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공안들은 진제 선사의 ‘부모미생전 본래진면목’ 화두로 수렴된다. 화두를 깊이 참구해 비로소 타파하면 크게 깨달아서 드높은 안목이 열린다. 이 몸뚱이를 나라고 믿기 때문에 육신이 죽거나 다치는 일을 끔찍하게 두려워한다. 반면 간화선으로 정각(正覺)을 이루게 되면 삶과 죽음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우주 전체가 자기 자신임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간화선 수행에서는 화두가 핵심이다. 화두의 의미를 끊임없이 의심하다가 마침내 화두를 타파하기 위해선 치열한 정진이 요구된다. 목숨을 걸고 수행해야 한다. 인생의 처음과 끝이 화두가 되어야 한다.
진제 선사는 2012년 10월 미국 뉴욕 UN플라자 빌딩(Millennium Hilton New York One UN Plaza)에서 현지 종교지도자들에게 한국불교 정통수행법인 간화선을 소개했다. 1,500여 년 전 달마가 법을 전하기 위해 동쪽으로 갔다면, 선사는 서쪽으로 간 셈이다. 이 법문에서 줄곧 강조한 것은 ‘화두’였다. “인류문화의 정수인 간화선은 어떻게 닦는 것인가? 간화선은 화두를 챙겨 간절히 의심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의심은 습관화되고 생활화되어 종국엔 내면화되어야 한다. “일상생활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이 화두를 들고 일체처 일체시에,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챙기고 의심해야 합니다. 오로지 간절한 화두 의심 한 생각에 푸욱 빠지도록 하루에도 천 번 만 번 반복해서 챙기고 의심해야 합니다.”
화두를 의심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간의 삶을 의심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언어와 사고(思考)로 인해 분별심으로 찌든 마음을 고쳐먹는다는 것이다. 화두는 완벽하게 다르게 살기 위한 열쇠와 같다. 뿌리 깊었던 업을 송두리째 뿌리 뽑는 일이니 강력하고 지순한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 역대 조사들의 ‘선물’과도 같은 화두를 지극하게 밀어붙이다 보면 드디어 정신의 천지개벽을 이룰 수 있다. 진제 선사는 뉴욕 법문에서 “그래서 문득 일념삼매에 들어 크게 죽었다가 홀연히 살아나게 되면 마침내 마음의 고향에 이르러 대지혜와 대안락, 대자유와 대평화를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더이상 나에게 집착하지 않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유자적한 나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처럼 참나를 깨닫는 그 속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복락이 있는 것이니,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지중하고 지중한 가치입니다.”
진제 선사의 법문은 철저히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그래서 더 신뢰할 수 있다. 당신의 말대로 당신은 ‘화두를 지극하게 밀어붙였다.’ 하나의 화두에 무려 5년 동안 목숨을 걸고 매달린 끝에 결국 해냈다. 마조 도일 선사의 유명한 화두이자 가장 난해한 화두인 ‘일면불 월면불’을 타파한 것이다.
당나라 시대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는 선(禪)의 황금시대를 연 인물이다. 육조 혜능의 제자인 남악 회양의 법을 이어받았다. 홍주종(洪州宗)을 개창하고 문하(門下)에 84인의 뛰어난 선지식을 배출했다. 세연(世緣)을 다 하여 열반에 들기 직전 어느 날 원주 스님이 아침 문안을 드리며 밤새 안부를 물었다. 이에 마조 선사는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라고 대답했다. 『불명경(佛名經)』에 따르면 월면불은 수명이 겨우 하루낮 하루밤에 불과하다는 부처님이다. 반면 일면불은 무려 1만1천 겁까지 산다. 마조 선사는 왜 갑자기 일면불 월면불이라고 말했을까?
이는 진제 선사의 법(法) 스승인 향곡 스님이 선사에게 던진 문제이기도 하다. 진제 선사는 도무지 입을 뗄 수 없었다. 오랜 정진으로 웬만한 화두에 대해선 거침없이 답을 내놓던 선사였지만 ‘일면불 월면불’ 앞에서는 말문이 막혔다. 난감해 하는 제자에게 향곡 선사가 정곡을 찔렀다.
일면불 월면불이라 하신 이 말씀에 마조 선사의 모든 살림살이가 다 들어 있다. 그러니 마조 선사를 바로 알려면 이 법문을 알아야 한다. 특히 이 ‘일면불 월면불’ 화두는 가장 알기 어려운 고준(高峻)한 법문이다. 『송고백칙(頌古百則)』의 저자로 명성이 높은 설두 중현(雪竇重顯, 980-1052) 선사도 다른 공안(公案)에는 다 확연명백(廓然明白)하였지만 이 일면불 월면불 공안에는 막혀 버렸다. 그래서 다시 20년을 참구하셨어. 그대도 물러서지 말고 이 화두마저 뚫어야 한다.
선불교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불법(佛法)을 전하는 일을 전등(傳燈)이라 한다. 마치 촛불이 다른 촛불에 옮겨 붙는 것처럼 깨달음의 등불이 이어지는 것이다. 송나라 때에 편찬된 전 30권짜리 『전등록(傳燈錄)』은 역대 고승들의 전등 이야기를 담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전등’과 더불어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한다. 제자가 스승에게서 정법을 받아, 다시 자신의 제자에게 전해주는 일을 가리킨다. 곧 깨달음에 있어 스승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예로부터 선가에서는 혼자 깨달았다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지옥에 떨어질 일이라 경계했다. 오직 스승만이 깨달음으로 직접 인도할 수 있었고, 그러므로 제자는 스승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 고유한 전통이다.
진제 선사도 그랬다. 향곡 선사에 대한 지극한 믿음으로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다시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 화두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1966년, 32세 되던 새해였다. 필생의 화두와 씨름한 지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음력 정월의 어느 날, 눈이 내렸다. 부산 묘관음사는 남녘 사찰이어서 눈 내릴 일이 거의 없었다. 그날만은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렸다. 아침에 일어난 진제 선사는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든 풍경에 감탄하며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무심코 마당에 놓인 큰 물통을 쳐다봤다. 산이고 들이고 온 세상에 눈이 차곡차곡 쌓이는데, 오직 물통에 내린 눈만은 물에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순간 갑자기 화두가 으스러졌다. 감히 상상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끈기가 가져다준 지복(至福)이었다.
부산 묘관음사
· 집필자 : 장영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