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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괘불을 걸고 십자가 앞에서 주장자를 들다

2010년(76세) 10월이었다.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이 동화사 법당에 들어와 예배를 보고 찬송가를 부르는 영상이 유포되었다. 이는 동화사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간 다종교 국가인 한국에서 일부 기독교인들이 불교도들에게 보인 공격적인 태도와 파괴적인 행동은 자칫 사회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이 보일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동화사 대중들이 모두 참여한 산중회의가 소집되고, 대책이 논의되었다. 법적인 대응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립과 갈등을 평화롭게 풀어가는 것이 종교인의 역할이니, 불교도와 기독교도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계기가 될 방안을 찾아보자는 쪽으로 중론이 모였다.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인들끼리도 화해와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이념과 인종의 장벽을 넘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실로 요원하다고 했다. 동화사 대중들은 세계적으로 신망받는 기독교 지도자를 초청해 불교 지도자와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해 보기로 하였다. 적임자로 미국 유니언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종교 간의 대화를 가르치는 저명한 신학자 폴 니터(Paul F. Knitter) 교수가 추천되었다. 다원주의 종교 신학의 최고 권위자인 폴 니터 교수는 세계평화평의회(World Peace Council, WPC) 국제위원회의 이사로서 세계 종교 지도자들과 깊은 유대가 있고, 『붓다 없이 나는 기독교인일 수 없었다』라는 책을 쓸 만큼 불교에 관한 관심 또한 지대했다. 12월 31일, 선사는 동화사 염화실에서 폴 니터 교수 내외를 맞이하였다. 폴 니터 교수는, 한국의 일부 기독교인들이 사찰에서 무례한 행동을 저질렀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자신이 전체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하고 대신 사죄드린다는 말로 첫인사를 건넸다. 선사께서는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먼 곳에 찾아와 한국의 사정을 염려해 주니 대단히 고맙습니다. 불교는 갈등을 부추기거나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이것과 저것은 둘이 아니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데, 무슨 투쟁이 있고 반목이 있겠습니까? 모든 불자와 그리스도교도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합심해 인류의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오랜 친구의 만남처럼 두 종교지도자의 대화는 유쾌하고 편안하였다. 종교적 신념과 관습의 장벽 정도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긴 대화의 장이 이어졌다. 이후 선사는 폴 니터 교수와 함께 2011년 1월 1일부터 1월 5일까지 동화사, 해운정사, 범어사, 서울 국제선센터에서 평화를 위한 종교 간의 대화를 주관하셨다. 폴 니터 교수는 간화선(看話禪)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선사는 그런 폴 니터 교수에게 ‘진아(眞我)’라는 불명을 주고, 참나를 찾아보라며 화두를 내려주셨다. 폴 니터 교수는 선방 스님들과 함께 참선하는 시간을 가졌다. 동화사에서 법회를 마치고 나오던 때였다. 도량 한 모퉁이에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있었다. 폴 니터 교수가 손가락으로 눈사람을 가리키며, 저 눈사람도 성불할 수 있냐고 선사께 물었다. 선사께서 웃으며, 이 우주가 생기기 전 아득한 세월 이전[塵墨劫前]에 이미 성불했다고 대답했다. 폴 니터 교수는 선사의 지혜에 감동하고, 간화선에서 깊은 종교적 영감을 받았다. 이에 미국으로 돌아간 폴 니터 교수는 각계 인사들과 협력하여 선사를 뉴욕으로 초빙하였다. 2011년(77세) 9월 15일 미국 뉴욕 맨하튼의 리버사이드 교회(The Riverside Church)에서 간화선 세계평화 대법회가 개최되었다. 그 안내문에, “최고의 영적 경지에 이른 종교적 인물을 만날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경험!”이란 구절을 새겼을 만큼, 현지인들의 큰 관심은 뜨거웠다.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 뉴욕 시장이 축사를 보내고, 불교도는 물론 기독교도와 유대교도·이슬람교도 등 다양한 종교인과 지식인들이 빼곡히 좌석을 메웠다. 웅장한 교회에 화려한 색채의 괘불이 걸리고, 황금색 가사를 입은 선사께서 십자가 앞에 당당히 앉아 주장자를 높이 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리버사이드교회 대법회
