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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를 만나다

1957년(23세)이었다. 선사는 석우 선사를 모시면서 경전을 섭렵하고, 또 틈틈이 화두를 참구하였다. 하지만 큰 절의 부산한 일상 속에서 소임까지 살면서 화두에 몰두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여름 안거 해제일이 되었다. 선사는 몇 번을 미루다가 석우 선사께, 자신도 이제 제방을 행각(行脚)하며 정진했으면 한다는 뜻을 말씀드렸다. 석우 선사께서 흔쾌히 허락하셨다. 운수납자(雲水衲子)의 길로 나선 선사는 여러 사찰을 유행하다가 태백산(太白山) 각화사(覺華寺)에 부속된 동암(東庵)에 발길이 닿았다. 6·25 전쟁은 끝났지만, 당시 깊은 산중에는 공비들의 출몰이 끊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공비들의 잦은 출몰로 각화사도 동암도 대중이 흩어진 채 비어 있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문짝은 바람을 가리기에도 부족하고, 식량이라고는 쌀 한 톨 없이 부엌 모퉁이에 던져진 피감자 반 가마니가 전부였다. 공비의 출몰도 산짐승들의 위협도 굶주림과 추위마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도리어 모든 반연(攀緣)을 끊고 오로지 화두를 참구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선사는 그곳에 바랑을 풀었다. 그렇게 감자로 굶주림을 달래고 밤낮없이 화두와 씨름하면서 각고정진(刻苦精進)하던 때였다. 두어 달쯤 지나, 아래 큰 절 각화사에 새로 주지가 부임하였다. 그 주지 스님은 함께 수행한 적이 있던 도반이었다. 암자에 올라와 살림살이를 둘러본 도반 스님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곧 겨울이 닥치는데 이부자리는 고사하고 하루 세끼 먹거리조차 없는 이곳에서 어쩌자고 이러냐며 큰 절로 내려가 함께 지내자는 것이었다. 정중히 거절했지만, 주지 스님은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와 큰 절로 내려가자며 보챘다. 동암에 더 머무는 것은 마음을 놓지 못하는 주지 스님에게도, 화두 삼매를 놓치고 싶지 않은 선사에게도 성가신 일이었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 선사는 조용히 바랑을 쌌다. 그리고 선산(善山) 도리사(桃李寺) 태조선원(太祖禪院)에 방부를 들이고 겨울 안거에 들어갔다. 동참한 일고여덟 분의 수좌 모두 여법(如法)히 수행하는 분들이었다. 선사는 견성(見性)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달아,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다. 저녁 9시에 방선(放禪)하고 대중들이 이부자리를 펴면, 대중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살며시 혼자 일어나 두어 시간 더 정진하곤 하였다. 1958년, 선사께서 24세 되던 해였다. 석우 선사께서 내려주신, ‘부모님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고?’라는 화두를 들고 빈틈없이 수행하던 어느 날이었다. 온갖 시내와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듯 온갖 생각이 화두 일념 속으로 녹아들더니, 모든 존재의 실상(實相)이 확연히 드러났다. 너무나 분명했다. 일체가 인연 따라 나타난 모습일 뿐, 온갖 차별상(差別相)은 본래 공(空)한 것이었다. 까닭 없이 나니 너니 이것이니 저것이니 구별해 온갖 감정과 생각의 실타래를 이리 엮고 저리 엮었던 지난날의 삶이 몽땅 망상(妄想)이요, 헛된 짓이었다. 고인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이 나와 함께 생긴 것이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 하더니, 과연 온 우주가 한 집이요, 한 몸이었다. 인연 따라 나타난 모습에 집착하면 낱낱에 생멸이 있는 듯하지만, 하나의 참된 성품은 실로 생기는 법도 없고 사라지는 법도 없이 항상 여여(如如)하였다. 눈앞이 환하게 밝았다. 부처님과 조사들께서 보고 아신 것을 나도 이제 보고 알았다는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환희심이 솟구쳤다. 그날 이후 선사는 대장부가 할 일을 마쳤다는 생각에 참구하던 화두를 내려놓았다. 해제하면 곧장 석우 선사를 찾아가 점검을 받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겨울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2월 15일(음력 1957년 12월 27일)이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은사이신 석우 선사께서 게송 한 수를 남기고 열반하신 것이었다. 열반송은 다음과 같다.
囊括乾坤方外擲 하늘과 땅을 바랑에 담아 시방 밖에 던져버리고 杖挑日月袖中藏 해와 달을 주장자에 묶어 소매 속에 감춰버렸네. 一聲鍾落浮雲散 한 가닥 종소리 떨어지고 뜬구름 흩어지니 萬朶靑山正夕陽 일만 송이 푸른 산도 이제 석양이로구나.
