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명칭 | 안양암 아미타괘불도 |
|---|---|
| 제작시기 | 1919 |
| 수량 | 1 |
| 규격 | 690.0×324.0 |
| 재질 | 비단 |
| 관련유물 | 괘불함(조선말~근대) 1점 |
| 소재지역 | 서울 종로구 |
서울 안양암 괘불도는 세로 690.0㎝, 가로 324.0㎝의 바탕에 아미타삼존, 가섭존자, 아난존자, 문수동자, 보현동자를 그린 칠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4곳에 불단에 모시는 위패(牌)모양으로 황색 직사각형을 만들고, 먹으로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을 알 수 있는 화기를 남겼다. 세존응화 2946년(1919) 7월 15일이라고 적고, 대시주 항목에 청신녀 무오생 이씨 등 11명을 기록하였다. 일제강점기임에도 일본 연호 대신 불기를 사용하여 제작 일자를 표기하였다. 시주자는 청신녀, 건명, 신녀, 장남, 딸, 사위, 아이 등으로 구분하여 생년, 성씨, 불교식 이름인 법명 순으로 기재하였다. 그리고 장수와 복을 바라는 마음을 산과 강에 비유한 게구(偈句)를 적었다. 또, 추원문(追遠文)이라고 쓰고 대각심이라는 법명의 이씨 여성이 돌아가신 시부모 부부 등의 영가가 구품연못에 나기를 발원한다고 적었다. 연화질 항목에는 증명, 금어, 주지, 화주, 도감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참여한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경운 원기(擎雲元奇), 하산(何山), 청호 학밀(晴湖學密)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고산 축연(古山竺演) 스님이 단독으로 완성하였다. 고산 축연은 금강산 화승으로 서양화법을 적극 수용한 불화기법을 사용한 근대 화승이다. 화주 김선정화가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 형제, 조카, 시부모의 영가 천도를 발원한다고 적고, 경성 동문 밖 창신동 안양암 봉안이라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1919년 7월 15일 안양암에 봉안한 괘불도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아미타불, 관음보살, 세지보살 구성의 아미타삼존에 가섭존자, 아난존자, 문수동자, 보현동자가 등장하는 일반적인 구성이지만, 문수동자와 보현동자를 아주 작게 그리고 코끼리와 사자의 위치를 반대로 그린 독특한 도상이다. 중앙의 아미타불은 오른 어깨를 살짝 가린 법의를 입었다. 왼손은 가슴 앞에서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 대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여 내렸는데 몸에 밀착시켜 내린 오른팔이 길어, 어색해 보인다. 관음보살은 백색의 옷을 걸친 모습으로 그렸다. 강한 음영법 사용이 특징적인 불화이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이 대웅전에 남아 있다. 조선말~근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409.3㎝, 높이 49.8㎝의 목제함이다.
참고문헌
『서울의 사찰불화』Ⅰ, 서울역사박물관, 2007.
『서울의 문화재』증보판 5 불교문화재(1),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1.
『한국의 사찰문화재』 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서울특별시,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안양암 아미타괘불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검색, ‘서울 안양암 아미타괘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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