오늘 이 산승이 이 자리에 앉은 까닭은 동양 정신문화의 정수인 간화선을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간화선은 모든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는 훌륭한 수행법입니다. 간화선은 마음의 고향인 ‘참나[眞我]’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곳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곳입니다. 그곳으로 돌아가면 온갖 시비와 갈등, 시기와 질투가 사라지고 대안락과 대자유, 그리고 무량한 대지혜를 수용하게 됩니다. 참나를 깨닫는다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산승의 법문을 듣고 있는 주인공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주인공은 모든 곳에서 주인공이 되어 일체를 무애자재하게 수용합니다. 그래서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의존하지 않는 사람, 모든 가치관에서 자유로운 사람, 모든 종교와 정치제도 문화적 제약에서 벗어난 절대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류의 희망이 참나를 깨닫는 데 있고, 인류의 더 나은 미래가 여기에서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참나 속에 변치 않는 정의가 있고, 참나 속에 영원한 행복이 있고, 참나 속에 걸림 없는 자유가 있고, 참나 속에 밝은 지혜가 있고, 참나 속에 모두가 평등한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이 정의와 행복과 자유와 지혜와 평화는 학식이 풍부하다고, 부유하다고, 지위와 명성이 높다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참나를 깨달은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온 인류가 일상생활 속에서 참나를 탐구하는 참선 수행을 꾸준히 닦아 행한다면 모든 분별과 시비 갈등이 사라져 그 마음이 저절로 안정될 것입니다.
법회에 참석한 2,000여 명의 청중은 선사의 활달한 기상과 거침없는 법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법회가 끝나갈 무렵 선사께서 청중에게, “저의 참모습은 어떤 성인도 보지 못하는데, 여러분은 어느 곳에서 저의 참모습을 보시렵니까?”하고 물었다.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큰 스님!”하고 불렀다. 선사께서 얼굴을 찡그리며, “틀렸어, 이름은 불러 뭣해”라고 하셨다. 그가, “아이고, 아이고!”하고 통곡하는 시늉을 하자, 선사께서 웃으며, 가까이 있었다면 이 주장자로 30방은 맞았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어 선사께서 시선을 돌리고 청중에게, 이 질문에 답해 볼 사람이 없는지 물으셨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선사께서, “그렇다면 이 산승이 대신 한마디 하겠습니다. 시자야! 빗장 잘 잠가라.”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선사께서는, “그렇다면 결국 진리란 무엇일까요?”라고 자문하고는, “구름 걷히니 산봉우리가 드러나고, 물결 한가운데 밝은 달이 비치는구나. What is your Ture Self? Thank you very much.”라고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환호와 찬탄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 자리에 참석한 주요 인사 가운데는 유대교 랍비(Rabbi) 잭 벰포라드(Jack Bemporad)도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Pontifical University of St. Thomas Aquinas)과 교황청 소속 안게리쿰 대학(Vatican’s Angelicum University)의 교수를 지낸 그는 달라이 라마(Dalai Lama)와 바티칸의 프란치스코(Francis) 교황, 영국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 등 세계 종교 지도자들과 깊은 교분을 가진 종교계의 거목이었다. 또 주목할 만한 인물은 더글라스 코어(Douglas Coe) 목사였다. 그는 40여 년간 백악관 담임 목사로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멘토 역할을 해 온 분이었다. 선사의 법문에 깊은 감명을 받은 더글라스 코어 목사는 선사 일행을 자택으로 초대하였다. 그리고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깍듯이 예의를 갖추며, 선사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정중히 여쭈었다. 선사는, 감사한 말씀이나 저를 도와줄 일은 딱히 없다고 하였다. 이에 더글라스 코어 목사는 더욱 깊은 감동을 받고 선사를 깊이 존경한다고 했다. 12월 14일, 새로운 종정(宗正)을 추대하기 위한 조계종 원로회의가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렸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20명과 총무원장, 종회의장, 호계원장 등 23명이 참석하셨다. 새 종정을 추대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분, 참석자 전원이 만장일치로 선사를 추대하였다.
· 집필자 : 성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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