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眞際) 선사는 1934년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불교정화운동 당시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과의 인연으로 스무 살 약관의 나이가 된 1953년에, “세상의 생활도 좋지만 그보다 더 값진 삶이 있으니, 네가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석우 스님의 권유에 해인사로 출가했다.
이후 10여 년간 간화선으로 용맹정진하던 선사는 향곡(香谷) 스님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1967년에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 화두를 타파한 것이다. 선사는 향곡 스님 앞에서 오도송(悟道頌)으로 자신의 견성(見性)을 드러내 보였다.
一棒打倒毘盧頂 한 몽둥이 휘둘러 비로자나불의 정수리를 부수고
一喝抹却千萬則 일 할로써 천만 갈등을 문대버리고는
二間茅庵伸脚臥 두 칸 띠암자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
海上淸風萬古新 바다 위 맑은 바람 만고에 새롭도다.
이에 향곡 스님은 선사를 인가(印可)했다. 최상승(最上乘)의 법을 깨달았다고 선언한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법을 전해 받은 육조, 마조, 임제의 가풍이 이 글 속에 다 있구나. 너의 대(代)에 선풍이 만방에 드날리리라.”고 극찬하며 ‘진제(眞際)’라는 법호와 함께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전법게란 자신의 법통을 전한다는 일종의 증명서다. 이로써 진제 선사는 경허-혜월-운봉-향곡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했다.
불법의 상속인이 된 선사는 당신이 깨달은 부처님의 미묘법(微妙法)을 만인과 함께 나누고자 간화선의 대중화와 생활화에 나섰다. 1971년 부산 해운대에 해운정사를 창건하고 선원을 개원했다. 승속을 막론하고 모든 불제자들에게 참선법을 직접 지도했다. 선사로서 종단 내 위상도 확고해졌다. 1994년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동화사 조실로 추대돼 지금까지 동안거 하안거 결제 때마다 납자들에게 참선의 바른 길을 제시하며 분발을 독려하고 있다. 1996년엔 조계종립 기본선원 조실, 2000년엔 문경 봉암사 종립특별선원 조실에 올랐다.
외형적인 이력은 2012년에 정점을 찍는다. 수승한 지혜와 지도력을 두루 인정받아 2012년 3월 제13대 조계종 종정에 취임했다. 종정은 종단의 신성(神聖)을 상징하는 최고의 정신적 지도자다. ‘바를 정’이라는 글자에서 보듯 종정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곧 종단의 진리이고 반드시 따라야 할 철칙이다. 종정의 임기는 5년이며 14대 종정에도 연이어 추대되면서 선사는 정확히 10년간 종단의 정신성을 대표했다. 동화사가 종합수행도량인 총림으로 승격되면서 총림의 가장 웃어른인 방장(方丈)으로도 추대됐다. 선원에서 정진하는 수좌 스님들을 비롯해 수많은 재가불자들이 선사의 말씀과 행동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
조계종 종정 추대 법회
특히 간화선의 세계화를 원력으로 지구촌을 무대로 활약한 점이 돋보인다. 1998년과 2000년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두 차례 거행된 무차선대법회에 법주로 초청돼 조계종 제5대 종정 서옹 스님과 함께 법을 내렸다. 2002년에는 주석하던 부산 해운정사에서 중국과 일본의 고승을 초청해 국제무차선대법회를 개최하며 한국 간화선의 진수를 세계에 알렸다. 2011년 9월 미국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The Riverside Church)에서 봉행한 간화선세계평화대법회도 크게 주목받았다. 세계 초강대국의 최대 도시 한복판, 거대한 십자가 아래서 외친 ‘참나’의 사자후는 지구인들의 화제가 됐다.
종정 추대 이후인 2012년 10월에도 뉴욕으로 건너가 현지 종교지도자들에게 한국불교 정통수행법인 간화선을 소개했다. “지구촌의 평화와 화목과 평등, 건강한 생태환경은 인류 개개인이 마음을 닦는 수행을 통해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이룩할 수 있다.”며 세계평화를 위한 종교인들의 화합을 역설했다. 선사의 가르침은 영문 법어집(『Open the Mind, See the Light』)으로도 출간돼 전 세계인들에게 읽히고 있다.
부모에게 나기 전, 어떤 것이 ‘참나’인가?
진제 선사가 대중설법을 통해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참나’의 발견이다. ‘참나’란 선사들이 지향하던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과 다르지 않다. 분별과 미혹으로 가려져 있지만 본래는 깨끗하고 숭고한 마음자리를 가리킨다. 선사는 치열하고 지속적인 참선을 통해 참나를 밝힐 수 있다고 역설해왔다. 아울러 그것의 열쇠가 되는 화두로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제시한다. 한글로 옮기면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어떤 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인가?’이다.
여기서 본래진면목이 바로 ‘참나’다. 반면 ‘부모에게서 태어난 나’란 육신으로 존재하는 나를 의미한다. 그리고 간화선을 통해 유한하고 무상한 가아(假我)를 벗어나, 본래 부처인 자기 자신의 본질을 깨우쳐야 한다는 게 선사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그래야만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참나 속에 변치 않는 정의가 있으며, 참나 속에 영원한 행복이 있으며, 참나 속에 걸림 없는 대자유가 있으며, 참나 속에 밝은 지혜가 있으며, 참나 속에 모두가 평등한 참된 평화가 있다.”는 게 선사의 지론이다. 개인적인 안락부터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문제까지, 모든 해법이 ‘참나’로 귀결되는 셈이다. 얼핏 남북화해와 세계평화는 매우 요원하고 추상적인 주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시작은 결국 ‘나와 너의 대립’이다. 참선을 통해 ‘나’라는 편견과 굴레를 벗어나면, 궁극적인 평화와 화합의 길이 열린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우리는 부모에게서 태어나며 몸을 받는다. 몸은 삶의 근본이 된다. 몸을 통해 자기 자신이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내 몸이 곧 나라는 존재이고 남의 몸은 나와는 다른 존재다. 이렇듯 육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알고 보면 분별심의 출발이다. 육신으로서의 나는 유한하고 옹졸하다. 내 몸을 유지하고 운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욕심을 채워야 하고 타자(他者)와 다툴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토록 몸을 아끼고 소중히 간수해봐야 그 끝은 누구에게나 죽음이다. 육신이 소멸하면 존재도 소멸한다. 허무하게 귀결되는 것이다.
반면 참나란 육신 너머의 진정한 ‘나’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아야만 육신으로서의 나를 극복할 수 있다. 참나는 죽지 않으며 구속되어 있지 않다. 욕구에 휘둘리지 않으며 환경에 연연하지 않는다. 참나가 되면 대자유인(大自由人)의 안목이 열려 자성청정심을 통찰하게 된다. ‘나’라는 육신과 ‘남’이라는 육신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참나를 깨달으면 온 세상이 나 자신이 된다. 스스로가 완전무결한 부처이며, 자신과 같이 삼라만상 모두가 부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궁극적으로 절대적인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진제 선사의 확신이고 진리이다.
· 집필자 : 장영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