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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괘불

진정성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인류의 다양한 기억을 보호하고 세계인이 공유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 사업에서 정의하는 기록유산이란 정보를 담고 있는 기록과 그 기록을 전달하는 매개체를 말한다(유네스코 2002). 문자로 기록된 것 외에도 이미지, 기호, 음악, 영상 등으로 기록된 자료를 포함한다.[1] 세계기록유산의 정의와 등재 주요기준 가운데 진정성과 독창성, 대체불가성의 개념은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의 제시를 따랐다. 세계기록유산의 관점에서 괘불은 여러 세기를 거치며 전해진 한국불교 사상과 의례 문화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기록이자 매개체이다. 세계기록유산의 중요한 가치 기준 중 하나인 진정성은 ‘유산의 본질과 그 유래가 정확히 밝혀진 진품’임을 의미한다. 괘불에 기록된 ‘화기(畵記)’는 괘불의 본질과 유래를 정확히 밝혀주는 진정성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화기는 불교경전을 도상(圖像)으로 그려놓은 화면(畫面) 자체에 기록되어 있으며,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자와 후원자 등 상세한 제작 정보를 기록하고 어떤 경전에 나오는 어떤 부처님과 보살님을 그렸는지를 기록하기도 한다. 거대한 부처님 그림인 괘불은 필연적으로 ‘중수(重修)’라는 유지 관리 행위가 반복될 수 밖에 없었는데, 그에 대한 기록 역시 이 화기에 계속해서 추가하였다. 후에 덧붙인 중수 기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누적되어 기록유산으로서의 진정성은 가치를 더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림 1〉 구례 화엄사 괘불도 화기 ⓒ 화엄사
독창성과 대체 불가성 세계기록유산에서 독창성과 대체 불가성은 ‘특정 시대 및 지역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손실 혹은 훼손될 경우 인류에 심각한 손실을 초래할 만큼 중요한 유산’인가에 대한 가치 기준이다. 괘불의 기록유산으로서 독창성과 대체 불가성은 괘불이 조선후기 지역사회에서 열리는 대규모 불교 의식에 사용되었던 특수 목적의 종교 그림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괘불이 사용된 대표적 불교 의식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영산재와 국가무형문화재 수륙재이다. 영산재와 수륙재 모두 다수의 대중이 참여하여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고 그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불교식 천도(薦度) 의례이지만, 수륙재는 특히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공익적 성격과 대중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불교 의례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불교 의례에서 괘불은 일정한 의식 절차를 거쳐 의례가 치러지는 중심 공간에 내걸렸다. 그리고 화기에 제작 정보를 상세히 기록하며 의식에 참여한 인물과 그들의 역할을 기록하고, 또 언제 어떤 의식을 지냈는지 기록하기도 하였다. 괘불 제작 동향은 괘불이 걸린 불교 의식의 추이를 보여주는 지표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현재의 시군구 단위를 기준으로 한 지역에 평균 1.5점의 괘불이 남아 있다. 하나의 사찰에 괘불이 한 점 이상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문 일이며, 괘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해당 사찰에서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대규모 법회나 의식을 치러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남아 있는 괘불의 제작 시기는 17세기 25점, 18세기 전반 23점, 18세기 후반 16점, 19세기 전반 5점, 19세기 후반 16점, 20세기 38점으로 확인된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제작된 괘불 54점 중 33점이 서울·경기 지역에서 제작된 반면 이전 시기에는 69점 중 9점만이 서울·경기 지역에서 제작된 것을 볼 때, 괘불을 걸고 설행하는 불교 의식이 남쪽에서 서울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괘불 제작 동향을 통해 조선후기 불교 의식 설행의 한 단면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림 2〉 영산재 풍경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괘불과 같은 불화는 세계적으로 극히 드물다. 대형 불화라는 점만 보면 티벳불교의 탕카와 일본의 열반도와 비교해볼 수 있고, 야외 의식용 그림으로 보면 티벳불교 탕카의 성격과 유사하다. 티벳불교에서는 쇼뙨(༄༅།ཞོ་སྟོན།, Sho Dun, 雪頓節)에 커다란 불화를 야외에 내건다. 드레풍사원(Drepung Monastery, 哲蚌寺)과 세라사원(Sera Monastery, 色拉寺), 츠르푸사원(Tsurphu Monastery, 楚布寺) 등의 탕카(thangka, 唐卡)가 널리 알려져 있다. 쇼뙨에 내건 대형 탕카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탕카 이운 행렬과 탕카 앞에서 법회를 하는 형식이 괘불과 비슷하여 향후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티벳불교의 탕카는 괘불이 ‘화기’라는 독특한 기록문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어 기록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조명할 수 있는 것에 비해, 특별히 기록문화유산으로 평가할 요소가 현재까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림 3〉 드레풍사원(Drepung Monastery, 哲蚌寺)의 쇼뙨(༄༅།ཞོ་སྟོན།, Sho Dun, 雪頓節), 티벳 라싸
괘불의 문화사적 의미 조선시대 괘불을 제작하고 헌괘한 법회의 설행은 왕실의 안녕, 영가의 천도, 극락왕생과 같은 조선 사회가 추구한 공통 가치를 실현한 장으로서 의미가 크다. 괘불은 종교의 대중 위로 기능을 넓은 공간에 확장한 종교화의 특별한 표본이라 할 수 있으며, 여러 세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전통이 유지되는 독특한 종교 의례의 총체로서 완전성까지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문맹률이 높았던 시절, 부처의 세계를 시각화한 비문자 경전과 일련의 체계를 갖춘 불교 의식으로 대중을 위로한 시대상의 기록이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괘불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불화이면서, 불교 의례에 대한 기록유산의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국립문화재연구소, 『영산재』, 민속원, 2003. 김경미(2022), 「영산재 의식집의 어산을 통해 본 경상도 괘불」, 『한국 괘불의 미』1, 국립문화재연구원.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워크북』, 2021. Heisoo Shin(2021), “Voices of the ‘Comfort Women’: The Power Politics Surrounding the UNESCO Documentary Heritage”, The Asia-Pacific Journal, vol. 19(5), International Committee for Joint Nomination of the Documents on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to UNESCO Memory of the World International Register, 2021. 凡建秋(2008), 「藏傳唐卡繪畫風格研究」, 中央美術學院 박사학위논문.
· 집필자 : 도윤수(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전문연구원), 배송이(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일반연구원)
관련주석
  • 주석 1 세계기록유산의 정의와 등재 주요기준 가운데 진정성과 독창성, 대체불가성의 개념은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의 제시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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