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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를 드는 구체적인 방법

중생들은 무명에 휩싸여 있다. ‘나’라고 하는 생각과 집착과 분별을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한다. 평생을 이기심에 찌들어 산다. 자신의 나아가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사력을 다 하지만, 그 끝은 항상 불행이다. 본래 불성이 무명에 가려져 있는 한 돌파구는 없다. 욕심과 분노의 하수도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이에 화두는 더러운 물길을 차단하는 마개와 같다. 번뇌 망상을 멈추게 하고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도는 똥 막대기’라거나 ‘뜰 앞의 잣나무’라거나 하는 화두는 삶의 본질에 대해 각성시킨다. 도는 귀하거나 그럴싸한 것이 아니며, 중생이 필사적으로 찾아다니는 돈과 명예와 권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화두는 중생의 어리석은 생각을 되돌려 이전과는 다른 길로 인도한다. 화두를 완벽하게 이해하여 그 뜻을 통렬하게 깨치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진제 선사가 화두의 절대적인 가치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까닭도 이와 같다. 선사는 “중생들은 숙세의 업식이 태산과 같아서 한시도 번뇌와 망상에서 쉬지를 못한다.”며 화두만이 해독제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특히 스스로 모든 화두를 깨우쳤고 60년이 넘도록 화두 드는 법을 지도해온 최고의 종장(宗匠)이다. 화두를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비법을 달통한 불세출의 도인이다. ‘참선’이라고 하면 보통 좌선을 연상한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스님들이 선방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고요히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참선의 진면목은 자세나 형식에 있지 않다. 진제 선사 역시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語黙動靜), 곧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 항시 화두를 잊지 않는 마음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삶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야 하고, 우리의 삶은 앉아있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주좌와 어묵동정
물론 좌선이 참선의 대표적인 형식이므로, 진제 선사는 좌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좌선의 자세로는 결가부좌와 반가부좌, 평좌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반가부좌가 가장 널리 행하는 자세입니다. 반가부좌는 앉아서 왼발이나 오른발을 반대쪽 허벅지 위에 올리고 허리를 곧게 하고 가슴을 편 다음 두 손은 모아서 배꼽 밑에다 붙입니다. 눈은 2미터 아래에다 화두 생각을 두고 응시해야 합니다.” 흔히 참선은 내면을 관찰하는 일이므로 눈을 감은 채 하는 것인 줄 아는데 이는 착각이다. 깨달음이 아니라 졸음만 온다. “혼침(昏沈)과 망상에 떨어지지 않도록 눈을 뜨고 의심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이 진제 선사의 분명한 조언이다. 간화선의 정도(正道)는 어디 멀리 있지 않다.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화두 참구란 결국 고도의 정신집중이다. 자세가 흐트러진 상태에서는 정신집중이 될 수가 없다. 바르지 않은 자세로 인해 혼침과 망상에 떨어지기 쉽다. 위장도 나빠진다. 소화가 잘되지 않고 허리 통증이 생긴다. 곧 앉아있는 것이 힘들게 되니 좌선 자체를 기피하게 되고 화두와 멀어지고 만다. 시선의 위치도 명심해야 한다. 선사는 “화두를 눈앞 2m 아래에다 두고 참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머리에다 두면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서 상기(上氣)가 발생한다. 말 그대로 기(氣)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현상인데, 이렇게 되면 극심한 두통으로 참선을 지속할 수 없다. 잘못된 자세와 마찬가지로 희망이 없다. 무언가를 잘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꾸준히 하는 것이다. 습관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 화두 역시 마찬가지다. 화두 참구에 익숙해지려면 일단 화두 드는 일을 습관화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화두가 머릿속에 박혀 자리를 잡는다. “이렇게 앉아서 무르익어지고 나면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일을 하나, 산책을 하나, 잠을 자나 오매불망 간절히 화두 의심에 몰두해야 합니다.” 선사가 수행자들에게 내리는 화두는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 이 몸을 받기 전, 어떤 것이 참나인가?’ 그리고 이 화두를 언제 어디서든 잊지 말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심지어 꿈속에서라도 이 어구가 삶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깨어있을 때나 심지어 잠자고 있을 때나, 오매불망 이 의심을 쭉 밀고 또 밀고 나가다 보면 산란심이 일어날 틈이 없게 된다. 다음은 화두 참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진제 선사의 살아있는 증언이다. “비유하자면 촌(村)에서 방아 찧는 기계는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방아를 못 찧습니다. 그런데 한 번 시동이 걸리면 하루 종일 방아를 찧을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화두를 하루에도 천 번 만 번 의심을 밀어주라고 하는 이유는, 그렇게 천 번 만 번 의심하여 단련이 되면 문득 참의심이 시동 걸리게 됩니다. 화두의심 한 생각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과정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의심이 마치 흐르는 시냇물과 같아진다. “밤낮으로 한 생각이 흐르고 흐르게 되는데, 앉아 있어도 밤이 지나가는지 낮이 지나가는지 모르게 되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화두일념에 푹 빠져서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로소 밝은 지혜의 눈이 열리면 그 눈은 억만년이 지나도록 항상 눈부시다. “만인의 진리의 지도자, 하늘세계와 인간세계의 사표(師表)가 되어 자유자재하게 활개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마음의 고향에 이르면 멋진 자유와 행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라 하듯, 참선은 ‘자세가 반’이다. 바른 좌선이 반복되면 화두가 내게 안착한다. 굳이 앉아있지 않을 때에도 화두가 몸속에서 가지런하다. 진제 선사는 “참선하는 바른 자세와 바른 화두 참구법을 익혀서 바르게 정립되면, 좌선에 국집(局執)하지 말고 앉으나 서나 일을 하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항시 화두를 참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화두를 참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선(動禪)으로의 확장이자 행선(行禪)의 생활화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를 놓아서는 안 되고 직장에서도 해야 한다. 오직 화두 하나만 보고 살아야 한다. “가고 오고 말하고 일하는 가운데 익어져서, 화두 한 생각이 24시간, 365일, 흐르는 물과 같이 지속되는 여기에 실다운 정진의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내가 곧 화두가 되면, 고비는 넘은 것이다.
· 집필자 : 장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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