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 선사의 수행론을 요약하면 화두에 대한 간절함으로 정리할 수 있다. 화두가 모든 문제의 열쇠이며 화두 타파가 인생고 해결의 유일한 왕도(王道)이다. 특히 이는 체험의 산물이므로 더욱 미덥다. 스스로의 치열한 인내와 정진이 뒷받침된 생생한 확신이기에 두터운 신뢰를 얻는다. 진제 선사는 평소 따르는 스님과 불자들에게 이러한 화두 참선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법문 때마다 깨달음을 위한 전진을 주문하고 있다.
안거(安居)는 불교의 오랜 전통이다. 부처님 생전부터 교단에서 행해져 왔다. 외부 출입을 끊고 오직 참선에만 전념하는 일이다. 한국불교가 이 전통을 오롯이 계승하고 있다. 전국의 선원(禪院)에서는 여름과 겨울 3개월씩 올곧은 정진에 임한다. 진제 선사는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10년간 한국 최대 불교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 제13·14대 종정을 역임했다. 한국불교의 신성과 법통을 상징하는 지도자로서 안거의 결제와 해제에 법어를 발표하며 수행자들을 독려해왔다. 모든 법어에는 화두를 기반으로 한 주제의식이 면면히 관통한다. 일례로 다음은 2021년 11월 종정으로서 마지막으로 남긴 법어의 일부이자 핵심이다.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이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가운데 오매불망 간절히, 화두 의심이 뼈골에 사무치게 의심을 밀고 또 밀고 할 것 같으면 석 달 이내에 모두 다 견성(見性)할 수 있음이라.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철저한 의심이 뼈골에 사무치지 않았기 때문에 혼침(昏沈), 번뇌, 망상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허송세월만 하게 됨이라. 이 견성은 부처님이 해주는 것도 아니고, 선지식(善知識)이 해주는 것도 아니고 각자가 선지식의 바른 지도를 받아서 바르게만 지어가면 일념(一念)이 지속되어 참의심이 시동이 걸리게 된다. 참의심이 한 달이고 일 년이고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게 됨이라. 그러면 모든 부처님과 조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하를 종횡하게 됨이라.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이 화두에 지극한 마음으로 몰입하기만 하면 인생의 일대사를 마칠 수 있다는 격려이다. 빠르면 그 안거 한 철에도 깨달을 수 있다. 진제 선사는, “인생이 긴 것 같지만 흐르는 시냇물처럼 밤낮으로 쉼 없이 흘러감에 돌이켜 볼 때 그 빠르기가 쏜 화살처럼 신속하다.”고 부연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오늘 있다가 내일 가는 것이기에 사람의 몸을 받은 금생(今生)에 생사윤회의 고통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 화두를 의심하고 타파해 그 안에 가려져 있던 참나를 회복하는 것. 이것이 진제 선사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정녕 진정한 내가 되고 싶다면 나를 떠나야 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라
역대 조사(祖師)들은 하나같이 말이 적다. 하지만 짧은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를 찌른다. 번뜩이는 직관은 선문답에 잘 드러난다. 중생들의 어두운 무명에 차디찬 빗줄기를 내리고 깨어나게 한다. 이들의 예리한 언동을 기봉(機鋒)이라 한다. 역대 조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진제 선사 역시 기봉이 매우 탁월하다. 생활 속에서 이런저런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쾌도난마의 조언을 베풀곤 한다. 그 말들은 대단히 예리해서 복잡했던 생각들을 단칼에 정리해준다. 화두 하나만 믿고 정진할 수 있게 해준다. 부처의 길이 성큼 다가온다.
- ‘참나’를 발견하는 이 일 외에는 전부 꿈 가운데 꿈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 허무한 것을 실감 못하고 하루하루 속아서 산다.
- 자기 일을 하라. 아들 놓고 돈 벌고 출세하는 것이 자기 일이 아니다. 자기의 참모습을 찾는 이 일이 참으로 자기 일이다.
