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시기 | 1919 |
|---|---|
| 수량 | 1 |
| 규격 | 514.0×300.3 |
| 재질 | 면 |
| 소재지역 | 서울 마포구 |
서울 극락선원 괘불도는 세로 514.0㎝, 가로 300.3㎝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설법회 장면을 그린 구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제작 시기,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을 알 수 있는 화기를 남겼다. 봉안 장소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서울 극락선원에서 전해져 극락선원 괘불도로 불린다. 1919년(대정8) 5월 30일 점안하였다고 기록하고, 불사 관련 사무를 처리하는 기구를 뜻하는 ‘연화소’ 항목에 증명, 주지, 포교사, 지전, 송주, 편수, 금어, 종두, 화주 등 제작과 의식을 맡았던 인물을 기록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되어 일본 연호를 사용하였다. 당시, 감독은 철우 대후(鐵牛大吼), 주지는 송암 긍수(松庵亘壽) 스님이었다. 철우 대후는 화주로도 기록되어 있어, 불사를 기획하고 주도한 인물로 보인다. 제작은 금호 약효(錦湖若效)를 편수로, 향암 성엽(香庵性曄) 스님이 담당하였다. 약효는 공주 마곡사에 거주하면서 계룡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으로, 1924년 입적 전까지 50여 년간 100여 점의 불화를 남기고 130여 명에 이르는 제자를 배출하여 계룡산 화파라 불리는 근대 불화의 한 유파를 형성하였다. 약효가 그린 괘불도는 범어사(1905), 향천사(1924)에 남아 있다. 시주질에 건명(乾命) 신미생 김용하를 비롯하여 32명의 명단을 기록하였다. 남자는 건명, 신사, 여자는 곤명, 신녀 등으로 표시하고, 생년, 성씨, 이름 또는 불교식 이름인 법명 등을 기재하였다. 또 큰 아들, 둘째 아들, 셋째 아들, 어린이, 아들의 부인 등으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화면이 꽉 차도록 석가모니삼존을 부각하여 그리고, 상단에 가섭존자, 아난존자, 동자, 동녀를 배치한 간략한 구도이다. 석가모니 삼존은 정면을 향해 연꽃 위에 선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배치한 구성이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 형식 법의를 걸치고, 뒤에는 연잎형 머리 광배와 몸 광배를 갖추었다. 광배 좌우에 나이든 스님 모습의 가섭존자, 젊은 스님 모습의 아난존자를 그리고, 부처님께 과일과 차를 공양하는 동자, 동녀를 그렸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40 보유편,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7.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