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육범의 영가에게 베푸는 법식, 수륙재
수륙재는 인도의 시아귀회(施餓鬼會)에서 유래된 불교의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륙재는 중국을 거쳐 고려 때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시대에는 민심을 달래고 구휼하며 망자를 천도하고 재액을 풀기 위해 설행되었다.[1]동해시·(사)국가무형문화재삼화사수륙재보존회(2020), 『삼화사수륙재 가이드북』, 동해: 동해시, 32-33쪽. 조선시대 수륙재는 고려왕실의 원혼들을 위해 시작되었으나 조상을 위한 천도재의 일환으로 간주되어 유교의 상례와 결합되어졌고, 『육전(六典)』에 법제화된 유일한 불교의례로 자리잡았다.[2]김성순(2022),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 경기: 역사산책, 245-247쪽.
수륙재의 명칭은 재를 베푸는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불린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 법회적 성격이 강하면 ‘수륙법회(水陸法會)’, ‘수륙대회(水陸大會)’, ‘무차평등회(無遮平等會)’ 등이라 하고, 영가 천도의 재의적 성격이 강하면, ‘수륙대재(水陸大齋)’, ‘수륙재의(水陸齋儀)’, ‘비재회(悲齋會)’ 등이라 불렀다.[3]국립무형유산원(2017), 『아랫녘수륙재』, 서울: 민속원, 15쪽. 이외에도 재에 초청하는 대상에 따라 ‘수건법계성범천지명양수륙무차평등보도대재승회(修建法界聖凡天地冥陽水陸無遮平等普度大齋勝會)’ 또는 ‘법계성범수륙대재보리도량(法界聖凡水陸大齋菩提道場)’라고 불렀다. 여기서 수륙은 여러 선인(仙人)과 귀신을, 성범은 불·보살·성문·연각의 사성(四聖)과 천도·인도·수라·방생·아귀·지옥의 육범(六凡)을, 천지는 하늘과 땅 즉 성(聖)과 속(俗)을, 명양은 사후의 명계(冥界)와 현생의 양계(陽界)를 뜻한다.[4]동해시·(사)국가무형문화재삼화사수륙재보존회(2020), 『삼화사수륙재 가이드북』, 동해: 동해시, 29쪽. 이와 같이 수륙재는 온 세상의 모든 대상을 초청하여 차별 없이 평등하게 널리 구제하고자 하는 불교의례다.
수륙재의 설행 구조는 사용하는 의식집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기본적으로는 ①도량건립(道場建立), ②소청(召請), ③공양(供養), ④봉송회향(奉送廻向)으로 이루어져 있다.[5]연제영(2015), 「한국 수륙재의 의례와 설행양상」,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40-41쪽 도량건립은 법의 단을 세운다는 의미에서 ‘개계(開啓)’, ‘개건(開建)’, ‘건단(建壇)’ 등으로도 표현된다. 이 단계에서는 수륙재를 열게 된 연유와 목적을 밝히고(수륙연기(水陸緣起)), 삿됨을 물리쳐 도량을 청정하게 하여(쇄수의식(灑水儀式)), 도량의 경계를 정해 성스러운 의례공간으로 전환한다(결계의식(結界儀式)). 아울러 사자를 초청하여 수륙재에 모실 분들에게 법회를 알리고(사자의식(使者儀式)), 이들이 도량에 강림할 수 있도록 오방의 길을 여는(오로의식(五路儀式)) 의를 행한다.
진관사 국행수륙재 밤재, 수륙연기 Ⓒ 진관사, 2019
소청은 상·중·하위의 대상들을 상·중·하단의 위계에 따라 자리에 모셔 차를 올리고 관욕(灌浴)을 하는 의식이다. 공양은 각 단에 모신 대상에게 차례로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다. 상단과 중단에는 공양을 올린다는 뜻에서 ‘권공(勸供)’이라 하고, 하단에는 베푼다는 뜻에서 ‘시식(施食)’이라 한다. 수륙재에서 공양은 동참재자(同參齋者)들이 삼보와 모든 초월적 존재, 사부대중에게 올리는 보시이자, 수륙도량에 모인 존재들이 서로 소통하는 상징적 매개물이므로 단순한 물질적 공양을 넘어선 법공양의 의미를 아우르고 있다.
봉송회향은 수륙도량에 모신 모든 대상을 보내드리며 회향하는 봉송의식으로 하단의 존재를 천도하면서 함께 모인 성속(聖俗)의 모든 존재들이 차별없이 소통하며 진리의 법석(法席)을 펼치는 의미를 지닌다.[6]국립무형유산원(2017), 『진관사수륙재』, 서울: 민속원, 32-34쪽.
