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자두나무는 말이 없지만 봄이 오면 그 아래로 저절로 길이 난다고 했다. 이후 선사의 법향(法香)을 좇는 이들의 발길이 해운정사 금모선원(金毛禪院)으로 이어졌고, 선사의 법과(法果)를 맛본 이들의 찬사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선사께서는 1991년(57세)에 선학원(禪學院) 이사장에 취임하고, 또 중앙선원 조실을 역임하셨다. 1994년(60세)에는 대구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로 추대되셨다. 은사(恩師)이신 석우(石牛) 선사와 법사(法師)이신 향곡(香谷) 선사의 뒤를 이어 금당선원의 조실로 추대되셨으니, 매우 감격스럽고 뜻깊은 일이었다. 1996년(62세)에는 대한불교조계종 기본선원 조실로 추대되셨다.
1998년, 선사께서 64세 되던 해였다. 서옹 상순(西翁尙純, 1912-2003) 선사로부터 꼭 한번 봤으면 한다는 연락이 왔다. 평소 존경하던 선문(禪門)의 선배께서 보자 하시니, 머뭇거릴 수 없었다. 선사는 곧장 백양사(白羊寺) 운문암(雲門庵)으로 찾아갔다.
인사를 마치자 서옹 선사께서 조용한 목소리로, 옛사람께서 제1구에 깨달으면 부처와 조사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모든 사람과 하늘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 자기 자신도 구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무엇이 제1구인지를 물으셨다. 선사께서, “만리에 백골(白骨)이 즐비합니다.”라고 답했다. 서옹 선사께서, 제2구는 무엇인지를 묻자, 선사께서, “이 주장자로 후려쳐 주장자가 두 토막이 난다고 해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서옹 선사께서 제3구는 무엇인지를 묻자, 선사께서, “질문도 있고, 답도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서옹 선사께서 환하게 웃으며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서옹 선사는 미국 하와이대학 교수인 깔루파하나(David J.Kalupahana) 박사가 운문암 선방에서 며칠 지내보고는 한국불교의 선법(禪法)에 감탄했던 이야기를 서두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현재 인류는 물질문명의 과다한 팽배로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품성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욕망의 노예로 살아가는 야만의 시대로 복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분열하고 대립해 문제를 만들고, 또 그 문제를 투쟁과 폭력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이 세상은 오래지 않아 아비지옥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특히 우리 조사선(祖師禪)은 파괴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최고의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이 훌륭한 수행법을 세상에 널리 소개하고 권하는 자리를 마련해 볼까 합니다. 출가자와 재가자는 물론이고, 종교와 신념, 성별과 나이의 차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차선회(無遮禪會)를 마련해 한바탕 선법(禪法)을 펼쳐 봅시다. 스님께서 그 법주(法主)를 맡아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공개석상에서 진실을 드러내 보이고, 그 진실에 대해 담론하고, 즉석에서 상대방의 수행 정도를 파악해 진위(眞僞)를 점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선사께서는 흔쾌히 이를 수락하고, 8월 백양사에 열린 무차선회(無遮禪會)의 법주가 되어 조사의 가풍을 널리 선양하셨다.
2000년(66세) 선사께서는 봉암사(鳳巖寺) 태고선원(太古禪院)의 조실로 추대되셨다. 그해 8월에 백양사에서 제2차 무차선회가 열렸고, 선사께서 역시나 법주로 초대되셨다. 이후 서옹 선사는 차후 무차선회를 선사께서 주관해 달라 부탁하셨고, 선사께서는 이를 흔쾌히 수락하셨다. 선사께서는 무차선회의 규모를 확대하여, 선법(禪法)이 전래된 동양 3국 즉 중국과 한국과 일본에서 명실공히 최고의 안목을 갖춘 선지식을 초빙하여 세계 모든 이들에게 선법을 널리 베풀어야겠다고 마음먹으셨다. 이에 국제무차선대법회(國際無遮禪大法會)를 계획하고, 중국과 일본에서 밝은 안목을 갖춘 선지식을 물색하였다. 각 나라를 대표해야 하니 아무나 청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중국과 일본을 돌면서 최고의 선지식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선사는 3월(음력 2월)에 26명의 수좌(首座)와 함께 먼저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선종(禪宗) 초조(初祖)인 보리달마(菩提達磨, ?