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幀 |
|---|---|
| 제작시기 | 1961 |
| 수량 | 1 |
| 규격 | 1,060.0×630.0 |
| 재질 | 면 |
| 관련유물 | 괘불함 1점, 복장물 1괄 |
| 소재지역 | 전남 순천시 |
순천 송광사 괘불도는 세로 1,060.0㎝, 가로 630.0㎝의 바탕에 부처님의 설법회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중앙 붉은색 직사각형 2곳에 먹으로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국태민안과 남북통일 성취를 발원하면서 단기 4294년(1961) 6월 25일 전라남도 승주군 송광면 송광사 괘불탱을 조성, 봉안한다고 기록하였다. 증명, 회주, 송주, 지전, 금어편수, 부편수, 화원, 도감, 주지, 총무, 재무, 교무 등 제작과 의식을 위해 소임을 맡았던 인물 명단을 적고, 당시 대중 백여 명이라고 기록하였다. 감독은 기산 박석진(綺山朴錫珍), 회주는 취봉 임창섭(翠峯林昌燮) 스님이 맡았다. 제작은 퇴운 김일섭(退耘金日燮) 스님이 금어 편수로 주도하고, 인봉 최장원(麟峯崔長遠) 스님이 부편수를 맡았다. 참여한 화원은 구봉 송홍선(龜峯宋弘善) 등 11명이다. 당시 절의 주지는 금당 최재순(錦堂崔在順)이었다. 총무, 재무, 교무 등은 거의 처음으로 등장하는 소임으로, 변화된 종무 행정 조직을 보여준다. 시주질에 순천시 장천동, 저전동, 중앙동, 남내동 등에 사는 신도 10명과 보성군 벌교읍 송광사 포교당 신도 일동을 기록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으로 1965년 간행한『송광사지』에 실린 기사가 있다. 송광사에 1677년 제작한 괘불도가 있었다고 전하지만 1951년 전쟁 때 화재로 소실되어, 10년 후인 1961년 여름 사부대중이 뜻을 모아 제작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중앙의 본존 부처님을 중심으로 관음보살을 비롯한 보살 4위, 가섭존자, 아난존자, 사천왕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형식이다. 본존불은 오른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연화 족좌에 올라 선 모습이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 앞에 두고, 오른손은 펴서 아래로 내렸다. 머리의 나발은 윤곽선으로만 묘사하고, 솟아오른 육계에 구슬모양 정상계주를 표현하였다. 중앙계주는 머리 중앙에 초승달 모양으로 나타냈다. 관음보살과 제자 외의 존상에서 존명을 나타내는 특징적인 도상이 확인되지 않는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과 복장물이 남아 있다. 복장물은 붉은 글씨로 쓴 진언, 오채번, 1959년 발행환 100환짜리 동전, 볍씨, 좁쌀 등으로 구성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6 송광사 본말사편(상). (사)성보문화재연구원, 1998.
손현정(2021. 10. 01.) , 「순천 송광사 대웅전 마당에서 만난 괘불」, 『여수넷 통뉴스』 제32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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