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인천 수륙재

문화재 명칭인천수륙재(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2004년 지정)
설행 형식
설행 일정매년 양력 6월 중 1일 회향
설행 장소인천광역시 남동구 풀무로 48(약사사)
보존 단인천수륙재보존회
1. 아랫녘수륙재의 역사와 현황 약사사의 역사 대한불교화엄종 총본산 약사사(藥師寺)[1]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약사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5322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월산(滿月山) 자락에 자리한 사찰이다. 고려시대에는 개국사(開國寺), 백인사(百人寺)로도 불렸으며, 조선시대에는 주안사(朱雁寺)라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1656)에는 있고, 『범우고(梵宇攷)』(1799)에는 지금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22년 보월(普月) 스님이 동방만월세계(東方滿月世界)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 부처님을 모시고 약사암(藥師庵)이라 이름하였다. 이후 능해 월승(凌海月昇) 스님이 재중창하여 지금과 같은 대가람을 이루었다.[2]약사사, 『화엄사상의 총본산 만월산 약사사』 팸플릿, 2022 약사사 인천수륙재의 현황 인천수륙재는 고려시대 강화도 마니산 묘통사(妙通寺)의 수륙재[3]『양촌집』 권27, 「묘통사수륙재소(妙通寺水陸齋䟽)」.에서 발원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천수륙재는 고려시대 이후 계승되지 못하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법운 스님과 서운 스님에 의해 그 명맥이 이어졌다. 현재 보유자인 부평 자원사 주지 일초 스님은 1980년부터 6년 동안 인천 해광사 등에서 인천수륙재 의식을 배워 인천수륙재 의식을 전승하고 있다. 인천수륙재는 2004년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해마다 6월이면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위로하는 인천수륙재 시연 행사를 연다. 2023년 6월 11일에 약사사에서 지역발전과 시민 안녕을 기원하는 제19회 인천수륙재가 설행되었다.[4]호일보,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입력 2023.06.12.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5026 2. 절차에 따른 의식 순서 인천수륙재는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 하루에 걸쳐 진행되며, 별의식과 본의식으로 나뉜다. 별의식은 타종을 시작으로 시련, 대령, 관욕, 신중작법, 괘불이운까지고, 본의식은 소청사자의식을 시작으로 소청상위, 소청중위, 소청하위, 시식, 봉송, 회향까지다. 인천수륙재에서는 소청사자 의식에서 오로단 의식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오로단은 설치하지 않지만, 오로단 의식에서는 향수나열 짓소리 범패와 사다라니바라무가 간략히 연행된다. 소청상위 의식은 운수단(도량건립)과 영상작법을 함께 진행하며, 부처님을 향해 예를 올릴 때 백일기도 입재 축원도 함께 올린다. 소청중위 의식은 따로 설단을 설치하지 않고 진행한다. 마지막 회향에서 일초 스님이 산당소리 염불을 하여, 망자들이 무명과 번뇌를 넘어서 환희심 넘치는 고요한 세계로 나아가도록 한다는 점이 인천수륙재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봉송 재차 때에 ‘정토길’을 여는데, 이 길가름 의식은 타지역에서 볼 수 없는 인천수륙재에서만 독특한 의식이다.
설행 순서내용
타종수륙재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모든 대중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수륙재에 동참하도록 이끔
시련청정도량으로 옹호신중 및 영가를 청하여 모시는 의식
대령영가에게 간단한 법식을 베푸는 의식
관욕영가가 다생에 지은 죄의 허물을 씻어주는 의식
신중작법불법의 도량을 잘 수호하기 위해 모든 신중들을 맞아들이는 의식
괘불이운부처님을 도량으로 옮겨 모심
옹호게-찬불게-출산게-염화게-산화락-등상게-사무량게-영산지심-헌좌게-다게-건회소
소청사자사자를 청하여 공양을 대접하고 수륙도량이 열렸음을 시방법계의 사성(四聖)과 육범(六凡)에게 널리 알리는 편지를 주어 심부름을 보냄
소청상위모든 부처님과 보살님, 그리고 모든 성문과 연각 등 사성을 상위에 모시고 공양을 올림
소청중위천장보살, 지지보살, 지장보살 외 8금강이나 명왕과 천신을 대상으로 하는 의식
소청하위하위 대상을 소청하여 죄업을 소멸시키고 극락왕생을 발원함
시식불보살님을 고루 청해 모셔 공덕을 찬탄하며, 고혼과 육도중생들이 불법을 들어 참회하고 발원함으로써 수륙법회를 개설한 목적을 성취함
봉송상중하단 모든 불보살과 신중 그리고 영혼의 위패를 들고 차례로 배송
회향각종 장엄과 영가를 위한 물품을 소대에서 태우고, 참석한 모든 대중이 함께 법식을 나눔