-528) 대사께서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처음 주석하신 광덕사(廣德寺), 선종 제2조 혜가(慧可, 487-593) 선사께서 주석하신 이조사(二祖寺), 선종 제3조 승찬(僧璨, ?-606) 선사께서 주석하신 삼조사(三祖寺), 선종 제4조 도신(道信, 580-651) 선사께서 주석하신 사조사(四祖寺), 선종 제5조 홍인(弘忍, 594-674) 선사께서 주석하신 오조사(五祖寺), 제6조 혜능(慧能, 638-713) 선사께서 주석하신 보림사(寶林寺),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께서 주석하신 운문사(雲門寺),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 선사께서 주석하신 임제원(臨濟院), 조주 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께서 주석하신 조주원(趙州院)을 차례로 방문하고, 방장 스님들과 법담을 나누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은 1,500여 년 전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선종(禪宗)으로 그 꽃을 피웠다. 하지만 중국불교는 60여 년의 공산 통치로 그 오랜 전통이 파괴되어 형식적인 의례와 계율을 지킬 뿐 수행의 가풍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조주 선사께서 차나 한잔 마시라고 말씀하신 뜻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에 찻잔을 내밀어 답한 조주원 방장 정혜(淨慧) 선사가 그나마 안목을 갖춘 분이었다. 정혜 선사는 1933년생으로 어려서부터 절에서 성장해 임제종(臨濟宗)과 운문종(雲門宗)의 법을 계승한 분이었다. 당시 정혜 선사는 생활선(生活禪) 운동을 고양하면서 중국불교협회 부의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중국을 다녀온 후, 선사는 한편으로는 실망하고, 또 한편으로는 큰 자부심을 품게 되었다. 부처님과 조사들의 심인법(心印法)이 한 가닥 실낱처럼 이어지고 있는 곳은 오직 한국뿐이었기 때문이다. 선종의 본가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선풍이 이 정도인데, 일본의 선풍이야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선사께서는 서옹(西翁) 선사의 추천을 받아 일본 임제종(臨濟宗) 선지식인 종현(宗玄) 선사를 법주로 초청하였다. 종현 선사는 1948년생으로 임제종의 법을 계승한 분이며, 후쿠오카 숭복사 조실로 주석하고 있었다.
2002년(68세) 10월 20일, ‘21세기 선(禪)으로 인간성을 회복하자’라는 기치를 내걸고 국제무차선대법회가 해운정사에서 개최되었다. 선사께서는 백양사 서옹 선사, 중국의 정혜(淨慧) 선사, 일본의 종현(宗玄) 선사와 함께 차례로 법좌에 올라 선법(禪法)을 드날리셨다. 동양 최고 선지식들의 진면목을 보려고 몰려든 군중으로 인해 해운정사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운집한 가운데, 선사께서 선상에 올라 주장자를 높이 들고 사자처럼 외쳤다.
국제무차선대법회 (해운정사)
여러분, 보셨습니까? 이것을 선(禪)이라 하면 똥 위에다 다시 똥을 싸는 짓이요, 이것을 선이 아니라 해도 30방을 맞을 것입니다.
선의 진면목을 드러낸 통쾌한 법문이었다. 선사께서는 이어 화두를 참구하는 참선법이 큰 지혜를 깨달아 열반의 즐거움을 누리는 지름길임을 강조하고,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 일념(一念)이 지속하면 반드시 크게 깨달아 곧장 부처님 지위에 이르게 된다고 확언하셨다. 법문이 끝나고 참석한 대중들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묵산(黙山) 선사가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진제 선사를 불렀다. 선사께서 대답하자, 묵산 선사가, “오늘 이 법회는 뭘 하는 자리입니까?” 하고 묻자, 선사께서, “저의 허물이 온 천하에 가득합니다.” 하고 답하였다. 묵산 선사가, “입을 열면 이미 그르친 것이니[開口卽錯] 내려오시오.”라고 하자. 선사께서, “차나 한잔 드시지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묵산 선사가, “어서 내려오시오!” 하며 다그치자, 이에 선사께서 “억!” 하고 크게 할을 하셨다. 우레와 같은 고함과 함께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만인이 모인 자리에서 지혜의 칼과 창을 겨루는 선문답이 펼쳐진 것은 실로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선사께서는 2003년(69세)에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에 추대되고, 2004년(70세)에는 대한불교조계종 대종사로 추대되셨다. 그리고 2009년(75세) 10월 29일에는 부산 벡스코BEXCO 전시장에서 개최된 백고좌대법회(百高座大法會)의 법주로서 15,000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법상에 올라 선법을 널리 선양하셨다.
· 집필자 : 성재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