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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선사가 계승한 조사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가장 높은 진리의 도(道) 오직 한 줄기가 중국으로 건너와 크게 흥하다가 한국으로 건너왔는데, 지금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한 줄기 남아 있습니다. (중략) 역대의 모든 불조(佛祖)께서 심인법(心印法)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심초사 간절하게 견성법을 지도하였는데, 2,500여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한국의 선불장(選佛場)에서 재현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조계사 간화선 대법회
진제 선사는 2013년 4월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간화선 대법회에서 이렇게 설법했다. 불조(佛祖)는 부처님과 역대 조사 스님들, 심인법(心印法)은 마음의 본래 자리, 선불장(選佛場)은 부처를 뽑는 도량이라는 뜻이다. 선사의 말씀대로 대한민국은 선불교의 전통을 오롯이 보존하고 있는 나라다. 선불교는 중국에서 발흥했으나 전통 말살 정책인 문화대혁명 탓에 위상이 크게 훼손됐다. 일본불교 역시 생활불교를 모토로 한 의례 중심의 불교로 변모했다. 오직 한국불교만이 간화선 수행을 기반으로 깨달은 도인을 배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불교 대표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전국 100여 개 선원에서 무려 2500여 명의 수좌(首座: 참선 수행을 전문적으로 하는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은 일반적으로 조사선(祖師禪)을 가리킨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깨달음을 이룬 조사(祖師)들이 행하고 가르친 선을 일컫는다. ‘달마대사’로 잘 알려진 보리달마(菩提達磨, ?-536)가 창시한 중국의 선종(禪宗)이 그 본류이다. 그 법이 2조 혜가(慧可)에게 전해졌고 이후 3조 승찬(承璨), 4조 도신(道信), 5조 홍인(弘忍)을 거치면서 숙성됐다. 6조 혜능(慧能) 스님이 조사선을 확립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을 전제로 모든 인간이 부처임을 선언했다. 혜능의 법문과 행장을 모은 책이 『육조단경(六祖壇經)』이다. 부처님의 친설(親說)이 아님에도 ‘경’이라는 수식을 붙였다. 그만큼 불교사에서 혜능의 위치가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 육조 혜능은 『육조단경』에서 “세상 사람들의 성품은 본래 깨끗하다.”며 ‘본래 부처’임을 명확히 했다.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살아간다는 점에서 중생과 부처는 동일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중생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욕심을 내고 분별을 하고 부산을 떠니까 중생이다. 반면 부처는 마음의 농간으로부터 자유롭다. 일체가 나와 한 몸임을 깨닫고 편견과 위선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다. 육조 혜능 이후 조사선은 분등선(分燈禪)으로 발전적 변화를 이룬다. 깨달음의 등불이 나뉘었다는 의미로, 위앙종·임제종·조동종·운문종·법안종·황룡파·양기파 등 이른바 오가칠종(五家七宗)을 말한다. 당나라 말기에서 송나라 초기까지 일어난 분화로, 조사선의 사상적 기반 아래 조금씩 다른 가풍을 보여준다.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과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은 분등선 시대를 대표하는 종장(宗匠)이다. 전자는 평상심(平常心)을, 후자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을 설파하며 선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평상심이란 평상시에 흘러가는 마음이며 흘러가는 마음을 붙잡지 않는 마음이다. “평소의 이 마음이 바로 도(道)이다. 짐짓 꾸미지 않고, 따지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만 좇지 않고, 무엇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얽매이지 않고, 평범하다느니 성스럽다느니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마조어록』) 우리가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은 번다한 지식이 아니다. 오로지 내가 있는 그대로 부처이고, 동시에 일체 만물이 나와 똑같이 있는 그대로 부처라는 것 그 단 하나의 사실이다. ‘자리 없는 참사람’으로 번역되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은 평상심으로 사는 사람이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 ‘신분과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 사람’으로 의역될 수 있다.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선 안 된다.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지니,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이건 출세간이건 부처도 없고 법도 없다.”(『임제록』) 결국 세상만사와 삼라만상이 마음놀음임을 알고 다시는 분별하지 않으며 만물을 평등하게 바라보고 자비로 대한다면 그가 바로 무위진인이다. “붉은 몸뚱이에 한 사람의 무위진인이 있다. 항상 그대들의 얼굴을 통해 출입한다. 무위진인은 그대 자신이다.”(『임제록』) 송대(宋代)에 이르러 조사선은 ‘간화선(看話禪)’이라는 구체적인 수행법을 만났다.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를 중심으로 화두를 통해 즉심즉불의 경지에 드는 간화선이 개발됐다. 한국불교 대표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의 정통수행법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몰입해 화두를 타파하면 말길이 끊어지고 분별의 경계를 초월한 무심과 대자유를 증득(證得)할 수 있다. 몰자미(沒滋味), 곧 ‘맛없는 맛’이란 비유를 쓰기도 한다. 빈부(貧富), 고하(高下), 시비(是非) 등등 분별의 이분법에 훼손되지 않은 중도(中道) 실상(實相)을 직관할 수 있다. 불교는 다른 것이 아니다. 선(禪) 역시 다른 것이 아니다. 분별을 버리는 것이다. 가리고 나누는 생각에서 번뇌와 갈등이 비롯된다. 분별하지 않으면 편안해진다. 나와 이웃과 세상이 함께 편안해진다. 간화선은 분별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이다.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임이 없어, 마음이 장벽과 같으면, 능히 도(道)에 들어가리라.”(『이종입(二種入)』) 마음이 장벽과 같아지면 동요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다. 지금 어떤 신분이든 처지이든 나를 무한히 신뢰할 수 있다. 이렇게 자존감이 높으니 남에게 언제나 관대할 수 있다. 선을 영원한 행복의 길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처님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선승들이 제시한 길이다. 조사선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부처님의 79대 법손(法孫)인 진제 선사에게까지 이르렀다.
· 집필자 : 장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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