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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화사 괘불도

지정명칭 대구 동화사 괘불도
제작시기 1924
수량 1
규격 987.0×477.0
재질
관련유물 괘불함(1924) 1점, 괘불지주(조선후기) 4점
소재지역 대구 동구
대구 동화사 괘불도는 세로 987.0㎝, 가로 477.0㎝의 바탕에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는 노사나불을 그린 독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연화질, 시주질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세존응화 2951년 갑자(1924) 음력 4월 초1일 시작하여 초10일 공양을 올리고, 25일 오전 10시 점필함에 본 절 대웅전에 봉안한다고 기록하고, 연화질에 증명, 회주, 송주, 지전, 금어, 편수 등 제작과 의식을 담당하였던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월제 정혜(月齊定慧), 회주는 응화 순주(應化順周) 스님이 맡았다. 정혜 스님은 주지로도 기록되어 있어, 절의 주지로서 감독까지 맡았음을 알 수 있다. 제작은 대우 봉민(大愚奉珉)과 퇴운 원일(退雲圓日)을 비롯한 화승 8명이 담당하였다. 화주에 ‘니(尼)’라는 글자를 붙여 적고, ‘회진(會眞)’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비구니 회진이 화주였던 것으로 보인다. 시주질에는 여성 시주자인 청신녀 최무근행 일가족을 비롯하여 시주자 180명 이상을 기록하였다. 화기 끝에 정혜 스님이 쓴 발원문이 붙어 있다. 발원문에는 지금 이 수월도량 공화불사재 인연과 공덕으로 극락왕생 등을 바란다고 적었다. 괘불도 뒷면에는 경성부 와룡동에 거주하는 여성 경오생 이득심이 단독으로 시주하여 1924년 6월 초8일 괘불궤를 조성하였다고 기록하였다. 17~18세기에 성행한 노사나 괘불 형식을 계승한 20세기의 거의 유일한 노사나 괘불 도상 불화이다. 1704년 제작된 영천 수도사 괘불도와 유사하여, 모본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노사나불은 연지에 피어난 연꽃 위에 서서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양 어깨를 가린 법의를 걸치고, 관장식 끝에 칠불이 봉안된 보관을 머리에 썼다. 단순한 독존 형식이지만, 뒤에 그려진 광배, 서기(瑞氣), 구름 등 배경은 복잡하게 구성하였다. 구불구불 물결모양으로 뻗어나가는 서기가 인상적인 불화이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과 괘불지주 4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길이 527.0㎝, 높이 56.0㎝ 목제함으로 1924년 괘불도와 함께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괘불지주는 괘불도 설치를 위해 세운 높이 126.0㎝의 석제지주이다. 참고문헌 『동화사 본말사 불화 조사보고서』전국 사찰소장 불화 조사보고 제5집,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1.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2014 문화재위원회 회의록』, 문화재청, 2014.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국가등록문화재 대구 동화사 괘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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