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명칭 | 서울 진관사 소장 괘불도 및 괘불함 |
|---|---|
| 제작시기 | 1935 |
| 수량 | 1 |
| 규격 | 768.0×457.0 |
| 관련유물 | 괘불함(1935) 1점, 괘불석주 및 괘불대(근대~현대) |
| 소재지역 | 서울 은평구 |
서울 삼각사 괘불도는 세로 768.0㎝, 가로 457.0㎝의 바탕에 부처님과 보살, 제자를 그린 오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삼청동에 있던 삼각사 괘불도로 제작, 봉안되었으나, 1960년대 후반 서울 진관사에 기증되어 1977년부터 진관사 수륙재(국가무형문화재)에 사용되었다.
하단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연도, 제작자, 시주자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불기 2962년 을해 4월 초8일이라고 기록하여, 1935년 4월 초파일을 맞아 제작된 괘불도임을 알 수 있다. 불사 감독은 만공 월면(滿空月面)과 초월(初月), 회주는 혜운 경상(慧雲慶相) 스님이 맡았다. 제작은 보응 문성(普應文性) 스님을 편수로 금어 퇴운 일섭(退耘日燮), 송파 영순(松坡永順), 우일(又一), 병희(秉熙)가 담당하였다. 회주 혜운 경상 스님은 화주로도 기록되어 있어, 절의 법회나 재회를 주관하면서 괘불도 제작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시주질에 청신사, 청신녀와 그 일가족 95명이 기록되었는데, 청신녀 갑신생 민성불심과 장남 전형필 부부, 손자, 손녀 등 간송 전형필 일가의 시주가 눈에 띈다. 화기 끝에 덧붙인 기록에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사는 건명(乾明) 계축생 김용옥과 곤명(坤命) 정사생 이선덕화 일가가 괘불도를 시주하였다고 밝혀, 진관사 소장 경위를 알 수 있다. 괘불도 뒷면에는 붉은 글씨로 복장과 점안을 의미하는 다라니와 범자를 적어놓았다.
괘불도 조성 관련 기록은 퇴운 일섭(1900~1975)의 작업 일지인『연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퇴운이 36세 되던 1935년, 혜운 스님의 의뢰로 김보응, 지송파, 김우일, 안병문과 3월 3일부터 4월 6일까지 서울 안양암에서 삼청동 삼각사 괘불도를 조성하였다고 기록하여, 본래 삼각사 괘불도로 제작되었으며, 제작에 한 달가량 소요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연보』의 기록은 화기와 대체로 일치하지만, 화기에 기록된 송파 영순과 병희는 송파 정순(松坡淨順)과 안병문을 잘못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연꽃 위에 정면을 바라보고 선 부처님과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선 보살 2위를 그리고, 상단에 가섭존자, 아난존자를 배치한 단순한 구도이다. 중앙의 본존 부처님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왼손은 배 앞에 두고, 오른손은 가슴 앞까지 들어올렸다. 양옆의 보살은 본존을 향해 서서 합장한 모습으로만 그려져, 존명을 알 수 있는 특징적인 도상이 생략되는 19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경향과 일치한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길이 503.2㎝, 높이 43.4㎝의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 밑면에 먹으로 1935년 4월 삼각산 삼각사에 봉안하였다고 기록하고, 시주자 30명과 화주 혜운을 기록하였다.
참고문헌
「2021 제4차 근대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 회의록」, 문화재청, 2021.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국가등록문화재 서울 진관사 소장 괘불도 및 괘불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