3. 아랫녘수륙재 구성 요소 의례집 현재 인천수륙재에 사용되는 의문은 덕주사본(1573)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를 저본으로 하고, 『석문의범』으로 보충하여 인천수륙재보존회에서 제작한 『인천수륙재의문』이다.[5]인천수륙재보존회, 『인천수륙재의문』, 인천: 인천수륙재보존회, 2003.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의 재차는 「설회인유편(說會因由篇)」으로 시작하여 「봉송육도편(奉送六道篇)」까지 총 35편으로 구성된다. 『석문의범』에서는 여기에 「개벽오방편(開闢五方篇)」과 「안위공양편(安位供養篇)」을 편수로 정하여 총 37편으로 구성된다. 『인천수륙재의문』은 이 37편의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말미에 「경신회향편(敬伸廻向篇)」과 「경신봉송편(敬伸奉送篇)」을 보입하여 구성하였다. 어산단과 범패·작법 인천수륙재 어산단은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인천수륙재 예능보유자 일초 스님을 필두로 범패 전수조교에 지공 스님, 이수자에 동허, 경덕, 혜원, 건봉 스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6]인천수륙재보존회(2022), 『제18회 인천수륙재』 팸플릿 참조. 인천의 범패와 작법무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팔만대장경을 강화 선원사(禪源寺)에서 지천사(支天寺)로 옮길 때 이운의식으로 처음 행해진[7]『조선왕조실록』 태조 7년 무인(1398) 5월 12일(무오) 기사에 “대장(隊長)과 대부(隊副) 2천명으로 하여금 『대장경』의 목판을 (강화 선원사로부터) 지천사(支天寺)로 운반하게 하였다.”라는 기록과 “『대장경』 운반의 의장 행렬, 검교참찬문하부사(檢校參贊門下府事) 유광우(兪光祐)에게 명하여 향로(香爐)를 잡고 따라오게 하고, 오교(五敎)·양종(兩宗)의 승려들에게 불경을 외우게 하며, 의장대(儀仗隊)가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면서 앞에서 인도하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인천 범패와 작법무의 시작으로 본다. 이후 면면히 이어오다가 1928년부터 약사사, 묘향사(妙香寺), 해광사(海光寺) 등지의 법회에서 범패와 작법무가 행해지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8]〈인천광역시(긴급보호)무형문화재 대장(범패와 작법무 2002-02-04 시지정 제10-1호)〉 참조. 인천수륙재의 범패소리는 홋소리 42가지, 짓소리 6가지인데, 다른 지역에 비해 간성이라는 소리를 곁들여 6가지 소리를 내므로 장중한 맛이 있다. 이 밖에도 축원하는 화청이나 회심곡 등이 있다. 독창 또는 합창으로 부르고, 짓소리는 반드시 합창으로 부르되 장부가 지휘한다. 홋소리에 비해 억세고 꿋꿋한 발성법으로 길게 끄는 점이 특징이다.[9]인천무형문화재 제10-2호 범패·작법무 보존회(2022), 『범패·작법무(나비춤)』 팸플릿 참조. 수륙도량의 설단 인천수륙재 설단은 약사사 대웅전 앞마당에 수륙도량을 건립한다. 보통 괘불상단은 야외에 설치되지만, 2022년 인천수륙재에서는 괘불이운 의식이 생략되어 대웅전 상단으로 대신하였다. 중단도 대웅전 지장단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단인 영단은 대웅전 앞마당 우측에 설치된다. 그 우측에는 10대 명부왕번과 봉안재위패, 수륙재위패 등이 안치되고, 좌측에는 삼계만령위(三界萬靈位) 번, 각종 합동 영가 번 등이 안치된다. 사자단은 대웅전 앞마당 좌측에 설치하고, 마고단은 우측에 있는 영단 옆에 거리를 두어 설치한다. 관욕소는 영단 바로 앞쪽에 병풍을 치고 욕실방을 걸어 설치한다. 대웅전 중앙 계단 앞에는 시련소가 설치되어 삼계만령위패 및 각종 영가위패가 안치된다. 어산단 자리는 대웅전을 향해 반대편에 설치되고 그 뒤로 설판재자 및 동참재자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된다. 그 외 수륙도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장엄물과 위패를 태울 소대소가 마련된다. 장엄, 도량과 설단을 꾸미는 불교 의식구 인천수륙재에서는 번(幡), 연(輦), 위패(位牌), 지전(紙錢)으로 수륙도량을 장엄한다. 번의 종류로는 상용번, 오불번, 오여래번 외에 나무대성인로왕보살, 신중, 팔금강, 사보살, 명왕과 천신번 등이 있다. 대웅전 중앙 양쪽 기둥에는 보고번(普告十方諸刹海無盡佛法僧三寶四部衆尼群生類成赴道場 受此共)과 인천수륙재번(以此因緣功德往生西方極樂世界之大發願)이 걸린다. 상용번 ① 천지명양수륙무차평등법계대도량 ② 봉축설판재자선망부모종친등제위영가왕생극락 ③ 봉청금차수륙설판재자현증복수당생정찰지대원 오불번 ①비로자나불, ②부동존여래불, ③아미타불, ④보승여래불, ⑤약사유리광불오여래번 ①다보여래, ②묘색신여래, ③광박신여래, ④이포외여래, ⑤감로왕여래 연(輦)은 제불·보살·신중·영가를 도량으로 모시는 가마로 밑에 바퀴를 달아 사람이 끈다. 위패는 삼계만령지위(三界萬靈之位)와 각 합동위패, 수륙재위패들이 봉안된다. 지전은 금전과 은전으로 대웅전 바깥 양 기둥에 걸어 장엄한다. 4. 전승 인천수륙재보존회 현재 인천수륙재보존회 회장은 화엄종 대본산 약사사 주지 화응 스님이다. 인천수륙재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자원사 주지 일초(一超) 스님과 관련이 있다. 일초 스님은 법운 스님과 운포 스님에게 인천수륙재 전 과정을 전수받아 2004년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5호 인천수륙재 보유자가 되었다. 