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시기 | 1905 |
|---|---|
| 수량 | 1 |
| 규격 | 1,078.0×568.0 |
| 재질 | 면 |
| 관련유물 | 괘불함(1905 추정) 1점 |
| 소재지역 | 부산 금정구 |
부산 범어사 괘불도는 세로 1,078.0㎝, 가로 568.0㎝의 바탕에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가섭존자, 아난존자를 그린 오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대한 광무 9년(1905) 9월 경상도 동래군 금정산 범어사에 조성하여 봉안한다고 기록하였다. 연화질에는 증명, 회주, 송주, 금어, 도편수, 지전, 종두, 도감 등 제작과 의식에 역할을 맡았던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해담 치익(海曇致益)이 맡았고, 제작은 금어, 도편수를 비롯한 16명이 담당하였다. 금어에 기록된 인물은 금호 약효(錦湖若效), 혜암 정상(慧庵正祥), 초암 세간(草菴世間), 관허 종인(觀虛宗仁)이고, 도편수는 보응 문성(普應文性)이다. 별화주질을 마련하여 비용을 댄 인물 20명을 별도로 기록하였다. 시주에는 200명이 넘는 인물들이 참여하였다. 시주에 참여한 스님은 본사 산중 시주 대덕질, 재가 신도는 시주질로 승속을 구분하여 명단을 기록하고, 각 곳 단월들의 번뇌가 없어지리라 라고 적었다. 시주에 참여한 스님 명단에서 은담 계찬(銀潭戒瓚)을 비롯한 국청사 스님 7명과 미륵암 비구 상훈(湘燻), 해인사 비구 경식(擎植) 등이 확인되어 다른 사찰 스님들도 시주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로 구성된 아미타삼존을 그리고, 삼존 주위를 광배로 감싼 구도이다. 광배 위쪽에 가섭존자, 아난존자를 배치하였다. 가운데 아미타불은 원형의 머리 광배를 별도로 갖추고. 정면을 바라보고 선 모습이다. 왼손은 가슴 앞에서 첫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을 맞대었고, 오른손은 펴서 아래로 내렸다. 양 옆의 보살은 두 손을 모으고, 부처님을 향하여 섰다. 보관에 입상의 화불을 모시고 손에 정병을 든 보살이 관음보살이다. 부처님 오른쪽의 대세지보살은 보관에 정병이 봉안되었다. 강한 음영법이 특징적인 불화이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길이 631.5㎝, 높이 64.5㎝의 목제함으로 1905년 괘불도와 함께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32 범어사 본말사편,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4.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일제조사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경상남도Ⅱ,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0.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범어사성보박물관, 〈소장유물〉 소장유물 검색, ‘범어사 괘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