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재와 예수재는 의식의 근거가 되는 경전과 그것을 행하는 방법을 담고 있는 의궤(儀軌)[1]의궤는 의문(儀文), 의례문(儀禮文), 의례집(儀禮集), 의식집(儀式集)이라고도 부른다.가 있다. ‘의’가 불법을 실은 기차라면 ‘궤’는 이것을 달리게 하는 철길과 같다. 따라서 범패, 작법무, 장엄 등의 행위는 인식을 실어 나르는 궤도이다.[2]국립무형유산원(2017), 『진관사 수륙재』, 서울: 민속원, 26쪽.
수륙재
그날 밤 3경(更)이 지난 후에 면연(面然)이라고 하는 한 아귀(餓鬼)가 아난 앞에 나타나서 말하였다.
“앞으로 사흘 후면 그대의 목숨이 다하여 곧 아귀의 세계에 태어날 것이오.”
“지금 나에게 이러한 재앙이 있다 하니, 어떤 방편을 쓰면 이러한 괴로움을 면할 수 있겠는가?”
“그대가 이른 새벽에 백천(百千) 나유타(那由他) 항하(恒河)의 모래 수같이 많은 수의 아귀와 백천 바라문(婆羅門)과 선인(仙人)들에게 보시하되, 마가타국(摩伽陁國)의 말[斗]로 각각 1말의 음식을 보시하고, 또 나를 위하여 삼보에 공양하면, 그대의 수명이 늘어나고, 제가 아귀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천상세계에 태어나게 될 것이오.”
『불설구면연아귀다라니신주경』
수륙재는 『불설구발염구아귀다라니경(佛說救拔焰口餓鬼陀羅尼經)』과 그 이역경(異譯經)인 『불설구면연아귀다라니신주경(佛說救面然餓鬼陀羅尼神呪經)』에 경전적 근거를 두고 있다. 즉 바라문 선인을 ‘수(水)’로 상징화하고 아귀를 ‘륙(陸)’으로 상징화하여, 수와 륙을 대상으로 공양을 베푸는 의식을 수륙재라 한 것이다. 진관사에서는 수륙재를 개설하게 된 연유를 밝히는 것으로 회향 2일째인 밤재를 시작하고 있다.
수륙재 의례집은 양무제(梁武帝, 재위 502~549)가 꿈에서 육도 사생을 구제하라는 감몽구법(感夢求法)에 따라 의례집을 제작하여 505년(천감 4) 금산사(金山寺)에서 수륙재를 설행한 이후 수정·보완을 거쳐 발간되어 왔다.[3]국립무형유산원(2017), 『아랫녘수륙재』, 서울: 민속원, 16-17쪽. 한국의 수륙의례집은 고려 1090년 최사겸(崔士謙)이 송나라에서 『수륙의문』을 구해 온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수륙의례집은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간행되었는데, 왜란으로 인한 전몰 영령과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국가적·사회적 필요에 의해 16~17세기 무렵에 많이 간행되었다. 수륙의례집은 조선 초기에는 왕실발원으로 간행되다가, 조선 후기에는 민간 사찰의 주도로 판각 내지는 복각판 출간이 성행하였다.[4]국립무형유산원(2017), 『진관사 수륙재』, 서울: 민속원, 26-28쪽.
현재 수륙재와 관련된 의례집은 모두 10종으로 다음과 같다. ①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 ②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 ③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④ 『천지명양수륙의문(天地冥陽水陸儀文)』, ⑤ 『천지명양수륙잡문(天地冥陽水陸雜文)』, ⑥ 『천지명양수륙재의(天地冥陽水陸齋儀)』, ⑦ 『수륙의문촬요(水陸儀文撮要)』, ⑧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删補集)』·『산보범음집(刪補梵音集)』, ⑨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 ⑩ 『자기산보문(仔夔刪補文)』.
표제가 ‘中禮文’인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수암사, 1631)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그 가운데 ①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는 표제(表題)를 따라 ‘중례문(中禮文)’이라고도 부르며, 조선시대에 다른 의례집보다 많이 간행되었다. ②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는 수인(手印) 방법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어 ‘결수문(結手文)’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삼화사는 ①, 진관사는 ②와 ⑧, 아랫녘은 ①과 ②, 인천은 ②와 『석문의범(釋門儀範)』을 토대로 수륙재를 설행하고 있다.
