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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호국사 괘불도

한자표기 掛佛幀
제작시기 1932
수량 1
규격 940.0×630.0
재질
소재지역 경남 진주시
진주 호국사 괘불도는 세로 940.0㎝, 630.0㎝의 바탕에 부처님과 협시보살 구성의 삼존과 가섭존자, 아난존자를 그린 오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좌우,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불기 2959년 임신(1932) 3월 20일 경남 진주군 내성동 월영산 호국사에서 괘불탱을 그려 봉안한다고 기록하였다. 연화질에 증명, 금어, 지전, 송주, 종두, 화주, 주지 등 제작과 의식에 소임을 맡은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호월 치경(皓月致慶), 보담 보하(寶潭寶荷), 영암 정협(影庵廷協), 원감 지구(元鑑地球) 4명의 스님이 맡았다. 제작에는 보응 문성(普應文性), 송파 정순(松坡淨順), 황성열(黃性烈), 김우일(金又一) 4명이 참여하였다. 수화승 보응 문성은 마곡사 화파를 형성한 금호 약효(錦湖若效)의 제자로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활약하였다. 1892년에는 합천 해인사 괘불도 제작에 참여하였다. 화주는 당시 주지였던 월하 세추(月荷世樞)로 기록되어 있어, 주지 스님이 시주를 모아 제작을 주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러 사람들에게 시주를 권하여 비용을 모아온 인권 화주는 이보현화 등 재가 신도 3명이다. 시주질에는 가장 큰 비용을 낸 김대성화를 설판 대시주로 따로 기록하고, 시주에 참여한 인물 17명의 이름을 성씨, 불교식 이름인 법명 순으로 기재하였다. 연꽃 위에 정면을 바라보고 선 부처님과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선 보살 2위를 그리고, 상단에 가섭존자, 아난존자를 배치한 단순한 형식이다. 중앙의 본존 부처님은 오른 어깨를 살짝 가린 변형된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쳤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왼손은 배 앞에 두고, 오른손은 가슴 앞까지 들어올렸다. 두 손 모두 첫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이 닿을 듯 손가락을 구부렸다. 양 옆의 보살은 화불이 봉안된 보관이나 손에 든 지물 등 보살의 명칭을 특정할 수 있는 특징적인 도상 표현 없이, 같은 모습으로 그렸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5 해인사 본말사편(하), (사)성보문화재연구원, 1997.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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