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인들의 사고 중심에는 이성(理性)이 있다. 이성의 사전적 의미는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으로, 감각적 능력과 대비해 이루는 말이다. 오직 감각으로만 세계를 파악하는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다. 나아가 진위(眞僞)와 선악(善惡)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 절대자를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가리키기도 한다. 인간은 이른바 신(神)에게서 부여받은 고유의 능력인 이성을 통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 이성을 가진 것과 갖지 못한 것을 철저히 구분 짓는다. 이에 자연은 공존이 아닌 개발의 대상이 되었고, 심지어 같은 인간이더라도 인종이 다르면 이성이 없다며 학대하고 착취했다.
물론 이성은 유용한 능력이다. 인간이 지닌 탐구와 도전정신의 기반이며 문명과 과학의 밑바탕에 깔린 힘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인간 이외의 생명을 집요하게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면서 이룩해온 핏빛 성공이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이성의 위대함을 체험한 유럽의 백인들은 이성을 무기화해 19세기 제국주의를 번창시킨다. 그러나 20세기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사건으로, 분별과 배타의 이성이 극대화되면 어떤 비극을 맞을 수 있는지도 실감했다. 신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죽여 왔다. 반면 인간과 자연이 본래 하나임을 강조한 진제 선사의 뉴욕 법문은 서구인들에게 경이로움과 거룩함 그 자체였다. 불교 수행의 궁극적 목표이자 당신이 직접 체험한 ‘참나’를 통해 인류가 공동의 안락과 평화를 누려야 한다는 법문이 세계만방에 울려 퍼졌다.
유엔 처치 센터 법문
이제 인류는 굶주림, 질병, 전쟁 등과 같은 오래된 문제들뿐만 아니라, 지구를 잘 돌보지 않음으로 인해 새로운 난제에 직면하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난 수천 년간 지구촌의 변화보다 최근 이백 년 동안의 변화가 더 큽니다. 급기야 이제는 인류와 지구촌의 존폐를 걱정할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 지구와 자연이 우리의 조상들이 건강하고 깨끗하게 보존하기를 간곡히 기원하며 물려준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진제 선사는 10월 4일 ‘유엔 플라자 처치 센터(Church Center of the United Nations)’ 법문에서 먼저 전 세계적 갈등과 폭력에 맞서는 종교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구촌의 여러 문제가 야기되는 근본적 원인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라고 지적하며 고통 받는 이들을 돕고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일이 바로 종교인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유네스코(UNESCO) 헌장도 설법에 담았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란 헌장의 머리말을 인용하며 대안을 ‘마음’에서 찾았다. “지구촌의 평화와 화목과 평등, 건강한 생태환경은 인류 개개인이 마음을 닦는 수행을 통해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이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간과 자연은 서로 상생의 관계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온 지구촌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불교의 연기법을 통한 상호 간 이해와 협력을 당부했다.
불교의 핵심 사상은 공(空)이다. 말 그대로 비어있다는 뜻이며 자아도 세계도 실체가 없이 비어있다는 뜻이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니 나에게 애착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고, 남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니 증오해야 할 이유도 없다. 자기와 타인, 인간과 자연이 공이라는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하나가 된다. 공을 알게 되면 참나를 알게 된다. 진제 선사가 말하는 ‘참나’는 공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삶이다.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자타불이(自他不二)를 근간으로 한 불교의 정신이 우리 시대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는 게 선사의 지론이다. 그리고 기막힌 비유를 들어가며 그 드높은 경지에 대해 설명했고, 이방인 청중들은 무릎을 쳤다.
인간과 자연이 본래 하나라는 사실과 깨달음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진제 선사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언급했다.
옛날 중국에 ‘소동파(蘇東坡)’라는 대문장가가 있었다. 어느 날 세상의 문장과 재주, 식견이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후로는 참선수행에 몰두했다. 하루는 여산(廬山) 흥룡사에 상총(常聰) 선사라는 안목이 고준한 선지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게 되었다. 선사께 삼배의 예를 올리고 소동파가 말하기를,
“선사님의 법문을 들으러 왔습니다.”
하니, 상총 선사는,
“그대는 어째서 유정설법(有情說法)만 들으려 하고 무정설법(無情說法)은 들으려 하지 않는고?”
하고 물었다. 소동파는 선사의 되물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생각과 정이 있는 유정물뿐만 아니라, 산이나 바위나 나무 같은 무정물도 설법을 한다고?’
소동파는 상총 선사의 말씀을 화두로 삼고 깊은 의심에 들었다. 선사와 헤어져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 소동파는 한 생각에 깊이 빠져서 문득 의심삼매(疑心三昧)에 들게 되었다.
‘어떻게 무정물이 진리를 설할 수 있는가? 왜 나는 그것을 듣지 못하는가?’
그렇게 수십 리 먼 길을 말을 타고 돌아가다가 산모퉁이를 도는 순간, 산골짜기에서 확연대오했다. 폭포수가 거세게 떨어지는 소리에 크게 깨달아 비로소 마음의 고향을 보게 되었다. 이후로 소동파는 남은 생을 마음의 고향에서 지혜롭고 안락한 삶을 누리며 살았다.
진제 선사가 소개한 이른바 ‘무정설법’은 현지인들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갔다. 서양인들의 뇌리에 고착된 이성만능주의와 인간중심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였다. 진제 선사는 이 사례를 소개하며 지구촌의 각종 모순과 부조리를 해결하려면 인류의식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우리가 저 무정물이 설하는 진리의 말씀까지도 들을 수 있을 때, 지구를 위협하는 생태학적 위기와 환경문제에서 벗어나 지구촌은 진정한 평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베풀고, 먼저 손을 내밀며, 먼저 보살펴서 굶주림과 병고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저들을 일깨워 주어 싸움과 반목을 멈추게 하고 환경과 생태계를 회복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든 종교들이 존재하고, 신뢰하고, 수행하는 이유이며 의무라고 믿습니다. 산승도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만인에게 참선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을 널리 유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호단체와 환경단체 지원에 적극 나설 것입니다.
자연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서양인들은 자연을 동반자로 존중하는 불교의 포용과 자비에 매료되었다. 세계평화와 관련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선사의 뉴욕 법문은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고 실천의지를 북돋아 주었다. “산골짜기 물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다.”라는 선사의 가르침은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우리가 따라야 할 절대자나 최고의 가치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는 개개 생명이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 집필자 : 장영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