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幀 |
|---|---|
| 지정명칭 | 연화사 아미타불괘불도 |
| 제작시기 | 1901 |
| 중수시기 | 1981 |
| 수량 | 1 |
| 규격 | 633.0×349.0 |
| 재질 | 면 |
| 관련유물 | 괘불함(1901) 1점 |
| 소재지역 | 서울 동대문구 |
서울 연화사 괘불도는 세로 633.0㎝, 가로 349.0㎝의 바탕에 아미타삼존을 중심으로 가섭존자, 아난존자, 문수동자, 보현동자를 그린 칠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3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과 보수를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대한 광무 5년 신축(1901) 10월 28일 공양을 올리고, 11월 20일 점안하여, 새로 조성한 괘불탱 한 축을 천장산 연화사에 봉안한다고 기록하였다. 연화질에 증명, 송주, 지전, 금어편수, 공사, 종두, 화주 등 제작과 의식에 역할을 맡았던 인물 14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월해 화진(越海和眞), 대은 돈희(大恩頓喜), 연응 정현(沿應正現) 3명의 스님이 담당하였다. 제작에는 금어편수 대은 돈희와 계은 봉법(啓恩奉法), 한봉 응작(漢峰應作), 보암 긍법(普庵亘法), 청암 운조(淸庵雲照), 한곡 돈법(漢谷頓法) 6명이 참여하였다. 금어편수로 기록된 수화승 대은 돈희는 19세기 말~20세기 초 활동한 화승으로. 같은 해 연화사에서 한봉 응작이 수화승으로 주도한 신중도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화기 끝에 대한민국 36년 병신(1981) 7월 30일 보수라고 적고, 연화질에 불사 감독, 송주, 지전, 금어, 시주, 화주, 주지 등 보수에 참여한 인물을 덧붙여 기록하였다.
아미타삼존 아래에 가섭존자, 아난존자를 배치하고, 붉은 원 안에 사자를 탄 문수동자,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상을 그린 도상은 19세기 중엽 이후 서울, 경기 지역에서 크게 유행하는 괘불 형식 중 하나이다.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로 구성된 삼존불은 양어깨를 덮는 옷을 걸치고 정면을 바라보고 선 모습이다. 중앙의 아미타불은 반달 모양의 큼직한 중앙계주와 뾰족하게 솟아오른 육계 꼭대기에 둥근 모양의 정상계주를 갖추었다. 왼손은 가슴 앞에 두고, 오른손은 아래로 길게 뻗어 내렸다. 부처님 왼쪽의 관음보살은 화불이 모셔진 보관을 썼고, 오른쪽의 대세지보살은 정병이 봉안된 보관을 썼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1910년 괘불도와 함께 길이 373.4㎝, 높이 44.0㎝의 크기로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서울의 사찰불화』Ⅱ, 서울역사박물관, 2008.
『한국의 불화』35 조계사 직할사암편(중),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5.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서울,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연화사 아미타괘불도’.




