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布敎)란 부처님의 말씀 곧 불교의 진리를 널리 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전법(傳法)이라고도 한다. 불교는 학문이나 사상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종교이다. 앎의 완성을 넘어 마음의 안락을 구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참다운 행복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불교의 진리 역시 완전무결한 행복을 목표로 한다.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것에서부터 심오하고 숭고한 것까지, 행복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다만 그 어떤 행복이건 간에, 그 행복이 다하면 결핍을 느끼고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이 세상만사이고 인지상정이다. 다시 말하면 행복이란 것을 따로 특별하게 추구하는 한, 그것과 정반대인 불행을 맛볼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의 이치다. 그러니까 행복과 불행의 반복이라는 쳇바퀴에서 빠져나오려면 분별심(分別心)을 초월해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짜 행복은 공(空)과 불이(不二)를 아는 데에 있다. 이것과 저것을 차별하면서 스스로 목마르고 서로가 갈등하게 되는 분별심을 극복하려면 간화선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육체적 한계로서의 자아를 초탈해 우주적 차원의 참나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편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진리를 깨달은 진제 선사의 포교는 간화선을 전 세계 곳곳에 알리는 것이다.
진제 선사는 2011년 12월 조계종 원로회의에서 제13대 종정으로 추대됐다. 스스로 대오견성(大悟見性)을 성취했고 오랫동안 납자들에게 깨달음을 선사한 도인으로 공인받은 인물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종정으로 옹립하는 데에 이견은 전혀 없었다. 만장일치로 종정에 추대됐고 제13대 종정추대식이 열렸다. 2012년 3월 28일 서울 조계사에서 사부대중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봉행됐다. 법좌에 오른 선사는 평소와 같은 ‘화두 법문’과 함께, 극심한 진영갈등에 매몰돼 서로 무리를 짓고 혐오하던 사람들에게 화합의 가르침을 던졌다. “쟁즉부족, 양즉유여(爭卽不足, 讓卽有餘)”. ‘1만 냥의 황금이라도 다투면 부족하지만, 서푼의 황금이라도 양보하면 오히려 남는다.’는 뜻이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향기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법문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종정에 취임하면 흔히 교시(敎示)를 내린다. ‘종정(宗正)’이란 명칭에서 보듯,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는 종정은 말 그대로 종단의 ‘올바름’이고 시금석이다. 그분의 말이 곧 행위의 기준이고 규범이 된다는 의미다. 곧 종정 교시는 종정의 공식적인 가르침이자 지시이고, 종도(宗徒)라면 누구나 믿고 따르고 실천해야 한다. 진제 종정예하(猊下: 사자좌 아래라는 뜻으로 종정에게 붙이는 존칭)도 자리에 오르면서 교시를 내렸고 종단의 최고 어른으로서 종도들의 책무를 천명했다. ‘지계청정(持戒淸淨)’, ‘정진화합(精進和合)’, ‘광도중생(廣度衆生)’ 세 가지다. 각각 ‘계율을 지켜 삶을 청정히 하고’, ‘끊임없이 정진하고 서로 간에 화합하며’, ‘중생에게 널리 법을 펼치라.’는 의미이다. 특히 진제 종정예하의 취임교시에선 ‘광도중생’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일반적인 ‘중생교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광도(廣度)’라고 명시함으로써 중생구제의 대상과 영역을 대폭 넓힌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이는 그동안 진제 선사가 보여준 국제적 행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당당한 선(禪) 진미(珍味)의 본래 기풍은 우리나라에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낱같은 흐름이 한국에만 남아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전해집니다.” 2002년 2월 15일 부산 해운정사 조실(祖室)이었던 진제 선사가 불교신문과 진행한 인터뷰 때 언급한 내용이다. ‘조실’이란 선원에서 수행자들을 지도하는 가장 웃어른을 가리킨다. 선사는 당시 10월 해운정사에서 열릴 국제무차선 대법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무차(無遮)’는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곧 누구나 자유롭게 선에 대해 경청하고 자기의 견해를 드러낼 수 있는 토론의 자리였다. 그리고 국제라는 말에서 보듯, 각국의 여러 고승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법석이었다.
무차회(無遮會)는 불교가 시작된 인도에서부터 행해지던 불교의식이다. 귀천, 상하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참가할 수 있었고 무차회를 주최한 이들은 이들에게 음식과 생필품을 푸짐하게 보시하는 한편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파했다. 백성들의 생활과 정신을 동시에 위로한, 자비와 화합의 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도를 통일한 마우리아(Maurya) 왕조의 3대 임금으로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 칭송받았던 아쇼카(Ashoka, 아육왕阿育王) 왕과 같은 유력한 국왕들이 선지식을 초청해 무차회를 자주 열었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보리달마(菩提達磨, Bodhidharma) 대사와 만났던 양무제(梁武帝)도 무차회에 정성을 쏟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승려들의 도성 출입 금지가 해제된 이후인 1896년 한성(지금의 서울)에서 한국과 일본의 승려들이 함께 무차회를 열었던 것을 최초로 본다.
진제 선사는 이러한 무차의 기본 취지에다 선(禪)을 가미했다. 불법의 핵심은 조사선(祖師禪)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그 어느 나라의 불교보다 뛰어난 한국불교의 종장으로서 무차선법회를 기획했다. 2002년 2월 『불교신문』과의 대담에는 간화선의 훌륭함을 전 세계적으로 공인받고 나아가 서구 선진국에도 영향을 끼치겠다는 구상이 드러나 있다.
동양정신문화의 골수는 선입니다. 선을 접해본 지식인들은 선을 통해 마음의 공포나 불안이 없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이런 경험과 느낌을 찾을 수 없지요. 마음의 번민을 다스리는 데는 선만큼 확실한 것이 없어요. 서구 철학은 현실을 잠시 타개할 임시방편의 대안을 줄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구지식인들은 자재(自在)나 해탈(解脫) 등 근본적인 마음자리를 찾아가는 선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눈 밝은 선지식을 접한다면 신심이 더욱 늘어날 것이고 세계 철학사조에 새로운 광명이 비출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진제 선사가 국제무차선 대법회를 개최하기로 결심한 까닭은 무엇보다 한국불교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선사는 한국불교가 간화선의 종주국임을 올곧게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인도에서 건너온 보리달마가 중국에 선불교를 꽃피우고 이는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옮겨갔지만, 그 본연의 전통이 남아있는 국가는 우리나라뿐이다. 중국에선 공산당의 문화대혁명으로 무너졌고, 대처승 풍습이 만연한 일본에선 변질됐다는 것이다. 진제 선사는 선불교의 가풍이 활발하게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었다. 이미 1998년과 2000년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에서 거행된 무차선대법회에 법주로 초청돼 조계종 제5대 종정 서옹스님과 함께 법을 내린 바 있다. 2002년 해운정사 무차선법회는 지금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다. 평생을 힘써온 간화선의 세계화가 발걸음을 내딛던 시절이다.
2000년 무차선대법회
· 집필자 : 장영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