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명칭 | 예산 향천사 괘불도 및 오여래·사보살·팔금강도 |
|---|---|
| 제작시기 | 1924 |
| 수량 | 1 |
| 규격 | 화면 567.3×313.8 |
| 재질 | 면 |
| 관련유물 | 복장낭 1점 및 복장물 1괄(1924), 도량장엄번(1924) 17점, 『향천사사적기록』(1927) |
| 소재지역 | 충남 예산군 |
예산 향천사 괘불도는 세로 567.0㎝, 가로 313.8㎝의 화면에 아미타불의 설법회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좌우 모서리 2곳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불기 2951년 갑자(1924) 2월 27일 새로 그려 점안하고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면 향천리 금오산 향천사에 봉안하였다고 밝혔다. 연화질 항목에는 증명, 회주, 병법, 송주, 지전, 금어 등 제작과 의식을 담당했던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향덕 수수(香德永守), 회주는 금계 동영(錦溪東榮) 스님이 맡았다. 제작은 금호 약효(錦湖若效)를 수화승으로, 동성 정연(東性定淵) 등 6명의 제자들이 담당하였다. 약효는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계룡산 화파를 이룬 화승이다. 이 괘불도는 약효의 마지막 작품에 해당한다. 시주질에는 충청남도 예산에 사는 남성 을축생 김진섭 부부와 아들 김성권, 김흥권 부부, 손자 등 일가족 12명과 청신녀 최씨와 손자 3명의 시주로 조성되었음을 기록하였다. 끝에 모두 극락국에 태어나 무량수불을 뵙고 다함께 불도를 이루기를 바란다는 회향게를 적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은 1927년 7월 편찬된 「향천사 사적기록(香泉寺史蹟記錄)」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25년에 길이 30여 척, 넓이 22척의 큰 괘불탱과 팔금강, 사보살, 오여래를 조성하였는데 금호 약효의 친적(親蹟)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화기에 1924년 갑자년에 조성했다고 되어 있어,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0세기 아미타 괘불 형식 가운데 가장 복잡한 구성이다. 아미타삼존을 중심으로 가섭존자, 아난존자를 비롯한 제자 6위, 천인 4위, 동자 4위, 시방불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다. 아미타삼존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음보살, 오른쪽에 세지보살을 배치한 구성이다. 아미타불은 왼손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배 앞에 두고, 오른손은 펴서 아래로 내렸는데, 손발을 신체에 비해 작게 그렸다. 머리의 육계는 뾰족하게 솟아오른 모습이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복장낭 1점과 도량장엄번 17점이 전한다. 복장낭은 상단 중앙에 매달려 있었는데 안에서 조성 원문, 다라니, 사리, 씨앗 등이 발견되었다. 도량장엄번은 의식 거행에 앞서, 장소를 수호하는 기능을 하는 깃발 형태의 불화이다. 1924년 괘불도와 함께 제작된 것으로, 오여래도, 사보살도, 팔금강도 구성의 온전한 세트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사찰문화재』, 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충청남도, 대전광역시,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04.
『2014 문화재위원회 회의록』, 문화재청, 2014.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국가등록문화재 예산 향천사 괘불도 및 오여래, 사보살, 팔금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