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야외 의식용 불화 사례

티베트 라브랑 사원의 쇄불절 탕카
중국 간쑤성(甘肅省) 해발 3000m의 고원에 자리한 티베트 불교의 라브랑 사원에서는 매년 정월 초하루에 수십 미터에 이르는 대형 불화인 탕카를 나지막한 산비탈에 걸어서 대중에 공개한다. 이때 많은 수의 승려들이 동원되어 탕카를 산 위로 이운한 뒤 아래로 펼치는데, 공덕을 쌓기 위해 곳곳에서 몰려든 수만 명의 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장엄한 광경을 목도하고 예불한다. 이 행사는 불화를 볕에 말린다는 뜻에서 쇄불절(曬佛節)이라 부르는데, 부처님을 뵙는다는 의미의 첨불(瞻佛) 의식이라고도 한다. 독자적인 불교 전통을 가진 티베트에서는 대형 탕카를 야외에 거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서티베트에서는 안거 해제일인 음력 6월 30일부터 7일 동안 행하며 이를 쇼톤(Shoton, 雪頓) 의식이라고 한다.
<그림 1> 티베트 불교 라브랑 사원의 쇄불절 탕카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2023
라브랑 사원의 탕카 이운
<그림 2> 라브랑 사원 첨불전에서 탕카 이운을 준비하는 모습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2023
쇄불절 라브랑 사원의 탕카 이운 과정은 첨불전(瞻佛殿)으로부터 라마승들에 의해 거대한 탕카가 꺼내어지고 황금색 천으로 싼 탱화 두루마리가 승려들의 어깨에 얹혀 사찰 옆 언덕으로 옮겨진다. 이때 장엄한 행렬이 이어지는데, 말을 탄 선발대가 앞장서고 뒤이어 의식을 집전하는 승려들과 탕카를 맨 수십명의 승려들이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찬탄을 받으며 언덕으로 나아간다. 언덕의 괘불대에 도착하면 위쪽과 가장자리에 라마승들이 자리를 잡고 천에 덮힌 두루마리 탱화를 언덕 위에서부터 균형을 맞추며 서서히 펼쳐 내린다. 다 펼쳐진 탕카는 길이 30m, 폭 20m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탕카를 싼 천을 걷어내면 부처님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는데, 의식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예경하며 축복을 기원한다. 이때 또한 승무, 민속춤, 가면극 등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민속 행사와 예불 의식이 펼쳐진다.
<그림 3> 탕카 이운 행렬, 말을 탄 선발대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2023
<그림 4> 탕카 이운 행렬, 탕카를 맨 라마승들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2023
한국 괘불과 티베트 탕카
한국에도 탕카와 같은 큰 규모의 불화인 괘불이 120여 점 전하고 있다. 괘불은 사찰 전각 밖에서 행해지는 야외 의식을 위한 불화이며 높이가 10미터가 넘는 것도 있다. 괘불은 영산재, 수륙재 등의 재회를 열거나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 법당 앞마당의 괘불대에 건다. 남아 있는 괘불의 제작 시기와 경향을 보면, 17세기부터 18세기 전반까지는 영산회상도, 18세기 후반부터는 보살상이 유행하다가 1830년 무렵부터 다시 영산회상도, 아니면 아미타 삼존상이 그려졌다고 한다.[1]윤열수, 『괘불』, 대원사, 1990, pp,10~14.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보살과 10대 제자, 사천왕 등이 좌우 대칭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형태이다. 그런데 이 괘불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한국에 언제 들어온 것일까? 괘불과 비슷한 대형 불화가 전해지는 곳은 티베트, 몽골과 같은 티베트 불교문화권에 속한 곳들이다.[2]장충식, 「조선조 괘불의 의식적 특징」, 『지촌김갑주교수화갑기념사학논총』, 1994, pp.250~252. 라브랑 사원에서 쇄불절에 탕카를 거는 것이 티베트 불교의 오랜 전통을 잘 보여준다. 이에 대해 한국 사찰의 재회 의식에서 괘불을 내걸고 태평소와 나발을 불고 북을 치며 작법무를 하는 것은 중국에도 없는 티베트 방식이라고 하여 유사성을 내세운 연구도 있다.[3]윤소희·강대현, 「티베트 참 의례의 상징체계와 의미- 북인도 따시종 캄빠갈 사원을 통하여」, 『동아시아불교문화』 37, 2019, pp.55~83. 이처럼 중국에도 없는 괘불이 만약 티베트 계통의 불교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으로 볼 수 있을까? 첫 번째 가능성은 티베트 불교의 영향력이 컸던 원 간섭기, 즉 13세기 후반 이후 고려 말의 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존 괘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1622년의 나주 죽림사 괘불이고, 비록 전란이나 화재 등으로 괘불이 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문헌 기록에서도 조선 전기의 괘불은 확인되지 않는다.[4]정명희, 「조선후기 괘불탱의 연구」, 『미술사학연구』 242·243, 2004, pp.159~160. 두 번째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를 통해 티베트 불교 계열인 만주 일대의 대형 불화나 그것을 거는 의식이 알려졌고, 이것이 이후 괘불 제작으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자료적·정황적 근거는 전혀 없다. 이처럼 괘불의 연원과 전래가 미궁에 빠진 상태에서 자생적 발생설도 제기되었다. 17~18세기에 형성된 사동중정형의 사찰 구조는 마당 중심의 신앙 활동 공간으로서 이곳에 많은 이들이 모여서 의식을 행함에 따라 대형 괘불이 고안되었다는 설이 그것이다.[5]정병삼, 「조선후기 사원의 문화적 특성」, 『불교학보』 78, 2017, pp.165~169. 전란 이후 사찰이 중창되고 마당 공간에서 야외 의식이 자주 열리면서 그 필요성에 맞게 괘불이 조성되었다는 것으로 어느 정도 개연성을 갖는다. 만약 티베트에서 한국으로 오는 괘불의 긴 여정이 설득력 있게 밝혀지지 않는다면, 자생적 발생설의 유효기간은 더 연장될 것이다.
