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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을 울린 죽비소리

선사께서는 2013년(79세) 8월 19일에 대한불교조계종 팔공총림(八公叢林) 동화사 초대 방장으로 추대되셨다. 그런데, 2014년 4월 16일에 소위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안산 단원고(檀園高)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하여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 304명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구조를 위해 해경이 도착했을 때,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원들이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남기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 배는 결국 침몰하였고 이후 구조된 자는 단 1명도 없었다. 가녀린 들꽃처럼 어린 학생들이 죽음의 바다에 던져지는 모습을 TV를 통해 생생히 목격한 국민은 견딜 수 없는 슬픔과 함께 무능한 정부에 분노하였다. 한국사회에는 다시 갈등과 대립이 팽배하였다. 선사께서는 이 아픔과 혼란을 치유하기 위해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를 제안하셨다. 2015년(81세) 5월 15일부터 18일에 걸쳐 대한불교 조계종이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행사에는 캄보디아 승왕(僧王) 텝봉(Tep Vont) 스님, 네팔의 남걀 타망 린포체, 스리랑카의 니얀고다 스님, 텔로 툴쿠(Telo Tulku) 린포체(Rinpoche), 우빤야조타 스님, 세이크리드 하트 대학(Sacred Heart University) 총장이자 세계 가톨릭대학연합회 회장(President of the International Federation of Catholic Universities) 겸 종교 간 이해센터 회장인 앤서니 서네라(Anthony J. Cernera), 뉴욕 맨하튼에 위치한 세인트 존 더 디바인 성당(Cathedral of Saint John the Divine) 수석 사제이자 미국 성공회 최고 수장인 제임스 코왈스키(James A. Kowalski), 세계종교지도자협의회 사무총장인 바와 제인 등 18개국에서 200여 명의 종교지도자가 대거 행사에 참석하였다. 각국 종교지도자들은 16일 오전 10시에 현충원을 참배하고, 오후 2시에는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세계 종교인 회의를 개최하였다. 종교지도자들은 종교화합과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세계 종교 지도자 평화기원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세계간화선무차대회
이 행사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행사이면서 아울러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제였다. 선사의 첫걸음은 세월호 유가족이 농성하고 있는 천막에서 시작되었다. 선사께서는 희생자 전원이 모셔진 영단에 헌화하고, 유가족 대표단을 만나 포옹으로 그 아픔을 어루만지셨다. 그리고 희생자들이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하겠노라며 유가족들을 위로하셨다. 연등회 행렬이 서울 도심을 관통하고, 30만 명의 불자가 서울 광화문광장에 운집하였다. 어둠이 내리고, 연등 행렬이 종로를 통과해 광화문광장으로 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사천왕상을 비롯한 각양각색으로 모양을 낸 대형 장식등이 어둠을 밝히고, 예불이 시작되었다. 광장을 가득 메운 30만 사부대중의 웅장한 염불 소리가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이어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설치된 법고(法鼓)가 울리고, 천진난만한 동자승들의 인도를 받으며 선사께서 입장하셨다. 선사께서 자리하시고,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종이 울리면서 대회가 시작되었다. 이어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慈乘) 스님이 공존·상생·합심을 대원칙으로 삼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2015 불교 통일선언문」을 발표했다. 자승 스님은 네팔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희생된 모든 영령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그들의 가족과 네팔 모든 국민이 위기극복을 위해 지혜와 용기를 잃지 않도록 기도하자고 제안하였다. 또 대한민국 국민 또한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함께 나눴다면서 세월호의 교훈을 되새겨 서로 신뢰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하였다. 아울러 모든 이들이 온전한 삶의 주인공이 되고 세상의 주인이 되어 평화의 길을 열어나가자고 말씀하셨다. 이어 선사께서 법좌에 오르고, 대중이 입정(入定)에 들어갔다. 탁! 탁! 탁! 죽비소리가 세 번 울리자, 30만 명의 불자가 지그시 눈을 감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광화문광장이 한순간에 정적에 잠겼다. 대한민국의 심장, 늘 자동차와 사람이 물결치고 온갖 소음으로 가득했던 곳에 평화로운 고요함이 흘러넘쳤다. 평화와 행복을 이루는 지름길이 고요함에 있음을 직접 보여 준 실로 장엄한 풍경이었다. 탁! 탁! 탁! 죽비소리가 다시 세 번 울리고, 선사께서 주장자를 높이 드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법문하셨다.
