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 |
|---|---|
| 제작시기 | 1908 |
| 수량 | 1 |
| 규격 | 690.0×414.0 |
| 재질 | 면 |
| 소재지역 | 서울 은평구 |
서울 수국사 괘불도는 세로 690.0㎝, 가로 414.0㎝의 바탕에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아미타불을 그린 삼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자와 시주자 등을 알 수 있는 축원문, 연화소질, 대시주질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이 불사를 기획한 월초 거연(月初巨淵) 스님이 당시 태황제였던 고종, 황제 순종과 황후, 황태자 영친왕, 의친왕과 의친왕비의 건강과 장수를 빌고, 전란이 사라지고 국경이 만세토록 평안하길 바란다는 축원을 올렸다. 연화소질에 증명, 송주, 지전, 출초, 편수, 도감, 종두, 감동, 화주 등 제작과 의식에 소임을 맡았던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의용 보관(義龍普瓘)을 비롯한 스님 3명이 담당하였고, 제작은 스님 8명, 사미승 1명이 담당하였다. 출초를 맡았던 화승은 석옹 철유(石翁喆裕)이고 편수는 두흠(斗欽) 스님이었는데, 철유는 감동 겸 도편수도 겸직하고 있어 제작 책임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감동(監蕫)은 국가의 공사를 감독하는 임무를 말하는데, 국가 주체로 거행하는 불사 체계를 따라 감동의 소임을 별도로 두었던 것 같다. 그리고 괘불, 산신탱, 금강탱, 비단 승가리 등 제작한 물품과 수량을 기록하였다. 대시주질에는 통도사 스님과 수행자, 범어사 스님과 수행자, 상궁 박씨와 최씨, 청신녀, 신사 등 제작에 크게 시주한 인물을 기록하였다. 화기 끝에 융희 2년 무신(1908) 음력 8월 초7일 공양을 올리고, 17일 점안하여 경기도 삼각산 수국사에 안치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로 구성된 삼신불만 그린 간략한 구성이다. 괘불로 삼신불이 그려지는 전통은 17세기부터 있었지만, 삼존만 크게 부각하는 도상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서울, 경기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삼존은 모두 연꽃 위에 정면을 향해 선 모습이다. 손은 얼굴과 신체에 비해 유난히 작다. 부처님의 빛을 상징하는 광배를 머리 뒤에 원형으로 나타낸 뒤 방사형 선으로 묘사한 점이 특징적이다. 노사나불은 부처님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35 조계사 직할사암편(중),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5.
『서울의 사찰불화』Ⅰ, 서울역사박물관, 2007.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사찰문화재』 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서울,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