수륙재는 크게 무대장치에 해당하는 설단과 장엄, 대사와 노래에 해당하는 범패, 몸짓과 춤에 해당하는 작법의 네 가지로 구성된다. 따라서 수륙재는 회화·공예 등의 미술, 문학과 음악, 무용에 이르기까지 불교 종합예술로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설단은 수륙재에 초청하는 존재들을 모시기 위해 마련하는 단으로 상단·중단·하단의 삼단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필요에 따라 사자단, 오로단 등 여러 단을 설치한다. 장엄은 수륙재가 열리는 도량을 오색의 번(幡), 기(旗), 불화(佛畫), 종이꽃(紙花) 등으로 꾸미는 것이다. 이러한 장엄은 성현을 찬탄하고 도량을 꾸미는 동시에 법회를 수호하며 의례의 세부적인 목적을 실현하는 데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기능을 지닌다.
진관사 국행수륙재의 설단과 장엄, 밤재에서 상단권공을 하는 모습 Ⓒ 진관사, 2019
범패는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불교의식음악으로 경전을 읊는 송경율조에서부터 진언과 다라니를 송주하는 것, 의례문 사설을 낭송하는 안채비소리와 전문 범패승이 부르는 홑소리와 짓소리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매우 넓다. 범패는 지역에 따라 소리가 다르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서울 및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경제범패, 전라도 중심의 완제범패, 충청도 중심의 중제범패, 경상도 중심의 영제범패로 나뉜다. 작법은 춤으로 나타내는 의례로, 크게 양손에 바라를 들고 추는 바라무, 육수장삼과 가사를 입고 추는 착복무(나비춤), 양손에 북채를 잡고 큰 북을 두고 추는 법고무, 팔정도가 적힌 팔각기둥을 차서 넘어뜨리는 과정을 춤으로 나타내는 타주무 등 네 가지로 나뉜다.[7]국립무형유산원(2017), 『진관사수륙재』, 서울: 민속원, 34-51쪽.
생전에 미리 닦는 공덕, 예수재
예수재는 사후에 지낼 불사(佛事)를 살아 있는 동안 미리 공덕을 닦아 전생의 빚을 갚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의례다. 불교의 다른 의례가 망자를 위한 것인 반면 예수재는 살아있는 자신을 위한 자행의례이며, 삶과 죽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불교적 사유가 잘 드러나는 의례다.[8]성청환(2021), 『생전예수재』, 서울: 서울특별시, 9쪽. 우리나라의 경우 예수재는 고려시대나 조선중기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려시대에는 예수재의 근거가 되는 명부 시왕신앙(十王信仰)이 10세기 경부터 보이고, 1246년(고종 33) 『예수시왕생칠경』이 해인사에서 간행되었으나 예수재가 설행되었다는 명확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예수시왕생칠경』, 『불성수생경』 등의 의례집이 간행되어 왔는데, 중기에 이르면 시왕재(十王齋)나 소번재(燒幡齋)의 형태로 예수재가 설행된 것이 확인된다.
예수재의 명칭은 공통적으로 미리 닦는다는 ‘예수(預修)’, 살아 있을 때 지낸다는 ‘생전(生前)’, 사후가 아닌 역(逆)으로 살아 있을 때 지낸다는 ‘역수(逆修)’, 스스로 닦는다는 ’자수(自修)‘ 명부시왕(冥府十王)에서 ‘시왕’의 개념을 사용하여 재의 본질과 의미를 표방하고 있다.
예수재는 공달, 여벌달이라 부르는 윤달에 죽음을 준비하는 일련의 윤달문화와 함께 활발하게 전승되어 왔다. 윤달에 수의를 만드는 일, 영남지역에서 윤달에 치르는 산오구굿, 고창의 윤달 답성놀이 등이 대표적 윤달 풍속이며, 예수재 또한 이러한 윤달문화와 깊이 결합되어 있다. 현대에 이르러 예수재는 윤달만이 아니라 매년 설행되기도 한다.
예수재는 사찰에 따라 하루, 삼칠일, 칠칠재 등 다양한 형식으로 지내고, 회향일 역시 하루나 이틀에 걸쳐 지낸다. 밀양 작약산 예수재는 24시간 연속으로 봉행하였고,[9]승범(2020), 『생전예수재 연구』, 서울: 운주사, 40-41쪽. 봉은사와 청련사에서는 칠칠재 형식으로 지내는데 양력 8월 경 입재를 시작하여 이후 칠일 간격으로 초재에서 육재까지를 지낸 뒤 중양절(음력 9.9)에 마지막 칠재가 봉행되도록 일정을 잡고 있다.
