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 큰스님 오늘 이 대법회가 무슨 법회요?”
“허물이 만천하에 가득합니다.”
“그르쳤다. 나랑 차나 한 잔 하자, 내려와.”
“억!”
“내려와!”
“억!”
부산 해운정사 조실인 진제 선사는 지난 2002년 10월 해운정사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여러 고승들을 초청해 국제무차선법회를 열었다. ‘무차(無遮)’, 곧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차별 없이 깨달음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위에 소개한 대화는 이때의 한 장면이다. 법회를 주최한 법주(法主)인 진제 선사가 법문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스님이 튀어나와 훼방을 놓았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당장 법석에서 내려오라는 말을, 그것도 ‘반말’로 하고 있다. 동시에 선사의 반응도 대단히 낯설다. 국내외의 불자들이 모여 불법(佛法)을 논하는 성스러운 자리를, 한낱 허물덩어리라며 스스로 내리깎고 있다. 이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은 또 있었다. 또 한 명의 외국인 스님이 난입해 선사의 앞에 놓인 마이크를 냅다 치워버렸다. 일반인들의 시선으로 보면 황당한 불상사이거나 방송사고일 것이다. 하지만 선불교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고 익숙한 일이다. 선사들끼리 곧잘 주고받는 법거량이다.
해운정사 국제무차선법회
‘법거량(法擧量)’은 화두 그리고 의심과 함께 깨달음으로 가기 위한 핵심적 요소이다. 선문답이 바로 법거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법거량은 수행하는 스님들이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일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깨달음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본다’ 또는 ‘깨달음의 무게를 잰다’는 뜻이다. 서로가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일종의 대련과 같다. 거칠게 말하면 얼핏 말싸움인데, 일반적인 말싸움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마치 시를 쓰는 것처럼, 은유와 함축과 역설(逆說)의 언어를 사용한다.
서두에 인용한 대화를 보자. 갑자기 나타난 신원미상의 객승은 ‘허접한 법문 그만두고 어서 내려오라.’며 진제 선사에게 큰 실례를 범하고 있다. 그럼에도 선사는 태연자약하다. 기분 나쁜 말을 들었다고 불쑥 화를 내거나 아랫사람이라고 깔보지 않는다. 오히려 “허물이 만천하에 가득하다.” 곧 ‘네 말대로 내 말은 쓸데없는 것’이라는 식으로 노련하게 받아준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객승은 법좌에서 ‘내려오라 내려오라.’며 연거푸 선사를 자극한다. 평범한 장삼이사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억지에 못 이겨 자리에서 내려오거나 아니면 고집을 피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분별에 떨어지는 것이다. 반면 진제 선사는 ‘억!’이라는 고함으로 제3의 길을 열어두면서 분별의 경계에 빠지지 않았다. 객승이 쳐놓은 그물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대자유의 기개가 말 한 마디에 상징적으로 묻어난다.
법거량의 형식은 이처럼 거칠고 즉흥적이다. 한 술 더 떠 폭력이 난무하기도 한다.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은 선가의 오랜 진통이다. 덕산 선감(德山宣鑑, 782-865) 선사는 제자의 됨됨이를 알아보기 위해 걸핏하면 몽둥이로 때렸고, 임제 의현 선사는 청천벽력같이 윽박질렀다. 심지어 당나라 구지(俱脂) 선사는 깨달은 도인인 척 행세하는 동자승의 손가락을 자르면서 본때를 보였다. 제자들이 고양이 한 마리를 서로 갖겠다고 두 패로 나뉘어 싸우자, 남전 보원(南泉普願, 748-834) 선사가 고양이를 두 동강 내버렸다는 ‘남전참묘(南泉斬猫)’의 일화도 유명하다.