선사는 곧장 동화사로 달려갔다. 그 옛날 향엄 선사가 깨닫고는 위산 선사가 있는 곳을 향해 멀리서 절을 올렸듯이, 선사는 석우 선사의 영정 앞에 큰절을 올렸다. 석우 선사가 아니었다면 불법의 바다로 어찌 들어올 수 있었으며, 석우 선사가 아니었다면 그 바다의 한 맛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으랴! 스승의 은혜는 실로 넓고도 깊었다. 사나운 불꽃 속에서 눈물로 다비를 마치고, 선사는 상념에 잠겼다. 스승을 잃은 슬픔 한편에 아쉬움이 깃들었다. 깨달음을 점검해 줄 분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침 최고의 선객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퇴옹 성철(退翁性徹, 1912-1993) 선사께서 동화사 인근의 파계사(把溪寺) 성전암(聖殿庵)에 주석하고 계셨다. 당시 성철 선사는 처소에 철조망을 두르고 아무도 만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선사는 석우 선사의 다비식에 참석했던 선객들과 함께 성전암으로 찾아갔다. 다행히 성철 선사께서는 만남을 허락하고 인사를 받으셨다. 하지만 공부를 점검하고 가르침을 내려주십사 하는 요청에는 손사래를 치셨다. “나는 모른다.”라고 하며 다른 사람한테 가보라고 한사코 거절하셨다. 어쩔 수 없이 성전암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선사는 다시 선객들과 함께 기장(機張) 월내(月內)의 묘관음사(妙觀音寺)로 향했다. 그곳에는 성철 선사와 쌍벽을 이루는 분으로 선객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향곡 혜림(香谷蕙林, 1912-1978) 선사께서 주석하고 계셨다. 다행히도 향곡 선사께서는 찾아오는 이들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향곡 선사는 장대한 기골에 안광(眼光)이 빛나는 분이셨다. 그 풍채부터 대장부의 기상이 넘쳤다.
향곡혜림 선사
공손히 절을 올리고 공부를 점검받고자 찾아왔다는 뜻을 밝혔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향곡 선사의 목소리가 사자의 포효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제대로 말해도 30방(棒)을 때리고, 제대로 말하지 못해도 30방을 때리겠으니, 어떻게 하겠냐고 하였다. 입을 뗄 수 없었다. 선사가 머뭇거리자 향곡 선사께서, 남전참묘(南泉斬猫) 법문을 아느냐고 물으셨다. 선사가 또 머뭇거리자 향곡 선사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당나라 때 남전 보원(南泉普願, 748-834) 선사 회상에서 700여 명의 대중이 정진하였는데, 하루는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동쪽 선방 대중과 서쪽 선방 대중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남전 선사께서 그 광경을 보고는 대중을 모이게 운집종을 치셨다. 대중이 법당에 모이자, 남전 선사께서 법상에 올라 시자에게 고양이를 잡아 오라고 명하셨다. 시자가 고양이를 잡아 오자, 남전 선사께서 한 손에는 고양이를 들고 다른 손에는 날이 시퍼런 칼을 들고서, 오늘 이 고양이에 대해 분명히 말하는 자가 있으면 고양이를 살려주겠지만 분명히 말하는 자가 없으면 베어버리겠다고 하셨다. 법당에 모인 700명 대중이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자 남전 선사가 칼로 고양이를 두 동강 내버리고는 방으로 돌아가셨다. 얼마 후 외출했던 조주 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가 돌아와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남전 선사가 앞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면서 조주 선사에게, 자네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뭐라고 한마디 하겠냐고 물었다. 조주 선사가 신발을 벗더니 머리에 이고 나가버렸다. 그러자 남전 선사가, 자네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렸을 것이라고 하셨다.
향곡 선사는 이야기를 마치고 선사에게 남전 선사가 고양이를 들고 한 마디 이르라고 했는데, 왜 조주 선사는 신발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갔는지 물으셨다. 남전 선사께서 700명 대중에게 그랬던 것처럼 향곡 서슬 퍼런 목소리로 어서 말해보라며 선사를 다그쳤다. 선사가 또 머뭇거리자 향곡 선사께서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공부하라고 권하였다. 사자를 만난 고양이처럼 주눅이 들어 도무지 어찌해 볼 방도가 없었다. 선사는 향곡 선사의 호된 방망이를 맞고 묘관음사를 떠났다. 하지만 견성(見性)했다는 알음알이를 놓아버린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향곡 선사의 안목을 부정하고, 다시 선지식으로 이름난 고승(高僧)들을 차례로 찾아뵈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통도사에서 혜운 경윤(慧雲敬允) 율사를 계사로 구족계(具足戒)를 수지하셨다.
· 집필자 : 성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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