- 세상일을 전폐하고 참선하라는 것이 아니다. 화두를 생각하면서 모든 일을 하라는 것이다.
- 오장육부를 찌르고 삼대독자 외아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화두를 들어야 한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사무치는 의심을 해야 한다. “어떤 것이 참나던고?”
- 금생에 놓치면 내생에 또 인신을 받고 불법을 만난다는 보장이 절대로 없다.
- 공부인의 자세는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비방하는 데 조금도 마음의 동요가 없어야 한다.
- 말이 많으면 공부에 큰 장애가 된다. 앉으나 서나 화두를 놓치면 죽은 송장이다.
- 지금은 혈기방장해서 이런 말이 귀에 안 들어오지만, 60~70세에 병고가 오고 죽음에 다다라 영웅호걸, 부귀영화가 다 소용없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 의식주만 해결되면 돈과 명리를 위해 귀중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제일 급선무가 화두공부다.
- 대통령, 일등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 말고 마음을 계발하라. 마음만 계발하면 그런 것은 자연히 따라온다.
- 돈이란 안 쓴다고 모이는 것이 아니다. 좋은 복을 지음으로 인해 화근(돈 드는 일)이 물러간다.
- 항상 세 가지를 행하라. 1. 지혜(智慧: 참선 수행) 2. 덕(德: 많은 분들을 최상승법으로 인도하는 것) 3. 복(福: 물질·몸·마음으로 남을 위하는 것).
- 지혜를 닦지 않고 복만 지으면 다음 생에 부귀해도 둔한 사람이 된다.
- 복이란 소소한 데서 오는 법이다. 항상 즐거운 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라. 불평, 타령을 하면 아주 박복하다. 복 지을 때 할까 말까 주저하지 말라.
- 부처님이 만반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먹어라, 먹어라.’ 해도 중생들은 안 먹고 딴 짓을 한다. 기도, 절, 참회하는 것은 어린아이 신앙이다. 참선을 해야 한다.
- 어리석은 사람이 시비 장단에 놀아난다. 영리한 사람은 시비에 들어가지 않는다.
- 자기의 직분(職分) 외에는 오직 화두 생각만 해야 한다.
- 누가 말하려고 다가오면 “에잇! 도적놈, 또 시간 낭비하려고 오나!” 이렇게 해야 한다.
- 재물은 영원히 내 것이 아니라 임시 관리하다가 가는 것이다.
- 도를 알고 보면 세상 부귀·공명은 콧구멍의 때와 같다.
- 인과응보 같은 법문은 어린아이 울음 달래는 법문이다.
- 앉아서 좌선할 때는 바른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90% 이상 좌우한다.
- 죽음에 다다라 사지가 찢어질 때는 생고기 껍데기 벗기는 것과 같이 고통스럽다.
- 염라대왕 앞에서는 용서가 통하지를 않는다. 그때 가서 뉘우치고 후회해야 소용없다.
- “인생은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하여 향락과 욕심에 빠지고, 무한한 좌절감과 무한한 죄를 짓고 살게 된다. 부처님 법에는 삼생(三生: 과거·현재·미래)이 항시 연관되어 있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이 예정돼 있다. 인생이란 잠깐 불붙었다가 금세 사그라드는 모닥불과 같다. 재물도 스쳐 가는 바람이고 권력은 바람 앞의 촛불이다. 부질없는 몸뚱이에 부지런히 땔감이나 바치다 가는 삶은 말년이 비참하고 허무하다. 화두에 기대어 오랜 숙업을 끊고 육체 너머의 참나를 찾아 나서야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끈질긴 참구로 화두를 부수면 그 안에 참나가 나타난다. 그러면 언제 어디에 있어도 걸림이 없고 초연하고 행복하다. 진제 선사는 말씀으로 행동으로 이러한 무한 자유의 이치를 오늘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 집필자 : 장영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