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명칭 | 통영 용화사 괘불도 |
|---|---|
| 제작시기 | 1914 |
| 수량 | 1 |
| 규격 | 994.5×620.0 |
| 재질 | 면 |
| 관련유물 | 괘불함(1914 추정) 1점, 괘불지주(근대) 4점, 괘불봉(조선말~근대) 2점 |
| 소재지역 | 경남 통영시 |
통영 용화사 괘불도는 세로 994.5㎝, 가로 620.0㎝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영산회를 그린 오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흰색 바탕에 먹으로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자, 시주자 등을 알 수 있는 화기를 기록하였다. 연화질 항목을 만들고 증명, 회주 겸 화주, 유나, 송주, 도감, 종두, 금어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역할을 담당한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금담 성삼(金潭星三), 호은 문성(虎隱文性), 구하 천보(九河天補) 스님이 담당하였다. 회주와 화주는 영봉 두연(靈峰斗衍) 스님이 겸직하였다. 제작은 완호 낙현(玩虎洛現), 시찬(施讚) 스님이 맡았다. 수화승 완호 낙현은 부산 복천사에서 불화소를 운영하며, 불화를 가르친 근대 화승이다. 화기에 산중질 항목을 만들어 당시 절에서 소임을 맡아보던 스님 38명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독시주질이라고 적은 뒤, 기유생 김삼주와 분가시키지 않은 아들 가족, 장남 부부, 차남 부부, 증손, 외손 등 을 기록하여 김삼주 일가의 단독 시주임을 알 수 있다. 끝에 세존 응화 2941년 갑인(1914) 5월 16일 조성, 통영 용화사라고 제작 일자와 봉안 장소를 밝혔다.
근대에 제작된 괘불도 가운데 보기 드문 대형이다.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로 구성된 삼존을 중심으로 가섭존자, 아난존자를 배치한 간략한 구성의 영산회 괘불도 형식을 보여준다. 삼존은 머리 뒤에 원형 광배를 갖춘 채, 정면을 바라보고 연꽃을 위에 선 모습이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은 펴서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가슴 앞에서 손가락을 마주 댔다.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각각 여의와 연꽃을 들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 괘불봉 2점, 괘불지주 4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길이 689.5㎝, 높이 49.5㎝의 목제함이다. 1914년 괘불도와 함께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괘불봉은 조선 말~근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길이 1,152㎝이다. 괘불지주는 근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66.0~108.5㎝의 석제지주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경상남도Ⅰ,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09.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2014 문화재위원회 회의록』, 문화재청, 2014.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국가등록문화재 통영 용화사 괘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