<그림 5> 라브랑 사원 탕카 앞 의식단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2023
한국의 괘불 이운 의식과 티베트의 탕카 이운 의식은 비슷하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10m가 넘는 거대한 불화를 야외에 내놓고 의식을 한 경우가 아직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중국 수륙법회는 법당이 아닌 외부 객실에 수륙 내단을 설치하여 초청되는 불보살을 그린 수륙화를 해당하는 위패 앞에 설치한다. 이에 비해 사찰 마당에 괘불을 내어 걸고 그 앞에 단을 차리는 한국 방식은 티베트 방식이지 중국 방식이 아니다. 한국의 괘불 의식이 티베트의 쇄불 의식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한국의 수륙재는 법당의 상단과 달리 야외 수륙 도량에 괘불을 모심으로써 비로소 상단이 형성되게 된다. 이는 괘불 이운(掛佛移運) 의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운 의식은 괘불을 법당 앞마당에 내걸어 놓고 일정한 절차에 따라 의식을 행하기도 하나, 함에 넣어진 괘불을 밖으로 옮기는 절차부터 행함이 원칙이다. 괘불은 보통 그 길이가 10미터에는 족히 이르기에 대체로 대웅전 불단 뒤 등에 보관하다가 야단법석이 차려질 경우 의식 도량에 설치된 괘불대까지 사찰 대중의 이운 행사를 거쳐 괘불대에 걸어 상단을 형성한다. 수륙재의 상단은 영산단으로 야외에 괘불 이운로를 통해 괘불도를 모신 후에 영산회상의 불보살과 일체 성현을 청하여 염불로서 찬탄하고 헌공하는 의식으로 도량 전체가 영산회를 이루도록 하는 영산작법을 행하게 된다. 이러한 괘불 앞에서 찬불 의식과 범패 그리고 의식 무용은 성대한 야외법회로서 종교적 공동 축제의 성격을 지니는데, 이 점은 바로 티베트 탕카 이운 의식과 매우 닮아있음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윤열수(1990), 빛깔 있는 책들 『괘불』, 대원사. 윤소희(2022), 「21세기 불교의례를 위한 세계불학」, 『세계불학』1, 서울: 세계불학원. 김호산(2005), 「티베트 탕카의 시대구분」, 『온지논총』 12, 서울: 온지학회. 윤소희·강대현(2019), 「티베트 참 의례의 상징체계와 의미- 북인도 따시종 캄빠갈 사원을 통하여」, 『동아시아불교문화』 37,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김경미(2013), 「조선 전반기 티베트계 명양식 불교미술의 영향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연제영(2015), 「한국 수륙재의 의례와 설행양상」,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이용애(2018), 「한국불교 재의식의 설행양상과 불화」,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최명철(2018), 「수륙재의 설행양상에 대한 비교 연구」, 위덕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장충식(1994), 「조선조 괘불의 의식적 특징」, 『사학논총』, 지촌김갑주교수화갑기념사학논총간행위원회. 정명희(2004), 「조선후기 괘불탱의 연구」, 『미술사학연구』 242·243, 한국미술사학회. 정병삼(2017), 「조선후기 사원의 문화적 특성」, 『불교학보』 78,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조송식(2009), 「티베트 탕카의 기원과 역사적 전개」, 『중국인문과학』 42, 광주: 중국인문학회.
· 집필자 : 김용태(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HK교수), 박소령(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관련주석
  • 주석 1 윤열수, 『괘불』, 대원사, 1990, pp,10~14.
  • 주석 2 장충식, 「조선조 괘불의 의식적 특징」, 『지촌김갑주교수화갑기념사학논총』, 1994, pp.250~252.
  • 주석 3 윤소희·강대현, 「티베트 참 의례의 상징체계와 의미- 북인도 따시종 캄빠갈 사원을 통하여」, 『동아시아불교문화』 37, 2019, pp.55~83.
  • 주석 4 정명희, 「조선후기 괘불탱의 연구」, 『미술사학연구』 242·243, 2004, pp.159~160.
  • 주석 5 정병삼, 「조선후기 사원의 문화적 특성」, 『불교학보』 78, 2017, pp.165~169.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