예수재
예수생칠재를 지내는 자는 매월 초하루부터 보름에 걸쳐 수차례 불·법·승 삼보에 공양하고, 시왕단을 개설하고 이름을 써서 육조에 고하고, 천조지부관 등에게 알리고 나서 저승 명부에 기록해둔다. 이러한 공덕으로 죽은 뒤에 바로 안락한 곳에 태어나서, 49일 동안 중음신으로 머무는 일이 없으며, 후손 권속들이 올려주는 재의식도 기다릴 필요 없이 구제된다. 인간의 목숨이 시왕에게 달려있으므로 예수재 도중에 한 재라도 빠뜨리면 그 왕에게 잡혀 일 년 동안 머무르게 된다. 그러하니 너희들은 이를 실천하여 그 공덕을 얻도록 생전에 기원하라.[5]김성순(2022),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 경기: 역사산책, 278쪽.
『불설예수시왕생칠경』
예수재는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6]『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은 본래 이름이 『불설염라왕수기사중역수생칠왕생정토경(佛說閻羅王受記四衆逆修生七往生淨土經)』이며, 줄여서 『예수시왕생칠경』, 『시왕경』이라고도 한다.과 『불설수생경(佛說壽生經)』, 『불설지장보살발심인연시왕경(佛說地藏菩薩發心因緣十王經)』에 경전적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예수재는 시왕 신앙과 불교의 업보설, 중음(中陰) 및 지장보살 신앙에 기반하여 살아생전의 업보를 소멸하기 위해 스스로 참회하고 성찰하기 위한 것이다.[7](사)생전예수재보존회 불교신행문화연구소 편(2017), 『생전예수재 연구』, 서울: 민속원, 11쪽. 봉은사 생전예수재 회향 1일차와 청련사 생전예수재 회향에서는 예수도량건립 의식에서 예수재를 여는 연유를 설명하고 있다.
예수재 의례집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는데, ‘소번재(燒幡齋)’를 지냈다는 『중종실록』 등의 기록[8]『중종실록』 34권, 중종 13년(1518) 7월 17일 갑인 3번째 기사.을 고려하면 16세기 초에 민간에 유통되었던 의례집에 근거한 예수재가 유행하고 있었다.[9]김성순(2022),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 경기: 역사산책, 285쪽. 예수재 의례집은 수륙재 의례집의 경우처럼 왕실의 지원을 받아 간행된 사례는 보이지 않고, 민간의 시주에 의해 간행되었다.[10]성청환(2021), 『생전예수재』, 서울: 서울특별시, 26-28쪽.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송광사, 1574)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예수재 의례집에는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이하 『예수찬요』), 『예수천왕통의(預修薦王通儀)』, 『석문의범(釋門儀範)』이 있다. 현행 예수재 의식의 저본으로 사용되고 있는 『예수찬요』는 16세기 송당 대우(松堂大愚) 스님이 편찬한 것으로 이후 25편본 5종과 31편본 12종의 두 계통으로 나뉜다. 봉은사에서는 1574년 송광사에서 간행된 31편본을 저본으로 하고 있다.
참고문헌
송일기(2021), 『조선사찰본 서지연표』, 완주: 현재기록유산보존연구원
국립무형유산원(2017), 『진관사 수륙재』, 서울: 민속원, 26쪽.
국립무형유산원, 『아랫녘수륙재』, 서울: 민속원, 2017, 16-17쪽.
김성순(2022),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 경기: 역사산책.
(사)생전예수재보존회 불교신행문화연구소 편(2017), 『생전예수재 연구』, 서울: 민속원.
성청환(2021), 『생전예수재』, 서울: 서울특별시.
한지희(2009), 「불교의례서 『중례문』의 편찬고」, 『서지학연구』 제43집, 서울: 한국서지학회.
· 집필자 : 이진선(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일반연구원)
관련주석
- 주석 1 의궤는 의문(儀文), 의례문(儀禮文), 의례집(儀禮集), 의식집(儀式集)이라고도 부른다.
- 주석 2 국립무형유산원(2017), 『진관사 수륙재』, 서울: 민속원, 26쪽.
- 주석 3 국립무형유산원(2017), 『아랫녘수륙재』, 서울: 민속원, 16-17쪽.
- 주석 4 국립무형유산원(2017), 『진관사 수륙재』, 서울: 민속원, 26-28쪽.
- 주석 5 김성순(2022),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 경기: 역사산책, 278쪽.
- 주석 6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은 본래 이름이 『불설염라왕수기사중역수생칠왕생정토경(佛說閻羅王受記四衆逆修生七往生淨土經)』이며, 줄여서 『예수시왕생칠경』, 『시왕경』이라고도 한다.
- 주석 7 (사)생전예수재보존회 불교신행문화연구소 편(2017), 『생전예수재 연구』, 서울: 민속원, 11쪽.
- 주석 8 『중종실록』 34권, 중종 13년(1518) 7월 17일 갑인 3번째 기사.
- 주석 9 김성순(2022),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 경기: 역사산책, 285쪽.
- 주석 10 성청환(2021), 『생전예수재』, 서울: 서울특별시, 26-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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