는 2002년 부산 해운정사 국제간화선무차대법회로 간화선의 세계화 원력을 처음으로 실천에 옮겼다. 그 원력은 2011년 뉴욕 리버사이드교회 법문, 2012년 유엔 법문으로 조금씩 빛을 더했다. 온 인류가 세계평화의 근본적인 열쇠인 ‘참나’의 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가르침은 무차대회에서 그야말로 정점을 찍었다. 인류 공존과 공영의 새 시대를 한국불교가 열었다. 불교만이 아니라 한국사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기념비적인 의의를 정립했다.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의 장소는 광화문광장이었다. 단순히 서울 도심 한복판이어서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곳이어서 선택된 것만은 아니다. 알고 보면 나라의 길과 불교의 길이 합치되는 공간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 곧 정문이다. 조선의 임금은 광화문을 통해 백성을 바라보고 민심을 챙겼다. 그만큼 문에는 군왕에 걸맞은 권위와 덕망을 담아야 했다. ‘광화’라는 이름은 세종대왕 휘하의 집현전 학사들이 『서경(書經)』의 구절에서 뽑아서 지었다.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 즉 ‘차별 없는 빛이 사방을 덮고 임금의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의미이다. 계급과 처지를 막론하고 누구나 부처임을 선언하고 이를 실행한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대입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곧 광화(光化)는 본래 무차(無遮)를 꿈꿨으며 무차대회를 통해 그 본연의 광화가 더욱 새로워졌다. 광화는 무차다. 광화의 주체였던 왕조는 사라졌으나 민중은 존속하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광화문은 광장으로 거듭났다.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여기서 응원을 했고 시위를 했다. 다른 목소리들은 섞여서 하나가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더 큰 소음으로 따로따로 웃자랐다. 무차대회는 우리 사회에 무차를 꽃피우려는 거룩한 몸짓이다. 진제 선사는 “누적된 폐습으로 인한 계층 간의 불통과 대립을 무차와 광화의 정신으로 치유하고 쇄신해야 한다.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반목과 살상을 종식하고 지구촌을 아름다운 정토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대회 개최의 배경을 설명했다. 일반인들은 모르지만, 2015년은 승려의 도성출입 금지령이 해제된 지 120주년을 맞는 해였다. 조선시대에 스님들은 서울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은 스님들에게 금단의 문이었고 차별의 문이었다. 600년 내내 억압받으며 산골에서 간신히 연명하던 불교는 개화기의 바람을 타고 비로소 도시의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복권(復權)은 남에 의한 복권이었고, 일제강점기 민족과 함께 서러웠다. 광복 70주년 탄탄하고 당당한 전통종교문화로 부활한 한국불교는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를 기점으로 마침내 웅지(雄志)를 폈다. 그간 쌓아 올린 교단의 역량을 떨치는 자리였고 중생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약속의 자리였다. 간화선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진제 선사의 법어로써 간화선의 진수가 온 국민과 전 세계에 전달됐다. 간화선은 가장 뛰어난 수행법이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역설적으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 때문에 ‘어렵다’는 인상이 심어졌다. 심지어 스님들이 정진하는 선원에서조차 안거 때면 간화선이 아닌 비빠사나 등 다른 수행법을 택하는 수행자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무차대회를 계기로 간화선은 산중에서 은둔하며 하는 수행법이라거나, 특별한 스님들만 할 수 있는 신비한 수행법이라는 편견이 깨졌다. 꿀이 달고 소금이 짠 것을 안다면 누구나 닦을 수 있는 수행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진제 선사는 최대한 쉽고 친절하게 간화선을 가르쳤다. ‘참나’에 대한 통찰을 주문하면서,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드는 법을 설명했다. 광장에 운집한 대중은 인생의 참다운 가치에 대해, 이를 성취할 수 있는 불교적 해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만끽했다.
· 집필자 : 장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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