다만 선사들의 ‘폭력’은 세속에서 일어난 폭력과 극명한 차이를 지닌다. 이득을 취하기 위함도 권력을 얻기 위함도 아니다. 미혹을 부수기 위한 폭력이지 인격을 부수기 위한 폭력과는 거리가 멀다. 분별망상에 현혹되거나 이해타산의 노예가 되지 말고 생각 이전의 자리에서 ‘참나’를 온전히 체득하는 것이다. 조사선이 지향하는 격외(格外)의 도리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육체적 한계로서의 나, 관습과 통념으로 규정된 ‘나’를 넘어, 영원한 불성으로서의 ‘나’를 깨우치라는 따끔한 가르침이다. 오로지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만나는 대화이니, 체면과 가식이 끼어들 틈이 없고 거친 만큼 순수하다.
궁극적으로 법거량은 일종의 면접이다. 예로부터 선가에서는 스승이 제자를 따로 불러 법거량을 통해 수시로 점검했다. 제자가 견처(見處)가 있는지, 과연 맞는 길로 가고 있는지 상식과 통념을 초월하는 질문으로 공부의 수준을 시험해보았다. 아울러 ‘옳다’ ‘그르다’를 명확히 구분해주면서 꾸준한 정진을 독려했다. 이러한 독참(獨參)의 시간은 제자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정말 아는 것인지, 안다면 어디까지 아는 것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깨달은 선지식으로부터 확인받는 것뿐이다. 그만큼 깨달음에 있어 선지식과의 법거량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실제로 진제 선사가 선지식인 향곡 선사에게서 법거량을 매개로 깨달았음을 검증받은 사실은 유명하다. 5년 만에 향곡 선사가 제시한 ‘일면불월면불’ 화두를 타파한 진제 선사는 당당하게 스승 앞으로 나아가 법거량을 펼쳤다. 먼저,
“부처님과 조사들께서 아신 것에 대해서는 여쭙지 않겠으니 부처님과 조사들께서 알지 못한 것을 말씀해달라.”
고 과감하게 달려들었다. 이에 향곡 선사가,
“9·9는 81”
이라고 답하자 다시,
“그것은 부처님과 조사들께서 다 아신 것”
이라며 기백 넘치게 응수했다. 향곡 선사는 재차 “6·6은 36”이라고 했다. 진제 선사는 아무 말 없이 절을 올리고 물러났다. 다음 날 진제 선사가 가사와 장삼을 갖추고 향곡 선사의 방을 찾았다.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않겠으니 무엇이 납승의 안목입니까?”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다[師姑元來女人做].”
“오늘에야 비로소 스님을 친견하였습니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관(關)!”
마침내 향곡 선사는 환하게 웃으면서 진제 선사가 최종 관문을 통과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법을 부촉했다. 선사가 부처님을 시작으로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0-1912)-혜월 혜명(慧月慧明, 1861-1937)-운봉 성수(雲峰性粹, 1889-1946)-향곡 혜림(香谷蕙林, 1912-1978)으로 이어진 해동 임제정맥(臨濟正脈)의 법통을 계승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대선지식인 진제 선사는 평소에 법거량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어느 경지가 되어 화두를 알았다고 해서, 공부를 다 마쳤다고 여겨 어디 가서 한가하게 산다든가, 토굴에서 소일을 한다든가 하는 경우는 반(半)일밖에는 하지 못한다.”
며 질책한다. 온전한 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주하지 않고 나태해지지 않고 불굴의 의지와 용기로 새로운 장벽에 도전하며 부단하게 자기를 갱신해야 한다는 당부이다.
“우리가 선종(禪宗)의 역사를 보더라도 크게 종풍(宗風)을 드날렸던 종사(宗師)들은 스승 밑에서 무수히 방망이를 맞고 탁마(琢磨)를 받았던 분들이다. 깨닫고서 거기서 그저 버리고 놓아버렸으면서 종풍을 드날렸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는 이 일이, 어찌 혼자 힘으로 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밝은 선지식 밑에서 단련되고 또 단련되어야만 비로소 무애자재한 선지식의 수완을 갖추게 되는 법이다.”
비단 수행뿐만 아니라 세상살이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금언(金言)이다.
· 집필자 : 장영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