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靈山幀 |
|---|---|
| 지정명칭 | 사자암 영산회괘불도 |
| 제작시기 | 1909 |
| 수량 | 1 |
| 규격 | 502.0×317.5 |
| 재질 | 면 |
| 소재지역 | 서울 동작구 |
서울 사자암 괘불도는 세로 502.0㎝, 가로 317.5㎝의 바탕에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 문수동자, 보현동자를 그린 오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중앙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경기좌도 시흥군 삼성산 사자암 영산탱 연화소질이라고 쓰고, 증명, 송주, 금어, 지전, 종두, 화주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역할을 맡았던 인물을 기록하여, 삼성산 사자암 영산회상 괘불도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감독은 동하 정담(東河正淡)이 맡고, 제작은 화승 혜과 봉감(惠果奉鑑)과 한곡 돈법(漢谷頓法)이 담당하였다. 수화승 봉감은 1858년 남양주 흥국사 괘불도 제작 때 동참 화원으로 화업을 시작하여 60년 가까이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지극한 마음으로 받듭니다’라고 쓰고, 대한제국 황제 순종,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 황태자 영친왕의 건강과 장수를 발원하였다. 시주질에는 대시주 청신사 기해생 백팔용 만화당과 축원하는 인물 5명을 기록하였다. 화기 끝에 융희 3년 기유(1909) 8월이라고 기록한 날짜를 썼다. 괘불도 뒷면에 대시주 항목을 별도로 만들어 경성부 마포동에 사는 청신녀 정유생 송씨, 장남 김용덕과 처 송씨, 차남 김용규와 처 장씨, 손자 6명을 기록하였다.
상단은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로 구성된 삼세불을 배치하고, 하단은 문수동자와 보현동자를 배치하였다. 상단에 삼존상을 크게 부각하여 그리고, 하단에 동자형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는 형식은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서울, 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괘불도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중앙에 오른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식 법의를 걸친 부처님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에 상주하며 가르침을 펼치는 석가모니불이다. 석가모니불 왼쪽의 약사불은 동방의 유리광세계, 오른쪽의 아미타불은 서방의 극락세계에 상주하며 가르침을 펼친다. 문수동자가 탄 사자와 보현동자가 탄 코끼리의 동세 변화가 다른 괘불도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35 조계사 직할사암편(중),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5.
『서울의 사찰불화』Ⅱ, 서울역사박물관, 2008.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서울의 문화재』증보판 5 불교문화재(1),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1.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사찰문화재』 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서울,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사자암 영산회괘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