古佛未生誰是主 옛 부처가 나기 전에는 누가 우주의 주인공인가? 寥寥寂寂體平安 고요하고 고요해서 그 체성이 평안한지라 大千世界共一家 온 세계가 한 집이요 情與無情同一體 정이 있고 정이 없는 모든 만물이 한 몸이로다. 대중 여러분께서는 방금 산승이 말한 그 주인공을 아시겠습니까? 이 주인공은 천지만물의 근본이요, 일체중생의 마음자리입니다. 이 근본자리는 텅 비어 고요함이나 분명하고 분명한 자리입니다. 온갖 망령된 생각들을 즉각 내려놓는다면, 바로 그 자리가 본래의 마음자리며 본래의 참모습인 것입니다. 이를 미혹하면 중생이요, 항상 밝아있으면 부처이기에 범부와 성인이 근본 자리에서는 둘이 아님이요, 그대로 광명이요, 생명이요, 평화요, 대자유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참 나를 깨달으면 영원한 행복과 대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곧 부처요, 사람이 곧 부처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곧 부처임을 깨달아서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삶을 만드는 일이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서원입니다. 옛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 자리가 모두 진리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모든 번뇌 망상을 놓아버리고 참 나를 깨달아 세상의 주인이 되면 언제 어디서나 걸림 없는 대자재의 삶을 살게 됩니다. 번뇌에 미혹할 때는 고해의 사바세계가 있으나, 참 나를 깨달으면 시방이 공하여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곧바로 해탈열반의 삶을 실현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겨자씨만큼의 땅에도 피를 흘리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셨으니,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維摩) 거사(居士)의 말씀이 오늘날 이 지구촌 인류에게 장군죽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잘못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나 혼자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오늘의 사회 풍조 속에서 인격도야의 실천행이 더욱 절실하다 할 것입니다.
선사께서는 참 나를 깨달아 영원한 행복과 대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육바라밀을 닦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이 여섯 가지 나아갈 길을 지극한 마음으로 금쪽같이 받아들여 실천하면 결국에는 진리를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대중이 화합하는 행복한 정토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울러 법문 끝머리에 다음과 같이 축원하셨다.
우리 조국에서 산화하신 영령들, 작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신 모든 영가들과 네팔 대지진 참사로 희생되신 모든 영가들,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하여 희생되신 모든 영가들이여! 삼독(三毒)의 애착과 집착을 다 내려놓고 부처님의 극락정토에서 대안락을 누리시기 바라는 뜻에서 진리의 한 마디를 선사하고자 하니, 잘 받아 가지시길 바랍니다. 來年更有新條在 내년에 다시 나뭇가지에 새 움이 자라 惱亂春風卒未休 어지러운 봄바람에 끝내 쉬지 못하리.
선사께서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고 내려오셨다. 이어 참석 대중이 일제히 연등을 들어 올린 가운데 해외 종교지도자들이 「세계평화기원문」을 낭독하며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각국 종교지도자들은 「세계평화기원문」에서, 내면의 평화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함이 세계평화로 가는 출발점임을 자각하고 누구보다도 인성을 도야하고 마음을 닦는 수행에 힘쓸 것을 다짐하였다. 아울러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그 어떠한 폭력이나 배타적인 행위도 반대하며, 종교 간 대화와 교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종교 화합과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사께서 주도하신 이 대회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종교인들의 역할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직접 보여주고, 1,600년의 전통을 가진 한국불교의 저력을 세계만방에 떨친 자랑스러운 행사였다.
· 집필자 : 성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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