이후 2021년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면서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10]디지털미추홀구문화대전, http://www.grandculture.net/michuhol/toc/GC04730009 2002년 일초 스님이 설립한 한국불교 종합예술대학(대한불교삼계종 산하)는 1년 과정으로 1학기에 범패와 소리과정을, 2학기에 작법과 무용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11]대한불교삼계종, http://www.sungbulsa.co.kr/sub01/sub03.php 이를 통해 현재까지 300명이 넘는 수료자를 배출하였으며, 인천수륙재는 동허(고경석), 경덕(장혜순), 혜원(이원자) 스님 등이 전승하고 있다.[12]윤소희(2016), 『범패의 역사와 지역별 특징』, 서울: 민속원, 184-185쪽 인천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2014년에 개관한 인천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는 예능보유자 일초 스님이 인천수륙재, 범패와 작법무(나비춤)을 전수하고 있다.[13]인천무형문화재 제10-2호 범패·작법무보존회와 제15호 인천수륙재 보존회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의 주소와 전화 그리고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다. 주소 : 인천광역시 남구 매소홀로 599(문학동)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2층 202호, 전화 : 032) 529-6708, FAX : 032) 529-6709 https://www.incheon.go.kr/culture/CU030107 특히 수륙재에서 빠질 수 없는 작법무인 바라무, 나비무, 법고무와 회심곡(화청), 사물 다루는 법, 상주권공, 각배, 영산작법 등을 기초과정과 전문과정으로 나누어 교육한다. 5. 참고문헌 단행본 인천수륙재보존회, 『인천수륙재의문』, 인천: 인천수륙재보존회, 2003 윤소희, 『범패의 역사와 지역별 특징』, 서울: 민속원, 2016
· 집필자 : 이진선(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일반연구원)
관련주석
  •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약사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5322
  • 주석 2 약사사, 『화엄사상의 총본산 만월산 약사사』 팸플릿, 2022
  • 주석 3 『양촌집』 권27, 「묘통사수륙재소(妙通寺水陸齋䟽)」.
  • 주석 4 호일보,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입력 2023.06.12.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5026
  • 주석 5 인천수륙재보존회, 『인천수륙재의문』, 인천: 인천수륙재보존회, 2003.
  • 주석 6 인천수륙재보존회(2022), 『제18회 인천수륙재』 팸플릿 참조.
  • 주석 7 『조선왕조실록』 태조 7년 무인(1398) 5월 12일(무오) 기사에 “대장(隊長)과 대부(隊副) 2천명으로 하여금 『대장경』의 목판을 (강화 선원사로부터) 지천사(支天寺)로 운반하게 하였다.”라는 기록과 “『대장경』 운반의 의장 행렬, 검교참찬문하부사(檢校參贊門下府事) 유광우(兪光祐)에게 명하여 향로(香爐)를 잡고 따라오게 하고, 오교(五敎)·양종(兩宗)의 승려들에게 불경을 외우게 하며, 의장대(儀仗隊)가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면서 앞에서 인도하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인천 범패와 작법무의 시작으로 본다.
  • 주석 8 〈인천광역시(긴급보호)무형문화재 대장(범패와 작법무 2002-02-04 시지정 제10-1호)〉 참조.
  • 주석 9 인천무형문화재 제10-2호 범패·작법무 보존회(2022), 『범패·작법무(나비춤)』 팸플릿 참조.
  • 주석 10 디지털미추홀구문화대전, http://www.grandculture.net/michuhol/toc/GC04730009
  • 주석 11 대한불교삼계종, http://www.sungbulsa.co.kr/sub01/sub03.php
  • 주석 12 윤소희(2016), 『범패의 역사와 지역별 특징』, 서울: 민속원, 184-185쪽
  • 주석 13 인천무형문화재 제10-2호 범패·작법무보존회와 제15호 인천수륙재 보존회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의 주소와 전화 그리고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다. 주소 : 인천광역시 남구 매소홀로 599(문학동)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2층 202호, 전화 : 032) 529-6708, FAX : 032) 529-6709 https://www.incheon.go.kr/culture/CU0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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