칠칠재 형식의 예수재 구조는 ①법회를 처음 여는 입재, ②동일한 의식을 압축적으로 진행하는 초재에서 육재, ③회향 칠재로 이루어져 있다. 칠재 회향은 설행하는 사찰마다 구성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략 준비의식·본의식·정리의식의 3단계로 구분된다.[10]사찰별 예수재 설행 재차와 구성에 대해서는 승범(2020), 『생전예수재 연구』, 서울: 운주사, 157-162쪽 참조.
• 준비의식: 시련-대령-관욕-신중작법-괘불·불패이운-조전점안-경함이운
• 본의식: 예수도량건립-사자단-상단-중단-고사단-마구단-함합소-시식
• 정리의식: 봉송, 소대의식
명부에 진 빚을 금전(金錢)과 경전(經典)으로 나누어 갚는데, 조전점안에서는 명부에 보낼 금은전을 만들어 저승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바꾸고, 경함이운에서는 점안된 금은전과 경전을 담은 함을 고사단으로 옮기는 의식을 행한다. 본의식은 예수재 의례집에 근거하여 본격적으로 예수재를 시작하는 단계이다. ‘함합소 의식’에서는 금은전과 경전을 명부에 모두 갚았다는 증명서를 읊는다.
봉은사 생전예수재 상단 설단 전체 모습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2022
예수재 설단은 상·중·하 3단을 다시 3단으로 나누어 모두 9단으로 구성된다. 상단은 증명단, 중단은 명부시왕, 하단인 별치단은 부속단이다.[11](사)생전예수재보존회(2017), 『생전예수재 연구』, 민속원, 19-20쪽.
• 상상단: 삼신불단(청청법신불, 원만보신불, 백억화신불)
• 상중단: 지장보살, 무독귀왕, 도명존자
• 상하단: 범왕, 제석천왕, 사천왕
• 중상단: 명부시왕
• 중중단: 하판관, 지등관 등
• 중하단: 시왕안내 권속
• 하단(별치단): 조관단, 사자단, 마구단
범패와 작법은 수륙재와 유사하며, 범패는 크게 안채비소리와 겉채비소리, 화청·회심곡으로 나뉘고, 작법은 바라무(바라춤), 착복무(착복춤), 법고무(법고춤), 타주무(타주춤) 등으로 나뉜다. 장엄 역시 상단에 모시는 괘불을 비롯하여 각종 번, 불패, 지화, 공양물뿐 아니라 금은전, 함합소와 경전을 실은 반야용선 등이 있다.
참고문헌
국립무형유산원(2017), 『진관사 수륙재』, 서울: 민속원.
(사)생전예수재보존회(2017), 『생전예수재 연구』, 서울: 민속원.
성청환(2021), 『생전예수재』, 서울: 서울특별시.
· 집필자 : 이진선(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일반연구원)
관련주석
- 주석 1 동해시·(사)국가무형문화재삼화사수륙재보존회(2020), 『삼화사수륙재 가이드북』, 동해: 동해시, 32-33쪽.
- 주석 2 김성순(2022),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 경기: 역사산책, 245-247쪽.
- 주석 3 국립무형유산원(2017), 『아랫녘수륙재』, 서울: 민속원, 15쪽.
- 주석 4 동해시·(사)국가무형문화재삼화사수륙재보존회(2020), 『삼화사수륙재 가이드북』, 동해: 동해시, 29쪽.
- 주석 5 연제영(2015), 「한국 수륙재의 의례와 설행양상」,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40-41쪽
- 주석 6 국립무형유산원(2017), 『진관사수륙재』, 서울: 민속원, 32-34쪽.
- 주석 7 국립무형유산원(2017), 『진관사수륙재』, 서울: 민속원, 34-51쪽.
- 주석 8 성청환(2021), 『생전예수재』, 서울: 서울특별시, 9쪽.
- 주석 9 승범(2020), 『생전예수재 연구』, 서울: 운주사, 40-41쪽.
- 주석 10 사찰별 예수재 설행 재차와 구성에 대해서는 승범(2020), 『생전예수재 연구』, 서울: 운주사, 157-162쪽 참조.
- 주석 11 (사)생전예수재보존회(2017), 『생전예수재 연구』, 민속원, 19-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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