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幀 |
|---|---|
| 지정명칭 | 미타사 아미타여래괘불도 |
| 제작시기 | 1915 |
| 수량 | 1 |
| 규격 | 584.0×340.0 |
| 재질 | 면 |
| 관련유물 | 복장낭(1915) 2점, 괘불함(근대) 1점, 도량장엄번(1917) 11점, 『종남산미타사약지』(1943) |
| 소재지역 | 서울 성동구 |
서울 미타사 괘불도는 세로 584.0㎝, 가로 340.0㎝의 바탕에 아미타삼존, 가섭존자, 아난존자, 문수동자, 보현동자를 그린 칠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3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봉안 장소, 연화질, 대시주질, 본사질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손상으로 인해 몇 글자는 확인이 어렵지만, 어느 달 그믐 하루 전날에 점안하였고 괘불탱, 칠성탱, 달마조사탱 각 한 축씩 제작하여 경성 밖 고양군 한지면 종남산 미타사에 옮겨 봉안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화질 항목에는 증명, 지전, 금어, 편수, 종두, 도감, 화주 등 제작과 의식을 담당한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인응 정현(囦凝淨絢)과 동고 봉근(東杲奉根) 스님이 맡았다. 제작은 범화 정운(梵華禎雲), 금성 묘전(錦城妙典) 등 금어 4명, 벽제 현수(碧霽玹洙)를 편수로 화승 3명, 총 8명의 스님이 참여하였다. 대시주질에는 상궁 신유생 임씨와 청신녀 2명을 기록하고, 남성, 여성, 어린이 등 3명을 축원하였다. 본사질에 당시 절에 머무르던 스님 명단을 기록하고, 화기 끝에 회향게를 적었다. 괘불도 뒷면에는 범자(梵字)를 적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으로 『종남산 미타사약지(終南山彌陀寺略誌)』(1943)에 실린 기사가 있다. 1915년 을묘 1월 화주 비구니 응합(應合)과 묘정(妙淨) 등이 괘불 불사를 봉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연화질, 본사질 등을 적었는데 대체로 화기의 내용과 일치한다. 따라서 괘불도가 1915년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서울, 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아미타 괘불도 형식이다. 상단에 아미타삼존을 그리고, 그 아래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원 안에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를 그린 구도이다. 아미타삼존은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로 구성되었다. 중앙 아미타불은 오른팔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복장 주머니 2점,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복장 주머니는 비단으로 제작되었으며, 상단 중앙에 끈으로 매달려 있었다. 괘불함은 길이 361.0㎝, 높이 38.5㎝의 목제함이며, 내부에 편수와 시주자가 기록되어 있다. 이외 괘불도와 함께 제작되지는 않았지만, 야외 의식에 사용되는 불연(佛輦) 1기, 도량장엄번(幡) 11점이 미타사에 전한다. 불연은 1943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도량장엄번은 1917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35 조계사 직할사암편(중),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5.
『서울의 사찰불화』Ⅱ, 서울역사박물관, 2008.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미타사 아미타여래괘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