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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고?

겨울이 가고 새봄이 찾아왔다. 종정이신 석우 선사께서는 옥천사 백련암에서 겨울을 나고 1956년 3월에 다시 대구 동화사(桐華寺)로 거처를 옮기셨다. 금당선원(金堂禪院)에 주석하게 된 석우 선사께서는 해인사에 머물던 선사를 시자(侍者)로 부르셨다. 선사께서는 부름에 응하여 동화사로 거처를 옮기고, 공양주를 살면서 석우 선사를 곁에서 모셨다. 그해 겨울 어느 날이었다. 선방 대중들이 겨울 안거 반 살림을 맞아 팔공산 정상까지 등산을 가면서 선사에게도 함께 가자 권유하였다. 한나절 자리를 비운다고 큰일이야 나겠나 싶었다. 그래서 석우 선사께 말씀도 드리지 않고 선방 대중과 함께 등산에 나섰다. 모처럼 산행에 나서자 선방 대중들은 동지섣달 칼바람에도 활기가 넘쳤다. 농담을 섞어 서로의 공부를 허심탄회하게 술회하고 또 점검하였으며, 제방에서 만난 선지식(善知識) 이야기에 촌평과 찬탄이 끊이질 않았다. 그 틈에 섞여 함께 노닐던 선사의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쳤다. 산 정상에 올라 개미굴처럼 펼쳐진 인간 세상을 굽어보자, 대장부의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절로 배가되었다. 일행은 산에서 내려오던 길에 작은 토굴 하나를 발견하였다. 마침 양식과 땔감도 충분했다. 그러자 일행 중 한 분이, 이곳에서 일주일 용맹정진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다. 누구 하나 거부하는 이가 없었다. 신심(信心)이 솟구쳤다. 선사는 어른을 곁에서 모시는 시자의 소임도 잊은 채 용맹정진에 동참하였다. 일주일의 시간이 꿈결처럼 흐르고 동화사로 내려왔다. 인사를 드리려고 방문을 열자마자 석우 선사께서 호통치셨다. 들고 날 때 어른에게 미리 말씀드리는 예절도 배우지 못했냐는 것이었다. 선사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석우 선사께서는 노기를 가라앉히고 허락도 없이 외출한 까닭을 물으셨다. 선사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도 다른 스님들처럼 참선해서 얼른 깨닫고 싶었다고 말씀드렸다. 깨달음은 깨닫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필요하지만, 그 의지만으로는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석우 선사께서는 이를 깨우쳐 주며, 선사에게 수행자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세 가지 덕목을 다음과 같이 일러주셨다.
석우 선사
첫째, 수행자는 성실해야 한다. 세상에 열심히 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둘째, 수행자는 겸손해야 한다. 부처님의 도(道)와 법(法)이 혼자 힘으로도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것이면 참 좋겠지만, 사실 수행이란 보통 사람에게는 실로 난감한 일이다. 따라서 안목(眼目)이 분명하게 열리기 전까지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앞서간 이들을 존중하고 따르며, 반드시 스승을 의지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셋째, 수행자는 솔직해야 한다. 세상 거짓말 가운데 가장 큰 거짓말이 도를 깨닫지 못했으면서 깨달았다고 말하고, 선지식이 아니면서 선지식이라 자칭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만 망치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까지 눈멀게 하는 짓이니, 차라리 깨닫지 못한 범부(凡夫)로 남을지언정 거짓으로 도인 흉내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석우 선사께서는 선사의 참학(參學) 의지를 간파하고, 화두(話頭)를 내려주셨다. 그 화두는 다음과 같다.
당나라 때 향엄 지한(香嚴智閑, ?-898) 선사가 위산 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께 찾아가 선(禪)을 배우던 시절 이야기이다. 향엄은 매우 총명하였고 어려서부터 글도 많이 배우고 경전도 많이 읽은 분이었다. 그래서 위산 선사가 뭘 물으면 그 자리에서 척척 답을 하였다. 위산 선사가 어느 날 향엄을 따로 불러, 자네가 평생 배우고 이해한 것이나 경전이나 책자에 기록된 것은 묻지 않겠으니 자네가 어머니 뱃속에 나오기 전 동쪽 서쪽도 구분하지 못하던 시절의 본분사(本分事)에 대해 한마디 일러 보라고 하셨다. 그 일에 대해 제대로 말하면 인정하겠다는 것이었다. 향엄은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다. 한참을 궁리해 이것저것 말씀드렸지만, 위산 선사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틀렸다는 말씀뿐이었다. 향엄이 답답한 마음에,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도저히 모르겠으니 스님께서 말씀해 달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선사께서 향엄에게, 설명해 줄 수야 있지만 그것은 나의 견해이니 자네 안목이 밝아지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거절하였다. 그날 밤 향엄은 그간에 읽었던 경론이며 제방 선지식들의 어록을 몽땅 꺼내 뒤져봤다. 하지만 위산 선사의 질문에 합당한 대답은 찾을 수 없었다. 향엄은 그림 속 떡으로는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다며 탄식하고, 날이 밝자 평소 보물처럼 아끼던 책들을 몽땅 태워버렸다. 그러고는 불법 공부고 수행이고 다 집어치우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밥이나 얻어먹는 행각승 노릇이나 하다가 죽자고 다짐하였다. 그러면 괜히 스스로 마음을 고달프게 하는 짓은 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향엄은 눈물을 흘리며 위산 선사 곁을 떠났고, 이곳저곳을 떠돌다 남양(南陽)이란 곳에 다다라 혜충 국사(慧忠國師, ?-775)의 유적지에 머물며 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향엄은 탑 주변에 우거진 풀과 잡목을 베면서 청소하다가 너부러진 기왓장 조각을 주워 숲으로 던졌다. 무심코 던진 기와 조각이 마침 대나무에 부딪혔다. “딱!” 하는 소리가 적막한 산중을 울렸고, 향엄은 이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 순간 향엄은 부모님에게서 태어나기 전 자신의 면목을 확연히 깨닫고, 웃음이 터졌다. 향엄은 곧장 처소로 돌아와 깨끗이 목욕하고, 향을 피우고서 멀리 위산 선사께서 계신 곳을 향해 절을 올렸다. 부모님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위산 선사께 감사드리면서, 만약 그때 설명해주셨다면 오늘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냐며 찬탄하였다.
석우 선사께서 위산 선사와 향엄 선사의 일화를 들려주고 나서 말씀하셨다. 지금 자네가 ‘나다,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는 것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뒤에 생겨난 모습이다. 눈과 귀를 비롯한 몸뚱이는 물론이고, 생각과 감정 그리고 자네가 알고 있는 그 지식까지도 몽땅 태어난 뒤에 얻은 것들이다. 그렇다면, 부모님에게서 태어나기 이전의 자네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한마디 일러 보라고 하였다. 선사가 말이 없자, 석우 선사께서 엄숙한 표정으로 참구(參究)하라고 당부하셨다. 이것이 선사가 받은 첫 번째 화두였다.
· 집필자 : 성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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