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이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선(禪)에 참여하는 일이다. 선은 고요할 선이고, 그러니 고요한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넓게 해석할 수 있다. 고요한 마음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잡념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다. 알고 보면 사람은 생각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잡다한 생각 때문에 힘들다. 불쑥불쑥 일어나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때문에 괴로워한다. 번뇌가 그렇고 스트레스가 그렇다. 진제 선사는 “중생들은 숙세의 업식이 태산과 같아서 한시도 번뇌와 망상에서 쉬지를 못한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 생각이 고통의 근원”이라고 본질을 꿰뚫는다. 반면 생각이 하나로 모아져 어떻게든 결론이 내려지면 마음이 명쾌하고 가벼워진다. 결국 화두란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와 같고, 화두에 집중하면 내면의 고요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이렇듯 참선은 정신집중에 탁월하다. 굳이 거창한 깨달음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톡톡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참선을 하면 번뇌 망상이 쉬어지고 화두 한 생각이 또렷하게 이어지면 불안, 초조, 갈등, 욕심이 잠잠해집니다.” 진제 선사가 말하는 참선의 효능이다.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는 만큼 누구나 해야 한다. “사업하는 사람은 올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고, 공부하는 학생은 맑은 정신으로 집중하니 성적을 올릴 수 있습니다. 참선을 하면 모두가 걱정, 근심, 공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아울러 참선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는 ‘나’가 사라진 세계다. 육체와 관념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굴레를 극복하고 만물이 나 자신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는 ‘참나’의 세계로 가기 위함이다. ‘모든 인류가 참선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진제 선사가 당부하는 이유이다. “참선을 하게 되면 나와 남이 다르지 않고 만물이 나와 한 뿌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지구상에서 전쟁과 분쟁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인류의 구원은 신(神)이 아니라 참선에 있다.
물론 참선은 단순히 정신건강을 증진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풀 수 있는 최후의 그리고 유일한 열쇠이다. 바로 생사의 경계 바깥으로 인간을 건네주고 영원한 행복을 선사하는 수행법이다. 곰곰이 사유해보면 삶이 항상 괴로운 이유는 궁극적으로 죽음 때문이다. 육체적 죽음이 싫어서 그만큼 육체적 삶에 집착한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이익에 매달린다. 죽음이 두려워서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것만 같은 권력을 탐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헛된 바람이다. “참나를 깨닫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고통과 갈등뿐인 중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진제 선사의 지적이다. 참선 수행을 꾸준히 해야만 참나에 이를 수 있고, 곧 죽음으로부터 해방된다. “온 인류가 생활 속에 꾸준히 참선수행을 닦아 행한다면 마음에 모든 분별과 시비 갈등이 사라지게 되어 자연히 마음이 안정될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에 다다라서도 밝은 마음, 맑은 정신으로 이 몸뚱이를 옷 갈아입듯 벗게 되고, 다음 생에는 반드시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들 부모로부터 받은 이 몸이 자기인 줄 알고 산다. 그리고 밥이든 집이든 옷이든, 몸이 말 그대로 제 몸 편하기 위해 해달라는 대로 다 해 바치면서 육체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대다수 중생의 삶이다. 그러나 진제 선사의 말처럼 “이 몸은 백 년 이내에 썩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므로” 진정한 ‘참나’라고 할 수 없다. 하늘에 잠깐 떠 있는 구름에 불과하다. 참나를 깨닫는다는 것은 몸뚱이가 아니라 개인 각각의 불성이 바로 삶의 주인공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 불성은 죽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으며 가난하다고 해서 훼손되지 않는다. 내가 바로 존귀한 부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여유로울 수 있다. 육체의 노예가 아니라 존재의 주인으로 신분이 수직 상승한다.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굴종하지 않고, 다만 내가 존재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뿌듯해하는 대자유의 경지를 향유할 수 있다. 생사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과 대자유
참선의 관건은 지속성이다. 매일 매일 빠짐없이 꾸준히 지속적으로 화두를 들어야만 효과가 나타난다. 화두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말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화두 말고는 모든 것을 내던져버릴 수 있는 결기가 필요하다. 진제 선사는 “깨달으려면 우선 바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화두 바보’다. “일체처에 바보가 되어버리면 걸음걸음 생각 생각이 화두뿐입니다. 마음 가운데 화두 한 생각뿐이면 힘들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안거 결제 기간이든 해제 기간이든 상관없습니다. 먹고 사는 것도 신경 쓰지 않게 되고 급기야 자기 몸뚱이까지도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대도(大道)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습니다.”
이는 스님에게만 해당되는 조건이 아니다. 재가자들도 온통 머릿속이 화두여야만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 절 저 절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닌다고 해서 복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요 공부가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할 일은 오직 마음 광명을 찾는 이 일뿐이다.’라는 각오로 모든 허세를 벗어던지고 모든 반연을 끊어버리고 화두 참구하는 법으로 꾸준히 익혀야 합니다. 어쨌든 가정을 가졌으니 아들 딸 뒷바라지는 해야 할 것이고 가정을 거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세간살이 가운데서라도 화두를 놓치는 바 없이 간절히 참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마음 가운데 모든 습기(習氣)와 헛것이 소멸될 것입니다.” 참나의 마음으로 자식을 돌보면 그 아이의 삶이 결코 어긋날 일은 없다. 온 세상을 자애롭게 대하니 세상의 존경을 받지 않을 수 없고 명예가 드높아진다. 진제 선사가 말하는 진정한 생활인의 행복이다.
· 집필자 : 장영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