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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선사가 참구했던 화두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 부모에게 나기 전 어떤 것이 ‘참나’인가?) 진제 선사의 깨달음은 화두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대가다. 그중에서도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은 선사의 상징과도 같은 화두이며 대중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는 화두이다.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은 눈에 보이는 현상계 너머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래야만 현상계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대자유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제 선사의 수행은 화두와의 전투였다. 현재의 지혜와 권위는 화두와의 전쟁에서 이긴 결과로 얻은 전리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향곡 선사로부터 부처님의 정안(正眼) 법통을 명실상부하게 계승한 까닭도 어렵고 아득한 화두와의 만남을 통해서다. 진제 선사는 은사였던 석우 선사가 입적한 이후 묘관음사(妙觀音寺)에 주석하던 향곡 선사를 찾아갔다. 향곡 선사는 대뜸, “일러도 삼십방(三十棒)이요 이르지 못해도 삼십방이니, 어떻게 하려느냐?”고 물었다. 이에 선사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향곡 선사가 다시 물었다. “남전(南泉) 선사의 ‘참묘(斬猫) 법문’에 조주(趙州) 선사가 신발을 머리에 이고 나가신 것에 대해서 한마디 일러보아라.” 선사는 그 물음에도 답을 하지 못했다. ‘알았다’고 자신만만해 있었는데 방망이를 맞은 것이다. 다음은 남전참묘(南泉斬猫)의 화두다.
어느 날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이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다투었다. 싸움이 계속되자 절의 가장 웃어른이었던 남전 보원(南泉普願) 선사가 나섰다. ‘누구든 바로 한 마디 이르면 베지 않겠다!’ 대중이 아무 말이 없자. 남전 선사는 기어이 고양이를 두 동강 내어버렸다. 훗날 남전은 제자였던 조주 종심(趙州從諗) 선사에게 참묘 법문에 대한 답을 요구했다. 그러자 조주 선사는 아무 말 없이 돌연 신발을 머리 위에 이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전 선사가 말했다. ‘조주 네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내가 고양이를 죽이지 않았을 텐데.’
살생(殺生)은 일반인도 마찬가지이거니와 스님들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다.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은 으뜸가는 계율이다. 그럼에도 남전 선사는 고양이를 단칼에 죽여버렸다. 남전참묘는 선의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화 가운데 하나다. 남전 선사의 살생도 아연실색하게 하지만 조주 선사의 행동도 기괴하다. 남전은 왜 고양이를 죽였을까? 조주는 왜 신발을 머리에 이고 나갔을까? 의심이 뼛속까지 사무쳤다. 진제 선사의 진정한 공부가 시작되던 순간이다.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는 진제 선사가 법 스승인 향곡 선사에게서 내려받은 화두이다. 선사는 당시 최고의 선지식인 향곡선사를 찾아갔다. 진제 선사를 맞이한 향곡 선사는 ‘향엄상수화’ 화두를 주며 근기를 시험해 보았다. ‘상수화’란 ‘나무 위에서 하는 말’이다. 향엄 지한(香嚴智閑, ?-898) 선사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갔는데 미처 나뭇가지를 손으로 잡지 못하고 입으로 문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런데 나무 아래서 누군가가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이냐.’고 소리쳐 물었다. 만약 대답하지 않는다면 묻는 이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는 것이요, 만약 대답을 한다면 당장 나무에서 떨어져 죽게 될 것이다. 자, 그대들은 어찌할 것인지 빨리 대답해보라.
향곡 선사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말을 해도 말을 안 해도 안 되는, 쉽게 말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말을 하지 않는다면, 명색이 출가수행자라는 자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겁을 내는 것이다. 반대로 말을 한다면 죽는 것도 죽는 것이니 만용을 부리는 것이다. 초고난이도의 질문이며 과연 답이 있을까 의심이 날 정도이다. 하지만 진제 선사는 ‘향엄상수화’ 화두를 무려 2년을 참구해 마침내 답을 얻었다. 2년여 동안 신고(辛苦)했다. 화두 일념으로 두문불출하고 정진을 하던 28세 때의 어느 날, 새벽 예불을 드리러 법당에 올라가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는 찰나에 문득 화두를 타파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오도송을 지어 향곡 선사에게 바쳤다.
這箇拄杖幾人會 이 주장자 이 진리를 몇 사람이나 알꼬 三世諸佛總不識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다 알지 못함이로다. 一條拄杖化金龍 한 막대기 주장자가 문득 금빛 용으로 변해 應化無邊任自在 한량없는 조화를 맘대로 부리는구나.
이에 향곡 선사가 물음을 던졌다. “금시조(金翅鳥: 용을 잡아먹고 사는 전설의 새)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려느냐?” “몸을 움츠리고 당황해서 뒤로 세 걸음 물러가겠습니다[屈節當胸退身三步].” 라고 답을 하자 향곡 선사는 옳고 옳다며 크게 기뻐했다. 진제 선사는 마침내 용이 된 것이다. ‘일면불 월면불(一面佛月面佛)’은 최종 관문이었다. 하루는 마조 도일(馬祖道一) 선사에게 원주(院主)스님이 매일 아침 문안을 드리며, “밤새 존후(尊候)가 어떠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마조 선사가 “일면불 월면불”이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공안(公案)이다. 일면불은 수명이 1만 1천 겁인 반면 월면불은 불과 하루낮 하루밤을 살고 죽는다. 마조 선사는 왜 삶의 길이가 천양지차인 일면불 월면불을 언급했을까? 진제 선사는 이 아리송한 화두를 가지고 다시 참구하여 5년여 동안 온갖 전력을 다 쏟다가 마침내 해결했다. 비로소 역대 조사들의 모든 화두에 걸림 없이 상통되었다. 오도송은 다음과 같다.
一棒打倒毘盧頂 한 몽둥이 휘둘러 비로자나불 정수리를 부수고 一喝抹却千萬則 일 할로써 천만 갈등을 문대버리고는 二間茅庵伸脚臥 두 칸 띠암자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 海上淸風萬古新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에 새롭도다.
‘남전참묘’든 ‘향엄상수화’든 ‘일면불월면불’이든 화두의 일반적인 형식은 대단히 파격적이고 심지어 과격하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붙인 뒤 수행자들에게 대답을 요구한다. 화두의 해답은 재치나 잔머리로 얻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뼈에 사무치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참구해야만 비로소 얻어낼 수 있다.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를 진제 선사가 몸소 보여주었다.
· 집필자 : 장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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