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시기 | 1942 |
|---|---|
| 수량 | 1 |
| 규격 | 605.0×332.0 |
| 재질 | 면 |
| 관련유물 | 괘불함(근대) 1점 |
| 소재지역 | 서울 동대문구 |
서울 청량사 괘불도는 세로 605.0㎝, 가로 332.0㎝의 바탕에 부처님의 설법 장면을 그린 구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경기부 청량리 천장산 청량사라고 제작한 절의 이름을 분명하게 밝히고, 주지 비구니 자영(慈英)과 자연(慈演) 등 7명을 기록하였다. 시주자 명단인 시주질은 2곳에 나누어 기록하였는데, 무자생 남성 이씨에 대한 축원, 신도 여성 갑술생 현씨 묘연화를 적고, 1942년(소화17) 11월 18일 청량사에 봉안한다고 기록하였다. 또 다른 시주질에는 무인생 임주현 등 68명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괘불도를 직접 그린 인물은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없지만, 1924년에 제작된 예산 향천사 괘불도나 1928년에 제작된 서울 행촌포교당 괘불도의 도상과 양식에서 친연성이 확인된다. 향천사 괘불도는 마곡사 화파를 이룬 금호 약효(錦湖若效)의 거의 마지막 작품이고, 행촌포교당 괘불도는 약효의 제자 향암 성엽(香庵性曄)의 작품이다. 마곡사 화파 계통의 화가가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과 보살로 구성된 삼존을 중심으로 상단에 가섭존자, 아난존자 등 제자 6위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형식이다. 본존 부처님은 오른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연화 족좌에 올라 선 모습이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첫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이 닿을 듯 손가락을 구부렸다. 오른손은 펴서 아래로 길게 내렸다. 머리의 나발은 윤곽선으로 묘사하고, 뾰족하게 솟아오른 육계에 구슬모양 정상계주를 표현하였다. 중앙계주는 머리 중앙에 초승달 모양으로 나타냈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근대에 제작한 길이 382.4㎝, 높이 42.7㎝의 목제함이다. 이외 괘불도와 같은 시기에 제작되지는 않았지만, 야외 의식에서 괘불도와 함께 사용되는 조선후기 불연 1기와 주렴 등의 장식 17점, 번(幡) 1점이 전한다. 번에는 나무인로왕보살이라고 금색 실로 자수해놓았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35 조계사 직할사암편(중),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5.
『서울의 사찰불화』Ⅱ, 서울역사박물관, 2008.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서울특별시,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